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관공서인가?
누구를 위한 관공서인가?
  • 편집부
  • 승인 2015.07.08 23:01
  • 호수 3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병구

우리나라의 여러 관공서 중 시민들로부터 가장 칭찬을 많이 듣는 곳 중의 한곳이 우체국이다.
다른 관공서의 직원들과는 달리 우체국의 집배원들은 집집마다 대문에 매달아 논 우편함에 일일이 편지며 고지서며 신문들을 꽂아놓아 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보은은 산골 지역이 많은 관계로 인적이 뜸한 곳에라도 우체국 집배원들을 하루에 한 번은 꼬박꼬박 찾아오는 것은 하루에 즐거운 일상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들려주고, 면에서 알려주는 중요한 알림들이나 장터에서 생긴 일 등을 알려주고 떠날 때면 아쉬운 마음에 집에 쪄놓은 감자도 손에 쥐어준다.

가끔은 자식들에게 보낼 편지나 철따라 거두어들인 감자나 옥수수나 고추 등을 그 좁은 오토바이 뒤에 묶어 싣고는 험난한 산골길을 내달린다. 그 모든 수고들이 산골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 대신이다. 그래서 시골살이를 살아가는 농촌의 사람들에게는 어찌 보면 농협보다 더 살가운 곳이다. 그래서 필자도 우체국을 방문할 때면 여느 관공서를 방문할 때보다 더 큰 소리로 인사하고 더 환하게 웃는다.

그런 우체국에 필자는 얼마 전에 실망을 금치 못할 일을 당하고야 말았다. 서울로 급히 부쳐야 할 등기물이 있어서 서둘러서 글을 쓰고는 봉투에 넣어 우체국으로 갔다. 그날도 등기물을 들고 오후 4시가 조금 넘었을 즈음에 예의 그 큰소리로 인사하고 환하게 웃으며 우체국을 들어섰다. 그리고 등기물을 내밀고는 내일까지 들어가야 할 서류이니 급전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런데 창구에 있는 직원이 옆에 있는 팻말을 가리키며 "우편업무는 오후 4시까지인데요"라 하며, 등기물 접수는 끝이 났다고 했다. 필자는 난처해하면서,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일까지는 이 서류가 도착되어야 하는데…"하니까 뒤에 있던 국장이 일어서더니 "급하신 거라면, 보은읍으로 가셔야 해요. 이미 전산도 막아놨고 우편차량도 읍으로 출발해서 어쩔 수가 없어요. 아니면 맡겨 놓으시면 내일 날짜로 발송해 드릴 수는 있어요"라고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보은읍으로 갈까 하다가, "그냥 내일 날짜로 보내는 걸로 하고 접수해 주세요."라고 하고 등기물을 다시 내밀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업무 시간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내 잘못이라고 여기고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한 여자 분이 택배상자를 들고 들어오시더니 "미안해요, 조금 늦었지요"라며 들어오시는데, 필자도 잘 알고 있는 보은군의회 의장 사모님이었다. 오랜만에 뵙는 터라 아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의장님의 안부도 묻고 난 후 아들의 근황을 물었을 때, 바로 그 택배가 얼마 전 군대에 간 아들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하기에, 필자는 나와 똑 같은 형편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에 "이런, 이미 접수가 끝났는데요"라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창구 직원은 갑자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고, 택배물을 접수하고자 했다.

순간 필자는 "이게 무슨 상황이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어 창구직원에게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기를 물었다. 차분하려고 해도 차분해지지 않는 역한 감정을 절제하며 상황에 대해 이해를 시켜주기를 요구했다.

창구직원의 답은 이랬다. 이 분이 군의회 의장님 사모님이신 줄은 우리는 몰랐고, 전화가 4시가 되기 전에 왔는데, 조금 늦겠다고 하여 기다리고 있었고, 이 분 택배까지 받으려고 했었다는 설명이었다. 그렇다면 그 사모님보다 앞서 온 필자의 등기물을 받지 않은 이유가 단지 전화를 안 하고 온 것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직원들은 몰랐다고 하는 그 여자 분이 군의회 의장님 사모님이시라는 사실 때문인지 명확한 답을 듣고 싶다고 하니, 의장님 사모님은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목사님, 죄송해요. 모두 제 잘못이에요, 제가 늦게 온 것 때문에"하시며 온 얼굴에 죄송함을 가득 담고 있었다.

"사모님은 잘못이 없습니다. 여기 있는 직원들이 사모님을 알아서 모신 것뿐이고. 우체국 우편업무 시간을 바꾸었으면 현수막이라도 몇 장 걸어놓았으면, 이러한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 아닌가요? 도대체 관공서를 위해 면민이 있는 건가요, 아니면 면민이 관공서 직원들의 편의를 위해 있는 건가요? 이미 우편차량 기사가 읍으로 떠났다는 거짓말까지 하면서 제 등기물 접수를 거부한 것은 왜 그런 겁니까? 그리고 전화를 미리 하셨다고는 하나 저보다 늦게 오신 사모님의 택배물을 받기 위해 마감했다고 하는 전산을 열고, 떠났다고 하는 기사는 다시 들어오고. 일반 촌부는 안 되고, 의장 사모님이니까 된다는 것으로 오해를 사는 행위를 왜 합니까?"

필자는 그들이 의도적으로 민원인을 차별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선조들의 지혜로운 가르침이 다시금 새겨지면서, 하필이면 의회 의장 사모님과 이런 일이 얽히게 되었으며, 왜 우체국 직원들은 허위사실까지 제시하며 필자의 업무는 배제하고 사모님의 업무는 받으려고 했는지 여전히 그 의아함을 넘어 분노가 남는 일이 되었다.

관공서, 시골마을에는 때로는 친구 같고, 이웃 같고, 아픔을 함께 해 주는 자식 같은 곳이라 생각된 곳이다. 관공서의 많은 직원들은 그런 분들이다.  그러나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천을 흐린다는 말처럼, 오랜 세월동안 좋은 이미지를 담아내 왔던 관공서의 이미지를 흐리는 직원들에게는 일벌백계의 교훈이 필요하지 않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