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이여 안녕
2013년이여 안녕
  • 편집부
  • 승인 2013.12.25 17:58
  • 호수 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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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규 인(보은향토문화연구회/보은장신)

또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몹시 어수선하고 불안하지만 자연의 풍경은 그저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여기 저기 흰 눈이 말없이 쌓여있고 가지 끝에 남아있는 산수유 열매는 삭막한 주변을 애틋하게 보듬어 줍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로 시작된 이 시대와 사회에 대한 성찰이 일파만파로 번져가고 있습니다. 이기적인 일상사와 경쟁에 파묻혀 공동체의 안녕을 소홀히 했던 사람들이 이제 안녕하지 못한 자신과 더불어 더 안녕하지 못한 이웃과 사회에 대한 당연한 안부를 물어오고 있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내면과 사회 밑바탕에 똬리를 튼 모순과 불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이제 색다른 송구영신의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안녕한 내일을 여는 밑거름이 될 조짐입니다. 2013년의 세모(歲暮)가 각별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세모에 대한 감회는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좋은 일이 많았던 사람에게는 올해가 가는 것이 아쉬울 것이고 나쁜 일이 많았던 사람에게는 얼른 털어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 할 것입니다. 대체로 나이가 많을수록 또 삶 자체가 힘이 들수록 허전한 마음이 더욱 큰 자리를 차지합니다. 물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 특히 이 세상과 이웃을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작은 온기를 나누어 왔던 사람들은 향긋한 세모의 정취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생뚱맞은 미술품 경매 결과에 많은 국민들이 의아해합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가 소장하고 있던 미술품들이 예상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모두 낙찰되었다는 TV 뉴스는 대부분의 국민들을 잠시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었습니다. 경제가 어렵다는 말도 빈 말이구나하는 생각과 더불어 혹시라도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그 고가의 미술품들에 대한 뜨거운 인기(?)를 정작 당사자들은 그들이 지은 잘못에 대한 면죄부로 오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소박한 걱정도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서민들은 엄두도 못 낼 거액에 그 미술품들을 낙찰 받은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습니다.  다만 서글펐던 것은 우리 사회 일각에 불의와 비리로 얼룩진 사람들의 소장품도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서로 갖겠다고 경쟁하는 일그러진 풍토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 이었습니다.

하기야 미납된 벌금을 확보하기위한 사정 당국의 고육지책에서 비롯된 일이니 누구를 탓 하겠습니까. 그저 아쉬운 것은 그 오염된 물건의 경매에 아예 응찰하는 국민이 없어 그 경매가 계속 유찰되고 있다는 낭보(?)를 접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올 겨울 들어 눈이 자주 내립니다. 소리 없이 쌓이고 말없이 녹는 것이 눈의 미덕이라면  부모님의 존재가, 조건 없는 보시(布施)가 모두 눈을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소리없이 쌓였다가 말없이 녹는 눈은 봄이 오면 새로운 생명의 원천이 됩니다. 시간의 흐름 또한 모든 아픔과 슬픔을 품고 치유하고 또한 새로운 기쁨을 잉태합니다.

이제 안녕하지 못한 2013년을 보내고 보다 안녕한 새 해를 맞을 시간입니다. 해가 저물어 가면서 개인에 따라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는가 하면 지독한 열패감에 젖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성취감과 열패감 모두 개인적 차원의 소회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소회의 최종 귀착점은 개인입니다.

하지만 개인적 소회를 떠나 사회적 차원에서 한 해를 되돌아보는 성숙한 시선이 더없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과연 2013년에 우리 사회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얼마나 키워왔는지 냉철하게 따지면서 그것과 관련하여 나 자신의 역할을 점검하는 세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또 국가적으로나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습니다. 모쪼록 새 해에는 우리 모두가 이고득락(離苦得樂)의 경지로 성큼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독자 여러분, 새 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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