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달, 4월
잔인한 달, 4월
  • 편집부
  • 승인 2015.04.08 21:10
  • 호수 29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병구

영국의 모더니즘 시인인 T.S.엘리엇은 자연의 순환원리를 시로 옮겨 적으면서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4월을 겨우내 얼어붙어 있던 생명을 되살리기 위해 가장 힘겹게 몸부림치는 달이라고 하여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황무지'라는 시의 첫 행에 등장하는 시구인데, 제목보다 더 유명해져서 세인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얼어붙은 땅 밑, 그 밑도 분명히 얼어붙어 있었을 것이고, 얼어붙어 있던 땅으로부터 수분을 얻고, 뿌리내릴 공간을 만들고자 그 여린 뿌리는 사력을 다 했을 것이며, 온 몸을 짓누르는 흙의 무게를 떨어내고, 아직은 따스하다고 할 수 없는 대지 위로 '쑥~!' 생명의 얼굴을 내밀었다.

그래서, 4월엔 쓸모없는 풀 순조차도 쉽게 밟지 못하는 마음이 든다. 온갖 고통을 이겨내고 땅위로 올랐는데, 무심한 인간들이 꽃이 아니라고 귀하지 않다고 밟아버리는 건, 적어도 생명에 대한 경애심이 모자란 탓일 것이다. 밟더라도 조금 더 지난 후에, 뽑아내더라도 떡잎은 지나고 본 잎이 나올 때에 어찌하든가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한갓 풀포기를 대하는 마음에서도 어린 생명을 향한 마음은 적어도 거룩한 마음이 드는 것이 옳은 인간의 자세일 것이건만, 피지도 못한 수많은 꽃송이들이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처절하게 불러대던 그들의 엄마, 아빠를 향한 피맺힌 비명들의 울림이 아직도 생생하게 목전에서, 귓전에서, 아른거리고, 쟁쟁하건만, 잊어버리라고, 잊자고, 그냥 넘어가자고, 이제 그만 보상금을 얘기하자고. 모두가 인간임을 포기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지난해 필자는 이 지면을 빌어 '세월호사건'을 언급한 적이 있다. 온 국민을 정신질환으로 몰고 갔던 이 나라의 국민으로 산다는 것이 그토록 부끄럽고 싫었으며, 공포스러웠던 적이 지천명의 나이를 넘기고 난 지금의 내 삶의 시간 내에서는 딱 두 번의 일이다. 내게는 광주의 민주화운동을 짓밟았던 5월의 하늘을 만나는 것조차도 힘겨웠었다. 대학의 시절은 최루탄과 맞서는 날들로 얼룩졌었다. 돌멩이를 드는 것은 동일한 폭력이라는 나의 알량한 이념(?)때문에 목이 터져라 외쳐대는 것이 독재자를 향한 유일한 저항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누가 쏘았는지 한 발의 최루탄 뭉치가 직선으로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순간 내 옆에서 '독재타도'란 머리띠를 두른 내 친구의 발목으로 내려 꽂힌 최루탄통은 친구의 발목을 절단시키기에 충분했다. 순간 외마디의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친구의 발목을 '독재타도'라 적힌 머리띠를 풀어 묶고 그를 엎었다. 학교 앞 병원으로 가야만 했었다.

경찰이 달려와 곤봉으로 내 친구와 나를 두들겨 댔고, 어디를 어떻게 맞고 있는지도 모른 채 교문을 에워싸고 있던 경찰들을 뚫고 응급실에 들어섰을 때 친구는 너무나 큰 고통 탓인지 비명도 멈추고 있었다. 다행히 잘려진 발목이 접합하기에 오염되지 않았다는 의사의 말과 함께 접합 수술은 수술실로 가는 시간도 아끼고자 응급실에서 이루어졌다. 그 친구는 지금 저 남쪽 바다 건너 섬마을에서 섬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조국이 미워지게 만든 두 번째의 사건이 바로 지난 해 4월 16일의 세월호 참사이다. 아직도 그들의 죽음의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은 채 무심한 배는 바다 속에 가라앉아 버렸다. 나는 내 조국은 위대한 나라라고 배웠다. 평화와 정의를 사랑하는 나라, 북한의 독재자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국민의 권리가 존중받는 나라, 그래서 베트남이 공산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의 위대한 군인들을 파병해서 적들을 물리쳐서 세계의 정의를 지켜준 나라라고.

그런데, 다른 나라까지 가서 다른 나라 사람들은 살려내었는데, 정작 내 나라 땅 팽목항에서 한발 치밖에 떨어지지 않은 바다에서 수백 명이 죽어가는 데도, 그 늠름하고 강한 우리나라의 군인들이 한 명도 안 보이는 나라였다는 것을 내 자신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그 후로 아직은 아무도 그 일로 처벌을 받은 이가 없다. 그리고 아직도 그들의 가족은 미쳐버릴 것 같은 이 나라에서 싸우고 있다. 왜 내 자식들이 죽어가야 했는지를 알고 싶어서.

울지마세요. 이제는 울어서는 안 됩니다. 강해지셔야 합니다. 그래서 진실을 밝혀내야 합니다. 그것이 차가운 바다 속에서 죽어간 당신들의 자식, 아니 우리 대한민국의 생때같은 자식들이 저 하늘나라에서 손 모아 기도하는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