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공존하는 삶
지구와 공존하는 삶
  • 편집부
  • 승인 2013.12.19 09:21
  • 호수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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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선(내북봉황/민주평통자문위원)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엔 전기밥솥도 없고 냉장고도 없고, 심지어 선풍기도 없이 산다. 육식도 하지 않는다. 물론 자동차도 몰지 않는다. 그렇다고 얼렁뚱땅 대충 사는 것도 아니다. 시민단체의 대표도 몇 개나 맡고 있고 시민활동이라면 그를 따라가기 힘들 만큼 헌신적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은사님 중의 한 분인, 45년간 대학에서 동서양의 고전을 강의하며 동서양의 종교와 철학을 두루 섭렵했던 교수님은 수십 년간 1일 1식의 삶을 사셨다. 수많은 저서와 활발한 강의활동을 한 그 교수님은 2006년 93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씨알의 소리> 함석헌(1901~1989) 선생도 1일 1식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종교 사상가이고 철학가이면서 오산학교 교장을 지낸 교육자, 수많은 어록과 저서, 노자의 <도덕경> 등을 번역한 다석 류영모(1890~1981) 선생은 더 일찍이 1일 1식의 삶을 사셨다.

이 분들이 1일 1식을 했던 깊은 뜻은 다 헤아릴 수 없으나 분명, 물질에 대한 욕망, 굶주리는 사람들, 지구 환경 등에 대한 깊은 성찰도 있었으리라. 그런데 놀라운 건 이분들이 한결같이 장수했다는 점이다. 벌써 20~30년 전에 93세, 88세, 91세까지 사셨으니 100세 시대라고 하는 요즘의 관점으로 봐도 장수임에 틀림없다. '잘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 라며 시도 때도 없이 배 두드리며 먹는 우리네 모습이 무색하지 않을 수 없다.

보릿고개를 겪으며 먹을 게 없어 배곯던 시절이 오래 전 일이 아닌 우리가, 먹을 것이 풍족해지면서 요즘은 뷔페가 일상이 될 만큼 먹는 게 넘쳐난다. 결혼식, 백일, 돌, 칠순, 팔순, 각종 이러저러한 행사엔 거의 뷔페가 대세이다. 뷔페는 수십 종류의 화려한 음식들로 식(食)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한껏 자극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최대한 많이 먹도록 현혹한다. 그 많은 종류의 고기들이 무얼 먹여 어떻게 키운 고기인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키운 콩인지, 얼마나 오래된 재료인지 알 길이 없어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십 종류의 음식에 마음을 빼앗긴 채 속된 말로 '배가 터지도록’ 먹는다.   

말할 것도 없이 육식의 증가는 축산의 증가를 부른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의 80%가 이산화탄소이고 그 이산화탄소의 3분의 1이 축산을 통해 나온다. 집 마당에서 소 돼지 닭 몇 마리를 키워 잡아먹는 시대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우리가 섭취하는 고기의 대부분은 공장이나 다름없는 축사에서 처음부터 상품으로 키워지고 있다.

공장식 축사가 가져오는 환경적 위해는 메탄가스의 방출로 인한 지구 온난화, 분뇨로 인한 수질오염, 사육동물의 증가로 인한 자연 생태계 축소, 막대한 곡물 소모 등 다양하다. 특히 가축의 대량 사육으로 인한 분뇨는 하천과 호수의 수질오염의 주범인 '빅쓰리’ (공장, 가정, 축산 폐수) 중의 하나일 뿐 아니라, 바로 지구 온난화에 기여하는 탄산가스의 가장 큰 생성원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1인당 연간 고기 섭취량은 2010년 38.7kg, 2011년 40.4kg, 2012년 43.7kg으로 매년 늘고 있다. 육식이 늘면서 과식이 늘고, 과식이 늘면서 음식물 쓰레기도 대폭 늘게  되었다. 우리나라 음식물 쓰레기의 식량자원가치는 연간 18조원이나 되고 처리비용은 연간 6천억원 이상이나 된다. 우리가 배를 두드리며 먹고도 남아, 혹은 맛이 없어서, 혹은 다이어트를 위해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비용이 이처럼 천문학적인데 반해, 지구 한 편에서는 5초마다 어린이가 한 명씩, 기아 또는 영양결핍으로 인한 질병으로 죽어 가고 있다.

식생활 외에도 무의식적으로 소비하는 일상생활에서의 자원낭비도 많다. 우리집도 애들이나 어른이나 아무 생각없이 전깃불을 켜놓고 산다. 부족한 전기를 피부로 느끼며 살아보자는 뜻으로 작년에 집을 지으면서 방 하나는 아예 전등을 달지 않았다. 전깃불 없는 방을 만든 것이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TV,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그냥 켜 놓는다. 물도 콸콸 틀어놓고 사용한다. 물을 졸졸 틀어 받아놓고 쓰면 물도 절약하고 수도 요금도 훨씬 적게 나온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자동차도 너무 많다. 자동차가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시민운동가였던 내가 아는 대전의 한 여성 시의원은 자동차 없이도 매년 우수의원으로 뽑히고 많은 행정학 교수들이 여성 단체장감으로 평가·추천하고 있는 걸 보면 중요한 건 의식과 의지의 문제이다.

현대 인간들은 '물질문명의 혜택’이라는 미명하에 과소비로 흥청댄다. 유한한 자원과 환경을 마치 무한의 화수분인 양 착각하며 끝없는 소비를 하고 있다. 소비가 바뀌어야 생산이 바뀌고, 생산이 바뀌어야 인간과 지구가 공존하는 삶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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