결초보은
결초보은
  • 편집부
  • 승인 2010.04.08 09:31
  • 호수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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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철(농협중앙회 보은군지부장)

행사 후 뒤풀이를 할 때나, 직장생활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하여 직원들과 회식을 할 때 보통 식사 전에 건배주를 한잔씩 하게 된다. 이때 건배를 제의 받은 사람은 덕담이나 또는 회식을 하게 된 동기를 말하고 건배를 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런데 함께한 사람들과 일체감이나 동질성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의례적인 덕담보다는 건배구호를 크게 외친 후 함께 건배주를 마시는 광경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때에 따라서는 몇 번씩 돌려가며 건배구호를 외쳐 주위사람들의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대체로 어느 정도는 이해해 주는 것이 또한 우리의 문화가 된 듯하다.  건배구호로는 건강이나 가정의 행복을 기원하는 것이 주가 되나 좀 더 흥을 돋우기 위하여 여러 문장의 첫 자를 따서 축약된 구호를 만드는 재치꾼들도 있다.

나는 그 동안 건배제의를 받으면 농협에서 많이 애용하고 있는 '우리는 하나로'라는 구호를 사용했다. 그런데 보은으로 전근 오고부터는 건배 구호로 '결초보은'을 더 많이 애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고사성어의 보은이라는 한자가 우리 고장 보은과 똑 같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 고사성어 뜻이 좋아서이다. 은혜를 입으면 죽은 혼령이 되어서라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다는 뜻이니 얼마나 고귀하고 의미가 깊은가?

근래 인간으로서의 도리나 윤리가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음을 감안해 볼 때 '결초보은'이라는 사자성어는 인간성 회복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지난 3월9일 봄철에 때 아닌 폭설로 인하여 우리 보은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물기를 잔뜩 먹은 '떡 눈'은 우리 지역의 인삼농가며, 과수농가에 많은 피해를 줬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공무원들이 밤늦도록 비상근무를 하면서 과수원 방조망이며 비닐하우스 지붕 위에 쌓인 눈을 털도록 지도한 덕분에 많은 농가들이 피해를 비켜 갈 수 있었다.

일부 국민들은 공무원들이 혼이 없느니 있느니 말들을 하지만 아직도 묵묵히 국민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는 공무원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일례가 아닌가 생각한다.

폭설 다음날 직원들과 함께 현지를 돌아보고 지역본부에 폭설피해를 보고하면서 보은지역의 심각한 피해 상황과 일손부족으로 복구에 어려운 점도 얘기했다. 이틀 후 지역본부 직원 30여명이 폭설피해 지원을 위하여 아침 일찍 보은으로 달려왔다. 피해가 심한 삼승면의 한 과수 농가에 우리가 도착해 보니 피해 상황은 우리가 상상 했던 그 이상이었다. 하얀 눈은 이제까지 보아 온 낭만과 아름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어른 팔뚝만한 두꺼운 쇠기둥을 마치 엿가락처럼 휘게 했고 커다란 사과나무 밑동까지도 부러뜨린 괴력의 소유자로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다시금 인간의 나약함과 자연의 무서움에 몸을 떨어야 했다.

농장주로부터 작업범위와 작업방법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두 팀으로 나누어 각자 맡은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한 팀은 우선 방조망을 걷고 휘어진 쇠기둥을 뽑는 작업을, 다른 한 팀은 쓰러진 사과나무를 세우거나 부러진 사과나무를 잘라내는 작업을 하였다. 7년 동안 온 정성을 다해 키워온 사과나무가 전동 톱 사이로 잘려 나가는 것을 보니 마치 우리의 가슴이 이리저리 잘려져 나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보은지역은 산악지대로 자연재해가 많은 지역이다. 장마나 태풍으로 큰 물난리를 겪기도 하였으며, 몇 년 전에도 이번과 똑같은 폭설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그 때마다 공무원, 군 장병이며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도와주었기에 지금의 보은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의 도움과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어디 그뿐인가? 개인생활에서도 어찌 나 혼자의 힘으로 지금까지 살아 왔겠는가? 지금의 자신이 있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으리라 본다. 그래서 오늘도 난 건배제의가 있으면 그 분들의 은혜를 잊지 않고자 힘차게 건배구호를 한다.  '결초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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