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민이 모르는, 군민 단합 체육대회?
군민이 모르는, 군민 단합 체육대회?
  • 편집부
  • 승인 2015.11.26 10:38
  • 호수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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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역의 축제가 보통 5-6일간 열리는 것과는 달리 보은대추축제는 10일이라는 긴 기간 동안 열린다. 전국에서 보은의 맛과 정, 그리고 아름다움을 잊지 못하고 다시 찾은 손님들을 접대하느라 관과 민이 정신없이 바빴는데, 그 와중에도 군민의 단합을 위한 체육대회를 계획하고 준비한 주최 측의 피로는 그야말로 '초죽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수고하고 섬기는 분들이 있어야 발전도 있는 법이고, 또 그러한 행사들을 통해 우리 보은에 대한 애향심이 더욱 굳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군민 단합을 위한 체육대회란 행사를 읍내에 걸린 현수막 몇 장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는 씁쓸함이 남아 있다. 물론 군민 전부를 모아 놓고 일을 벌이기에는 손도 모자라고 장소도 모자랄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여건에 따라 면 단위별로 몇몇 선택된(?) 사람들만 추려 모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마음이 휑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체육대회가 면 단위 대항이기에 면내에서 우선적으로 단합이 잘 되어 왔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선수를 꾸리는 것이 어찌 보면 승리를 위한 전략상 필요했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만들지도 모르는 사람이 괜히 포함되었다가는 우승은 커녕 일 년에 한 번 오는 행사마저 망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합대회가 이미 단합된 사람들 사이에 뭐가 필요할 건가? 우승이라든지 내걸린 상품에 눈이 먼 것이 아니라면, 조금 서먹했던 사람, 조금 내성적인 사람, 그리고 외지에서 우리 보은으로 새 삶터를 마련하고 어색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일부러라도 불러 모아서 관계가 익숙해지고 대화 속에 힘을 합쳐 줄을 당기기도 하고, 이어달리기 바통을 넘겨주기도 하면서 우리는 한 마을에 살고 있는 이웃사촌이라는 의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도대체 군민단합 체육대회에 어떤 사람들이 몇이나 모였는가가 궁금하여 뉴스를 뒤져보니 모든 보도마다 하나같이 2천여 명이 모여 성대히 체육대회를 치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체육대회 개회식 사진을 보니 아무리 헤아려도 2천여 명이라는 보도가 사실로 믿기지 않을 정도의 인원이었다.

뭐,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얼마나 단합을 이루게 된 체육대회였느냐가 중요한 것이니 숫자 문제는 여기서 갈무리하겠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이 썩 개운하지 않은 것은 저기에 모인 분들은 어떤 분들일까라는 궁금함이 남았기 때문이다. 하여 내친 김에 참석했다는 분과 얘기를 나눠보니 이런저런 일들로 마을에 직책을 맡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는 귀띔이었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야유 섞인 말이 있다. '그들'이라는 말에는 '이들'이나 '저들'과의 소원함이 깔려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한 마을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이른바 가진 자들의 모임과 가지지 못한 자들의 모임, 그리고 자신이 가진 자인지 가지지 못한 자인지조차도 모르는 무리들로 나뉘어 있어서, 가진 자들은 그 가진 것들을 무슨 벼슬이나 특권인양 누리려고 하고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씁쓸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 형국이 안타까움을 넘어 한스럽기까지 하다.

어느 정치학자는, 정치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제식구들을 잘 챙기라고 한다. 잘 챙겨 준 제 식구들이 선거철이 되면 혼신을 다해 표를 긁어모아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식구들은 또 다른 식구들을 챙길 것이고, 그러다보면 정치란 친위대로 인해 우리의 사회 안에서 정의와 공평을 실종시킬 것이고, 부정과 부당함이 팽배하도록 만들 것이다.

그런 사회는 결코 오래 갈 수가 없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라. 도덕적으로 부덕한 나라가 잘 된 경우가 있는가를. 하긴, 요즘에는 역사도 재해석이라는 명분으로 가치 평가의 기준이 널뛰기를 하고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 역사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후세의 비판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판에 이 작은 지역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한다고 하여 무에 꼬투리를 잡을 필요가 있겠느냐마는...

낙엽 위로 내리는 가을비로 가뜩이나 우울한데, 보이는 것 중에 기쁜 일은 가뭄에 콩 나듯 보이니 원… 그래도 내년 체육대회에는 낯선 사람들과의 뜨거운 악수로 시작하여 강한 포옹으로 끝을 맺는 진정한 단합대회가 되길 손 모아 빌며 기다려야겠다.

송 병 구
- 충남대 인문과학 연구소 철학박사
- 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특별연구원
- 현 회남면 용호리 예을교회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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