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척 담장 안에서 찾은 천국의 모습
15척 담장 안에서 찾은 천국의 모습
  • 류영우 기자
  • 승인 2010.04.01 10:06
  • 호수 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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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여자교도소 합창단을 지휘하는 산외면 백석교회 조성근 목사
▲ 조성근 목사

여자교도소의 애환을 그린 영화 '하모니'가 300만 명의 관객동원에 성공하며 올해 흥행한 첫 여성 영화가 됐다.
300만 관객을 울린 '하모니'의 중심에는 바로 청주여자교도소가 자리 잡고 있다.
26세부터 많게는 55세까지, 주로 장기수형자들로 구성된 청주여자교도소 합창단.
어떤 이유에서든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한 이들이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내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소리를 함께 맞추어 나가고,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모습에 관객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영화 속 얘기만은 아니다. 15척의 높은 담장 안에서 소리의 어울림을 찾고, 행복한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는 청주여자교도소 합창단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는 동안 한 사람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
바로 담장 안에서 천국의 모습을 보았다는 산외면 백석교회 조성근 목사다.

 

◆떼어 낼 수 없는 소중한 인연
이 세상에 나만큼 부족하고 못난 사람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인생에 무엇 하나 제대로 해 놓은 것 없었다. 신학대학에서 지휘를 공부했지만 중도에 하차하고 신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동기들이 모두 목사가 되고, 지휘자가 되어 각기 훌륭한 몫을 감당하고 있을 때 조 목사는 전도사의 이름도 벗지 못한 채 중국에서 선교활동에 전념해야 했다.
그러던 그가 2005년 생면부지의 땅 보은을 찾았다.

"관기교회 배영도 목사와의 인연으로 보은 땅을 찾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라온 제게 있어 보은은 정말 좋은 곳이었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를 깨닳은 곳이 바로 보은이죠."
보은과의 인연은 또 다른 인연을 낳았다.

어느 날 "청주여자교도소 합창단에서 지휘자를 구하고 있는데 추천을 해도 괜찮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고, "제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라고 엉거주춤 대답한 것이 이제는 떼어 낼 수 없는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진 것이다.

 

◆큰 기대감을 안고 가진 첫 만남
조 목사에게 있어 청주여자교도소는 이름조차 생소했다.
어렵게 찾아간 청주여자교도소였지만 정문에서부터 '휴대폰은 안 된다', '카메라도 안 된다'는 확인절차에 위축되기까지 했다.

교도소 내에서 처신해야 할 기본 교육을 받은 후에야 조 목사는 청주여자교도소 합창단을 지도할 수 있게 됐다.
그것이 2007년 1월이었다.

"교도소에서는 공연예술치유의 목적으로 합창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게 하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 자유인이 되어 사회에 살 때도 자아를 절제하며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특히 합창은 개인이 이웃과 더불어 사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큰 기대감을 안고 첫 만남을 가졌다. 심상치 않은 눈빛에 당황했지만 조 목사는 그녀들이 내는 소리에 집중했다.
생기가 없고, 화음도 맞지 않았다.

"합창을 하려면 나보다 남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혼자 크게 내어도 안 되고, 늘 내 소리와 남의 소리가 어울릴 수 있도록 하려면 내가 낼 수 있는 소리의 70%만 내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를 낮추고 남을 존중하는 삶을 배우게 됩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그녀들과 만나면서 조금씩, 조금씩 서로의 마음을 열어가고 있었다.

 

◆서로에게 배운다
좁은 공간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그녀들은 불안과 초조 속에서 우울증세도 갖게 되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사소한 문제로 서로의 감정은 쉽게 격해졌고, 서로가 말조차 조심하며 마음을 열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 목소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협력하고, 남들의 소리와 함께 맞춰가는 노력을 이어가면서 그녀들의 소리도 변하기 시작했다.

소리만 변한 것은 아니었다. 음악에 대한 즐거움을 이야기 했고, 더 많은 시간을 배우지 못해 아쉽다는 표현까지도 하며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었다. 마음의 문을 열면서 그녀들은 서로의 기쁨과 보람도 함께 나눴다.

"부족한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노력해준 합창대원들에게 감사하죠. 대원들이 서로 협력하며 마음을 열게 되면서 저 또한 큰 보람을 갖게 됐습니다. 이제는 제가 저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을 통해 내 삶을 돌아보고, 제 자신이 정말 많은 것을 배우며 지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합창대원이 다가와 조 목사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오늘은 연습하면서 내가 민간인이 된 듯 착각을 하며 보냈어요."

모든 걸 잊고 음악속에서 마음의 자유를 누리며 지냈다는 대원의 말에 조 목사는 커다란 보람과 기쁨을 얻었다고.

모든 일에 마음을 쏟고 초선을 다하면 거기에 자유가 있고, 이웃에게 평안함과 행복을 갖게 해 주며 살 수 있다면 그곳이 비록 15척 높은 담장 안이라고 해도 천국이라는 것을 조 목사는 비로소 느끼게 된 것이다.

조 목사는 그렇게 아름다운 삶을 체험하고 있다. 대원들이 사회에 복귀할 때 이웃을 섬기며 더불어 사는 행복한 삶을 회복하며 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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