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 편집부
  • 승인 2013.11.13 16:45
  • 호수 2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규인(보은향토문화연구회/보은장신)

입동(立冬)이 지났으니 이제 가을이 끝났다고 하는 편이 마땅할 것입니다. 하지만 올해 가을 날씨가 워낙 좋다 보니 만추(晩秋)의 끝자락에 조금만 더 머무르고 싶은 심정을 접기에는 미련이 남습니다. 개개인의 정서와 취향에 따라 가을을 좋아하는 사람은 늦가을로, 겨울을 애호하는 사람은 초겨울로 불러도 아무런 갈등이 생길 수 없는 그런 시기입니다.

가을 추수는 거의 끝났고 이제 본격적인 김장철입니다. 올해는 마늘과 고추 같은 양념도 가격이 저렴하고 무와 배추는 풍작을 넘어 과잉생산이 되다보니 도시 주부들의 가계부에 여유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농촌 주부들, 특히 김장과 관련된 작물에 기대를 걸었던   농가의 안주인들은 한숨이 깊어집니다. 같은 주부의 입장인데 사는 곳에 따라 이렇게 차이가 나니 말뿐만이 아닌 정말로 도시와 농촌이 상생(相生)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어야 하겠습니다. 이를테면 생산자와 소비자가 표준 김장비용을 공동으로 산정하여 가격에 동의한 후 늘 그 가격에 김장 재료를 공급할 수 있다면 김치의 종주국인 대한민국은 김치를 통해 '신뢰’라는 사회적 자산을 형성하는 데 있어 또 하나의 새로운 모범을 창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전 같으면 이맘때의 농촌은 넉넉하고 여유롭기 이를 데 없을 것입니다. 햅쌀로 가을떡을 만들어 집집이 나눠먹고, 김장을 하는 집에서는 같은 골목에 사는 모든 아줌마들의 건강한 목소리가 함께 어울려 정다운 수다스러움을 빚어냅니다. 크게 도움도 안 되는 아저씨들도 노란 배추고갱이 속에 빨간 양념을 버무린 안주로 사양하는 척 하면서도 막걸리 잔을 쉽게 놓질 않습니다. 술잔이 거듭되면 늘 시국에 대한 비판과 정치에 관한 쓴 소리가 높아집니다. 


요즘은 시골의 소박한 술자리에서도 몹시 거친 단어들이 난무합니다. 보수(保守)라는 말 앞에 '꼴통’이라는 민망한 어휘를 붙이고, 진보(進步)라는 단어는 '친북’ 또는 '종북’이라는 표현과 동일한 의미로 평가됩니다. 어쩌다가 우리 사회가 이렇게 편협하고 무례한 사회로 변했는지 한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어제 뉴스에 정말로 한탄스러운 일이 또 보도되었습니다. 우리 기술로 개발한 최신 전차에 필요한 부품을 포함한 여러 군수품을 납품하는 과정에서 시험평가서를 조작하여 이를테면 짝퉁 군수품을 납품하는 비리가 밝혀진 것입니다. 원자력발전소의 짝퉁 부속품 납품에 이어 국방 분야에서 이런 비리가 터지니 말 그대로 경악할 노릇입니다.

얼마 전 국방 분야 국정감사장에서 별을 셋이나 단 사람이 답변 과정에서 “남한과 북한이 단독으로 전쟁을 하면 남한이 불리하다." 라고 발언하여 국민 모두를 불안하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국방 예산을 비교하면 남한과 북한은 30:1입니다. 최근 10년간의 예산을 누적하면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사이 보다 더 큰 차이가 나는데 어째서 남한이 불리하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되었는데 짝퉁 군수품 납품 비리 보도를 접하니 이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첨단을 넘어 최첨단 장비도 부정(不正)앞에서는 그저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 삼성 장군은 먼저 경고한 셈입니다.    

한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기위해서는 '보수’와 '진보’ 모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두 개념은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개인의 경우에도 어떤 사안에서는 보수적인 사람이 다른 사안에서는 진보적인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국민 대다수가 우리 사회를 이런 식으로 편 가르기 하는 구태의연한 정치를 혐오한다는 사실입니다. 진정으로 경계해야 할 일은 극단으로 치우친 사람들이 자신들의 부도덕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런 편 가르기를 조장하고 확대시키는 짓입니다.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일 년이라는 시간 단위 안에서 그것들은 서로를 안아주고 연계하는 상호 연관된 시기일 뿐입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각자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보수와 진보를 억지로 구분하기 보다는 서로를 보완해주는 도반으로 배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제 진 낙엽 위에 오늘 진 낙엽이 또 쌓입니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는 자연의 가르침을 가슴 가득히 쓸어 담아야 할 늦가을이자 초겨울의 시간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