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易地思之)
역지사지(易地思之)
  • 편집부
  • 승인 2015.07.23 09:18
  • 호수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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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16년전인 1999년 5월 20일 대구에서 어린이 황산테러 사건이 있었다. 일명 태완이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이 사건은 학습지 공부를 하러 가던 6살 태완군에게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이 황산을 얼굴과 몸에 뿌려 49일간 투병하다가 숨진 가슴 아픈 사건이다.
용의자로 지목된 이웃집 아저씨인 A씨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내려지자 이에 대한 재정신청을 냈는데, 용의자를 가해자로 특정하기 어렵고 제출된 자료와 수사기록만으로는 검사의 불기소 처분이 부당하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재정신청을 기각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공소시효를 3일 남겨놓고 내려진 기각 결정이니 이제 이 3일이 지나면 영구미제 사건이 될 전망이다. 태완이가 자기 아들이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역지사지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는 '맹자(孟子)'의 '이루편(離婁編)'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라는 표현에서 비롯된 말로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이다.
우리들은 누구나 자기의 자녀를 사랑한다. 이런 사랑은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라면 자기의 자녀처럼 다른 사람의 자녀도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것도 어린 아이에게 황산을 뿌린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다. 역지사지하는 마음이 아쉽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판단하여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맹자'에 "남을 예우해도 답례가 없으면 자기의 공경하는 태도를 돌아보고, 남을 사랑해도 친해지지 않으면 자기의 인자함을 돌아보고, 남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기의 지혜를 돌아보라(禮人不答反基敬 愛人不親反基仁 治人不治反基智)"는 말이 나온다. 이 말도 자기중심의 시각이 아니라 상대편의 시각에서 헤아려 보라는 뜻이 깊은 말이다. 우리는 가정이나 직장, 사회에서 여러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살아가다보면 좋은 일보다 좋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진행한다면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디언 속담에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1마일을 걸어보기 전까지는 그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경우를 내세우기 보다는 상대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배려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남을 배려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상대방과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본 적은 얼마나 있는가? 상대방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고 이해하라는 뜻의 역지사지는 한마디로 상생(相生)의 정신이다. 불교의 자비, 기독교의 사랑, 유교의 인(仁) 사상과도 상통하는 역지사지는 누구나 말로는 쉽게 내세우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요즈음 공직사회, 학계, 재계, 정계 할 것 없이 잘못된 비리와 비행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우리를 생각하기 보다는 나만을 생각하는 마음, 국가와 국민의 행복보다는 나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그런 정신 때문이다. 요즈음 정치계도 마찬가지이다.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반목과 불신이 곪아 터져 나오고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갈등과 반목이 깊어지고 있는 오늘날 역지사지의 정신이 새삼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역지사지하는 지혜를 발현하여 갈등과 증오가 없는 평화로운 세상, 서로가 행복해 하는 삶이 공유되는 그런 사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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