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의 참다운 발전을 위하는 마음으로
보은의 참다운 발전을 위하는 마음으로
  • 편집부
  • 승인 2015.09.10 09:16
  • 호수 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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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구

보은에 정착한 세월이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시간보다 훨씬 더 흘렀다. 2004년 2학기 개강을 막 하자마자 재직하고 있던 서울대학교에 사직서를 냈다. 만류하시는 연구원 원장님과 인문대학 학장님의 권유도 보은을 사랑하는 마음을 접지는 못하게 했다.
무엇이 그토록 보은을 사랑하게 했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 말이 없다. 그러나 처음부터 답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보은의 모든 것이 사랑함직 했다. 사람들, 자연까지도.
그러나 지금도 보은을 사랑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십년 전과 같이 만족스런 대답은 못할 것 같다. 그만큼 많은 상처와 아픔이 있었다. 정착하던 첫 해에 마을사람들은 필자를 죄를 짓고 숨어 살러 들어왔다고 의심하기도 했고, 간혹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 벌어먹으려고 내려왔다고 하는 말도 들리었다. 그러니 마을에 적응하는 일이 녹녹치 않았다.
그래도 서울이나 대전에 나가면 보은 자랑으로 입에 침이 말랐다. 충남대에 출강하던 어느 때인가는 보은 자랑이 너무 심했는지, 식사 중에 밥숟가락을 멈춘 채 필자의 장황한 마을자랑에 모두들 마음을 빼앗겨버린 듯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보은으로 오시도록 소개한 적은 없다. 그분들도 필자처럼 마을살이에 적응하기가 힘들면 어쩌나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지역의 발전에는 꼭 필요한 것이 경제와 인력이다. 경제야 지방발전계획서를 잘 작성하면 후하게는 아니어도 필요한 정도는 중앙정부로부터 얻어낼 수 있다. 그러나 돈이 있다고 하여 지역의 발전이 저절로 되는 게 아니다. 돈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이 있어야 한다. 같은 돈이라도 누구의 손에서 운용이 되느냐에 따라 몇 배의 결실을 걷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본전도 못 찾고 파산이 날 수도 있다.
어떤 도시는 '브레인(인재)'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 자기 지역 내에 대학이 있을 경우에는 그 대학의 교수들을 다양한 시정의 자문위원으로 위촉하는데 특별한 비용 없이도 훌륭한 자문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도시계획을 하는데 그 지역의 자연적 특징이 기존의 도시기능과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잘 호흡할 수 있는 계획안을 브레인으로부터 듣기도 하고, 문화적인 유산이나 역사적인 가치들을 활용하여 타 지역에서 탐방이나 견학을 올 수 있도록 '지역문화 세일'에 관한 자문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은의 발전에 대해 할 말이 참 많은데, 무엇보다도 보은의 현재의 흐름을 보면 보은이 갖고 있는 자연적, 지리적 그리고 문화적인 요소를 모두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 발전이란 건물을 세우고, 다리를 놓고 거대한 축구장에 화려한 실내체육관, 그리고  수십억 원을 들여 야구장을 짓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건설에 의한 지역발전의 시대는 이미 독재자 시절에 써먹었던 정책이다. 이른바 업적주의가 낳은 구태의연한 정치적 작업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필요한 다리는 놓아야 하고, 필요한 운동장도 지어야 한다. 그러나 일에는 우선순위기 있다. 똑 같은 돈을 들여서 10%의 이익과 효용을 창출하는 사업이 있는가하면, 50% 나아가 100%의 이익과 효용을 낳는 사업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발전에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깊이 있게 숙고할 필요가 있다.
지역발전이란 다음 세대를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이 있는 사람에 의해서 행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놓은 다리를 부셔야 하고, 지어놓은 건물을 철거해야만 하는 어리석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수십조 원을 들였다는 4대강 사업이 그 좋은 예다. 그보다 더 실패한 건설정책은 아마도 대한민국의 역사이래로는 없다고들 한다.
이제라도 보은에 인재들이 들어와 정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에 대한 대가 없이 보은의 구석구석을 빛나게 만들 것이다. 돈을 주고 영입하려면 큰돈이 들 것인데 그들이 보은의 주민이 된다면, 그들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하기만 하면 그들의 능력은 우리 보은의 능력이요 자산이 될 것이다.
필자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끔 보은의 건설현장을 둘러본다. 누구를 위해 이곳에 기초를 닦을까, 무엇을 위해 이곳에 거대한 건물을 지을까, 그리고 그 이익과 효용은 얼마나 될까. 이 아름다운 보은의 자연을 이런 다리, 이런 체육관, 이런 운동장으로 꼭 그런 식으로 덮어 놓아야 했을까. 더 아름답고 더 '보은스러운' 개발과 건설이 가능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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