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민자들의 영원한 보육도우미
결혼이민자들의 영원한 보육도우미
  • 류영우 기자
  • 승인 2010.03.25 10:52
  • 호수 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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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조선족 이주여성 김 화 씨
▲ 김화

2004년 5월, 정든 고국 땅을 떠나 한국을 찾았을 때 그녀의 나이는 22살이었다.
한국에 오기 1년 전에 8살 많은 남편을 만났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액세서리 공장에서 일해 한국에 대한 이해는 어느 누구보다 높았다.

한국말을 사용하는 조선족이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문제도 없었고,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생활에 대한 동경도 키워왔던 그녀였다. 하지만 중국 흑룡강성 이춘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자란 그녀에게 있어 한국 생활은 그리 녹녹치 않았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곳으로 유명한 하얼빈에서 기차로 5시간. 중국 최북단의 작은 마을에서 한국으로 시집와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김화(28, 보은읍 장신리)씨.

결혼 이민자들의 영원한 보육 도우미로 살아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여느 다른 결혼이민자들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었다.

 

◆낯 선 한국, 그곳에 터를 잡다
첫 발을 디딘 한국은 낯섦 그 자체였다.

북한말투에 가까웠던 그녀의 언어는 이곳의 말과 또 달랐다. 친구도 없어 참 많이 외로웠다. 그리고 문화적 차이도 컸다.

"한국에 와서 알았는데, 이곳은 남성 위주로 가정이 이루어지더라고요. 여자는 항상 뒷전이었어요. 하지만 중국은 달라요. 중국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똑 같은 위치에서 대화를 합니다."

한국의 사회가 낯설었던 그녀는 이런 문화적 차이 때문에 남편과도 많이 다투었다.
"이렇게 해 달라"고 요구하는 남편 앞에서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 온 내 삶의 방식이 있는데 하루아침에 바꾸기 힘들지 않겠느냐"며 이해를 구했다.

그렇게 1년.
김화씨의 가정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가 자신의 뜻을 꺾은 것은 아니었다.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면서 조금씩 양보하게 됐고, 또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얻은 결과물이었다.

"외국인 주부들이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편들도 부인이 살아온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서로의 문화를 알면 다툼도 없어지고, 또 서로에 대한 고마움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시어머니도, 남편도 '공부하세요'
김화씨는 6살과 4살 된 두 딸을 가진 엄마다.

두 딸을 둔 엄마이면서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이고, 또 남편을 둔 아내이기도 하지만 그녀는 한국에 첫 발을 내 딛으면서부터 지금까지 공부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2005년 3월부터는 문화원에서 실시하는 한글교육을 받았고, 2008년부터는 결혼이민자센터에 나가 한글공부를 비롯해 한국문화, 한국요리까지도 배웠다.

그녀가 익힌 것은 단순히 '공부'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공부를 통해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문화 친구'를 만났고, 그 만남을 통해 한국생활의 즐거움도 찾게 됐다.

그리고 그녀는 2009년,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다른 외국인 주부들이 겪지 않도록 돕기 위해 결혼이민자가족 아동양육 지도사로 나섰다.
그것은 단순히 아이들을 지도하는 아동양육지도사만은 아니었다.

한국어에 서툰 외국인 주부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에서부터 그들의 어려움과 고민을 들어주는 친구의 역할까지 감당해야 했다.

"어려운 줄은 알았지만 시골에서 외국인주부들의 생활은 정말 힘듭니다. 농사철이 돌아오면 간식까지 5끼를 챙겨야 하기 때문에 공부할 시간이 없어요. 시부모님과 남편은 농사일 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아이들은 하루 종일 엄마와 함께 있어야 하고, 한국말을 못하는 엄마와 함께 있는 아이는 엄마처럼 한국말을 배울 수가 없게 됩니다."

외국인주부들과 자녀들이 바르게 성장하고, 지역에 안정된 모습으로 정착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어머니와 남편들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외국인 주부 친구들은 좋아하는데 시어머니와 남편들은 제가 가서 교육을 시키는 것을 싫어해요. 한국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고, 외국인 주부들이 지도를 하면 친구를 만나 그냥 논다고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 또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 외국인주부들의 경우 대부분이 20대 초반에 시집을 오는데, 한국의 20대는 친구들을 만나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들도 똑 같은 20대 초반인데도 말이에요. 결국 엄마와 아이를 위한 교육이 아닌, 시어머니와 남편을 만족시키는 교육이 되고 있어요. 며느리, 아내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 시어머니들과 남편들도 함께 공부를 하며 서로의 문화를 알아갔으면 좋겠어요."

 

◆이제는 보육 도우미로
1년 동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결혼이민자 아동양육지도사로 활동하며 외국인 주부들과 자녀들에 대한 어려움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됐다.

그들의 어려움을 알아서일까?
올해 그녀는 새로운 직장을 선택했다. 바로 두리어린이집 보육 도우미가 그것이다.
두리어린이집에는 16명의 외국인주부 자녀들이 있었고, 그 중에는 그녀가 지도했던 외국인주부 자녀들도 포함돼 있다.

"보육 도우미 활동을 하면서 시골에 있는 외국인주부 자녀들이 더 많이 생각났어요. 애들은 애들이랑 함께 놀면서 성장하는 것이 좋은데 시골에 사는 애들은 또래 친구들을 만날 수가 없어요. 외국인 주부 자녀들은 더 심하고요. 그런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게 되고···. 엄마들도 불쌍하지만 애들은 더 불쌍한 것 같아요."

두리어린이집에서 그녀의 활약은 대단(?)하다.
그녀는 3세반(만 1세반) 아이 13명 중 6명이나 되는 외국인주부 자녀들의 보육지도는 물론 엄마들의 상담사 역할까지 해 내고 있다.

작은 일에도 관심을 나타내는 외국인주부 어머니들에게 친구의 입장에서 상담을 해 주고, 공동생활의 필요성까지 설명해 낸다는 것이 두리어린이집 김정호 원장의 얘기다.

 

◆그녀의 도전은 계속된다
그녀는 요즘 새로운 제안을 받고 있다. 바로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 아이들을 체계적으로 지도하는 일이다. 하지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외국인 주부들을 배려하지 않는 제도적 장치 때문이다.
"외국인주부들도 고향에서 어느 정도 배움의 기회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까지 졸업한 친구들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한국에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과정부터 다시 공부해야 해요. 그 나라의 학력은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죠. 저도 보육교사를 취득하기 위해 공부를 하게 된다면 초등학교 검정고시부터 준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외국인주부들이 농공단지 김치공장에서, 만두공장에서 단순 노동일을 선택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는 여기서 좌절하지 않을 생각이다.
지난해부터 초등학교 검정고시 과정을 준비하고 있고, 또 한국어를 비롯해 컴퓨터, 운전면허증까지도 딸 생각이다.

"다른 친구들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국에서 1, 2년 살 것도 아닌데 평생을 살아갈 공간이라면 조금은 천천히 생각해도 될 것 같아요. 지금 급하게 직장을 잡기보다 조금 더 공부하고, 조금 더 준비해 좋은 직장을 잡으면 더 보람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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