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직무유기,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나라
국가의 직무유기,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나라
  • 편집부
  • 승인 2014.05.01 09:34
  • 호수 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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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구(현 회남면 용호리 예을교회 목사)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도 그 누구라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정부 역량을 집중하겠습니다."라는 2013년 2월의 대통령의 약속은 말 그대로 공약(空約)이 되었다.  세월호의 참사는 우리나라의 영토 밖 어느 망망대해에서 벌어진 불행이 아니었다. 해경초소가 불과 삼십분 내외에 있으며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막강한 해군력을 비롯해서 역시 세계 선박 건조 능력 1위를 놓치지 않는 그야말로 바다의 강자인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바다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온 국민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대통령이 현장에 내려갔으나 대통령은 구조 지휘를 하지 않았다. 언론 앞에서 희생자 가족의 전화번호를 받았고, 그것으로 수행원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사고를 당한 가족들은 대통령이 왔으니 이제는 우리나라의 경찰력을 비롯해서 해군과 공군까지 우리의 아이들을 구조하는 데 총동원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래서 희망을 담고 박수갈채에 동참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옆에 있는 사람들이 잘 할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 갔다. 대통령은 국민을 '구조하기 위한 통치'가 아닌 국민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는 정치'를 하고 돌아갔다.

청와대로 돌아간 대통령은 침묵했다. 국민들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한 생명이라도 살아 있는 채로 구조되기를 빌었고, 주검으로 돌아온 희생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통곡하며 울었다. 그들은 우리의 아들들이자 딸들이었다. 너의 자식 내 자식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자식들이다. 안산에 설치된 합동분향소를 찾은 대통령에게 한 부모가 "내 자식이지만, 대통령님의 자식이기도 하지 않습니까?"라고 따지듯 외쳤다는 것은 모든 부모들의 질타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통령에게 "당신은 무엇을 했습니까?"라고 묻고 싶은 것이다.

세월호 참사 역시 인간들의 잘못에 의한 사고이다. 그래서 인재(人災)다. 하늘이 내리는 재앙은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인재는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인재는 원칙에서 벗어날 때부터 시작된다. 다시 말해 부정과 부패가 있는 곳에는 기어코 인재가 일어나게 돼있다. 세월호의 적정 능력을 벗어난 증축과 비전문가에 의한 운전, 그리고 돈에 눈이 먼 과적 등은 이미 사고를 담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중 한 곳에서라도 정의와 원칙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이제는 수습이 중요하다. 유사한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일어난 사고는 우리에게 역사가 된다. 지혜로운 국민들은 역사가 주는 가르침을 새겨듣는다. 반대로 미련한 국민은 역사가 주는 교훈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

서울시장 새누리당 예비후보인 정몽준 의원의 막내아들의 생각처럼 우리 국민은 정말로 미개할지도 모른다. 성수대교의 붕괴가 주는 교훈을 무시한 결과 삼풍백화점의 붕괴라는 참사를 낳았다. 세월호 참사도 그 연장선상에서 봐야한다. 그 누가 보아도 이 참사들은 모두 사람들의 부패와 부정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의 일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나 친구를 잃은 학생들, 그리고 제자를 잃은 교사들을 물론이고 국민 대다수가 정신적인 패닉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패닉상태는 극도의 공포에 의한 정신적 공황상태를 말한다. 이 상태가 치유되지 못하면 개인은 자기 통제력을 잃게 된다.

특히 세월호와 같은 엄청난 참사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반사회적 인격장애('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라고 알려져 있음) 증상을 보이게 되면 이는 상상을 초월한 대중 참사를 가져올 수도 있다. 꼭 10년 전에 일어난 대구지하철 참사는 사회적 인격장애자에 의해 빚어진 참사로 알려졌다. 세월호 참사에 의해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적절한 치료와 대책이 수립되지 않으면 제2의 대구지하철 참사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세월호 참사는 비단 희생자 가족이나 그 주변 사람들만이 이러한 정신적 공황을 겪은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불특정 다수의 국민들에게서 패닉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튼튼한 국가는 건강한 국민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국민이 병든 국가는 결코 건강한 국가가 될 수 없다. 여기저기서 사회적 인격장애로 고통을 받는 중에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상상하기조차 무서운 행위를 저지르기 시작한다면 그 사회는 이미 회복 불능 상태에 이를 것이고, 국가는 머지않아 붕괴될 것이다.

정부는 국민 치유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상처받은 국민들을 보듬고 같이 울어주어야 한다. 대통령은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모든 부정과 부패를 몰아내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수족이라도 잘라낼 각오를 해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은 그러한 정의를 과감히 실행할 수 있을 만큼 도덕적이어야 한다. 정치가와 행정관리들에게서 도덕성이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부패는 참사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 그 어떤 정치가보다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해 강한 질타를 했던 정치가였다. 이제 우리 국민은 대통령을 지켜볼 것이다. 그의 정부가 무능한지 아니면 유능한지, 그리고 그의 정부가 위기 상황에서 국민을 지킬 수 있는지 아니면 또 다시 국민을 버릴 것인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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