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가정은 미래가 있는가
우리의 가정은 미래가 있는가
  • 편집부
  • 승인 2015.05.06 21:00
  • 호수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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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구

4월의 잔인함을 딛고 찾아온 5월은 그 이름만으로도 따뜻하고 푸르다. 자연의 은혜를 특히나 많이 누리고 있는 우리 보은은 어디 먼 곳으로 나가지 않아도, 짙푸른 녹색의 나라로 들어가는 길목이 여기저기로 열려 있다.

이렇게 좋은 계절에 5월의 한 날쯤은 가족들 손마다 자그마한 점심도시락을 들고 옆 산도 좋고, 옆들도 좋고, 뒷동산이며 개울가로 찾아가, 굳이 화려한 음식들은 아니더라도 함께 나누고 즐길 수 있는 그런 날을 만들어보자. 눈감고도 찾아갈 수 있을 만큼 익숙한 오솔길 위로 재잘거리는 딸아이가 잡은 아빠 손이 비록 거칠고 투박해도 그 손이 우리의 가정을 지켜주는 손임을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 그 누가 가르쳐주지 않을지라도 '부모님의 은덕'을 알게 될 것이다.  

무슨 깊은 대화를 하지 않아도 좋을 일이다. 대화가 사라진 오늘의 세대에 굳이 어떤 개념을 담은 언어들이 오가지 않아도 이미 이들의 대화는 깊어졌고, 서로가 서로에게 하고픈 말들은 그야말로 이심전심으로 나누게 될 것이다. 세상의 어떤 부모가 자식이 못 되기를 바라겠는가, 그리고 세상의 어떤 자식들이 부모가 병들어 일찍 세상을 떠나기를 바라겠는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그 익숙한 길 위에서, 가족 서로를 향한 그 오래된 바람들이 바람처럼 스며들고, 숨결처럼 녹아지지 않겠는가.

그러면서 가족은 꿈을 꾸어야 한다. '꿈이 있는 백성은 망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꿈이 있으면 방황의 시간이 아깝고, 허비하는 무의미한 순간들을 다듬게 된다. 우리의 아이들이 목표가 없다는 걱정을 하는 부모들을 많이 만난다. 이제 겨우 10대 초중반에 지나지 않은 어린 나이임에도 걱정이다. 그들이 도대체 세상을 얼마나 보았을까. 이 넓은 세상 중 그들이 만난 삶의 양태들은 과연 몇 가지일까. 어찌 보면 아직 그들에게 목표가 없다는 것은 아직 그들이 자신들과 맞아떨어지는 삶의 양태들을 만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이미 목표가 세워진 아이들은 좁은 세상에서 만난 대상들에게서 얻은 것일 수 있다는 역설이 된다. 목표를 세우는 것은 좀 더 세상을 넓고 깊게 배운 후에도 늦지 않다. 그러나 목표는 아직 없을지라도 꿈은 있어야 한다. 목표는 꿈과 다르기 때문이다.

꿈이란, 목표처럼, 살아갈 때 우리에게 먹거리를 벌어주는 그런 것이 아니다. 적어도 꿈은 인간으로 태어나, 가치 있는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는 참다운 인생의 방편이다. 그것이 직업이라는 목표와 긴밀하게 연관될 수도 있으나,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꿈을 세우고 실현하며, 목표를 세우고 실현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것이 교육이다. 교육의 중요성을 두고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교육 현장에 진정성이 있느냐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와 학원에, 유치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참된 교육을 실천하는 곳이 어디 있느냐이다.

교사의 직업이 목표가 되었던 사람들에 의해 교육되는 현장과 교사가 꿈이었던 사람들에 의해 교육되는 현장은 그 태도와 과정 그리고 그 결과의 질이 달라도 매우 다를 것이다. 어떤 교사에게 우리의 자녀들을 맡기고 싶은가. 당연히 교사의 꿈을 가지고 노력해 왔던 교사에게 우리의 아이들을 맡기고 싶을 것이다. 그럼 우리 자신은 어떠한가. 우리는 타인들이 나를 믿고 맡길 만큼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사뭇 깊이 반성해볼 게제이다.

기왕에 아이들의 교육 문제가 나왔으니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다름 아닌 다문화권 가정의 아이들이다. 교육은 언어와 현실적 삶의 태도를 통해 수행된다고 볼 때, 대한민국의 문화는 한국어를 통해 우리 국어에 담겨진 정서와 삶의 깊이가 전달될 것이고 보면, 다문화권의 아이들은 이러한 한국어에 담겨진 복합적이고 다단한 의미를 수렴하지 못한 채, 사전적인 의미에만 머물고 있는 경우를 여러 교실에서 볼 수 있었다.

특히 취학 전 아이들은 가족들과의 공동의 생활을 통한 모국어의 답습은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뿌리 깊은 의식을 심어주게 된다. 그래서 민족은 어족(語族)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다문화권 아이들에게 이제라도 철저하고 깊이 있는 모국어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진정한 우리 한국인이 되고 한국이 자신의 조국이 된다.

가정이란 교육의 일차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의 교육기관이다. 아이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라면, 아이들의 교육에 전심전력해야 한다. 경제적인 문제로 교육이 포기되어서는 안 된다. 환경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교육은 현실이 아닌 미래를 심는 일이기에 현실이 어려운 가정일수록 더 많은 미래를 심어야 한다.

그러므로 가르치자. 다시 한 번 허리띠를 졸라매고 우리 가정의 미래들인 아이들을 가르치자. 그들이 꿈을 품고, 꿈을 이루도록 우리 부모들이 조금 더 고생하기를 다짐하는 5월, 가정의 달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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