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보은 무너지면 보은은 없다
청정보은 무너지면 보은은 없다
  • 편집부
  • 승인 2013.09.26 09:29
  • 호수 2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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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선(내북봉황/민주평통자문위원)

몇 해 전부터 딸과 함께 제주 올레길을 걸어보리라 생각해오던 것을 올 찜통여름에 과감하게 실행에 옮겼다. 제주 올레길을 택한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살인적인 경쟁교육 구조 속에서 머리는 늘 뜨겁게 혹사시키면서 몸은 방치해 온 딸에게 걷기를 통한 마음의 여유 찾기와 체력단련의 계기를 주고자 함이 첫 번째 이유였고, 또, 많은 사람들이 칭송하며 찾고 다시 찾는 제주 올레길을 직접 한 번 체험해 보고 싶어서였다.

오가는 날 빼고, 4일 동안 하루 평균 20km씩 6,7,8,9,10 다섯 코스를 걸었다. 운동과 담을 쌓고 사는 딸에게는 힘든 강행군이었다. 독종엄마라고 투덜대면서도 딸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걸은 것은 무엇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 때문이었으리라. 올레길은 코스마다 난이도가 상엸중엸하로 나뉘어 있었고, 힘들고 거친 길도 있었으나 걷다가 어디서 멈추더라도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늘 한 폭의 멋진 그림이었고 우리는 항상 그 그림 속의 주인공이었다. 모든 코스가 저마다 특징과 매력을 갖고 있었지만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7코스는 역시 셔터를 눌러대느라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린 코스이기도 했다. 그러나 7코스 중 가장 절정이라 할 수 있는 강정천~구럼비 바위~강정포구로 이어지는 2km는 해군기지 건설로 막혀 있어 걸을 수도 볼 수도 없음이 못내 아쉬웠다. 강정마을을 지날 때는 수많은 해군기지 반대 현수막과 대자보, 깃발 등이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켜달라고 호소하며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그 일대는, 강정마을을 둘러싸고, 강정천 같은 아름다운 하천이 세 개나 흐르고 바닷가에는 습지보존지역이 있어 해안경관도 무척이나 아름다워 유네스코가 생물권보전구역으로 지정한 곳이라고 한다.

길가 천막 속의 문정현 신부는 자신이 만든 서각작품들을 즐비하게 걸어 놓은 채 하염없이 글귀를 새기며 끝도 없는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신부님의 삶, “다시 길을 떠나다" 라는 책을 사가지고 돌아서는 마음이 답답하고 발걸음이 무겁기 그지없었다. 내 머릿속에는 청정보은을 호시탐탐 노리는 혐오시설들, 이에 무감각한 보은이 교차되었다.

자연과 문화, 지역공동체의 연결을 활성화한 트레일이라는 점을 인정받아 제1회 국제 트레일상을 받은 제주 올레길은 바다 따라 산 따라 계곡 따라 들 따라 마을길 따라 때론 바다 모래사장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길이 헷갈릴 성 싶으면 영락없이 등장하는 빨간 리본과 파란 리본은 걷는 이들을 즐겁게 만들고 지친 몸에 위안을 주며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제주 올레길은 봄에 온 사람은 여름 가을 겨울에, 여름에 온 사람은 가을 겨울 봄에.... 한 번 온 사람은 꼭 다시 찾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자연환경을 잘 지키고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인류가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이다. 지구온난화로 북극곰이 뼈만 앙상한 채 굶어죽은 모습이 얼마 전 TV에 나왔었다.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아열대 기후로 바뀔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올여름 찜통더위도 지구 온난화와 관련이 깊다. 결국 자연파괴는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묵고 가는 관광보은을 염원하는 보은군의 꿈은 언제 이뤄질까? 어느 군의원이 호주엸뉴질랜드 연수를 다녀와 지역신문에 보고서라고 쓴 글에 “(관광객이 넘쳐나는) 그 나라는 길에 쓰러져 있는 나무도 그대로 놔두더라.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더라" 라고 하면서 이어 하는 말이 “그러니 보은도 하루빨리 속리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해서 관광수요를 늘려야 한다" 라고 앞뒤 안 맞는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걸 읽은 적이 있다. 혈세 들여 해외연수 간 건데 학습효과가 거꾸로 나서야! 씁쓸하게 웃은 사람이 나뿐이었을까?

청정보은 지키는데 앞장서야 할 군의원들이 제 역할을 못해, 먹고 살기 바쁜 주민들이 시간짬을 쪼개어 주민발의 신규양돈장거리제한확대 조례개정을 이루어냈으나 군과 의회가 4개월이나 끄는 바람에 결국 양돈장 추진업체들에게 구법 적용받을 시간만 주고 말았다. 만일, 농번기 일손 놓고 군의원들 역할 대신한 주민들의 뜻이 허사되고, 게다가 보은 관문에 대형 퇴비장까지 허가된다면 생존권 문제로 인식하는 주민들, 목숨 걸고 싸울 거 분명한데, 그러잖아도 살기 힘든 판에 더욱 피폐해질 주민들의 삶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묵고 가는 속리산 관광이 되게 하려면 들길 따라 산길 따라 계곡 따라 유적지 따라 올레길 만들어, 나무 심고 꽃 심고 쉼터 만들고 값싸고 편리한 민박집 손님맞이하고, 줄서서 기다리는 보은의 맛집 한두 군데 있으면 사람들은 오지 말라 해도 보은을 찾으리라. 혐오시설 난무하여 청정보은 무너지면 보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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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봉 2013-10-29 07:36:08
보은에서 봉황간 4차선 도로땜에 청주 다니기가 고속도로 처럼 시원하고 빨라졌다. 드라이브하는 재미도 있고. 하지만 보은읍에 거의 다 들어서는 학림이나 신함을 들어서는 순간 차에 같이 있던 외지손님들은 하던말을 멈추고 이게 무슨 냄새냐며 인상을 찌푸리며 묻는다. 돼지냄새다. 보은읍에 살고 있는 나는 할말을 잃고 차 창을 닫으며 죄송하다고 할 뿐이다. 이런 시설을 보은의 관문 봉황에 허가하는 자는 손목을 x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