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성의 좌충우돌 한국살이 ①
베트남 여성의 좌충우돌 한국살이 ①
  • 편집부
  • 승인 2013.02.27 23:11
  • 호수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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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티미에서 이해미가 됐어요

다문화 가정이 일반화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지역에도 다문화가정의 분포도가 매우 높다. 특히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여성들이 많은데 본보는 외국인인 이들이 낯선 한국살이를 어떻게 적응해가고 있는지 한 주부를 통해 엿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2013년 1월 21일  그토록 기다렸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주민등록증이 나왔다.
한국에 오고난 후 남편이 이해미란 이름을 지어주셨기에 그동안 법적으로 인정하진 않아도 동네에 계신 어르신들부터 5살된 아들까지 내 이름은 리티미가 아닌 이해미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더 그 이름을 갖고 싶었다.

그리고 2011년 5월 모내기철에 다문화센터의 도움으로 국적취득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로부터 1년 후에 국적 취득했다. 하지만 서류를 제출할 때 개명신청이 없었다는 이유로 내 이름은 여전히 리티미였다. 또다시 법원을 찾았다. 개명신청서와 창본신청서를 제출하기 위해서다.

떨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드디어 법적으로 이해미란 이름을 가진 주민등록증이 나왔다. 성은 보은 '이’씨이고 이름은 바다 '해’, 아름다울 '미’라는 뜻이다. 처음에 너무나도 감격스럽고 감동했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기쁨도 잠시 서운함이 밀려왔다. 개명하고 나니 리티미 때 있었던 통장, 건강보험증, 운전면허증 까지 모두 이해미로 바꿔야했다. 점점 내 이름을 다시 들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5년 동안 병원이나 다문화센터 외에는 내 이름을 불러준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남편만 빼고는 내 이름이 리티미라는 걸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나의 진짜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친정엄마말로는 25년 전에 내가 태어날 때 아버지가 날 보며 앞으로 건강하고 착하고 예쁘게 자라라고 '리티미’란 이름을 지어주셨다고 했다. 아버지께 죄송하지만 나는 후회하진 않는다. 리티미로 살아온 세월보다 이해미로 살아갈 시간이 더 많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베트남 향기 가득한 19살 아가씨였던 내가 한국으로 시집와 5년 넘게 사는 동안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는 한국 아줌마들을 닮아가고 있었다. 참 신기하다.

한국 이름을 가졌다고 해서 한국 사람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나는 할 수 있다. 새로운 이름으로 부족하겠지만 지금보다 더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리티미였을 때는 못한 일, 실패했던 일들을 이제 이해미로서 다시 도전하고 싶다.

새해에도 지금처럼 가족들은 건강하고 모든 일이 잘 풀리면 좋겠다.
소중한 나의 두 개 이름의 공통점은 '아름다움’이었다. 내 삶도 내 이름처럼 아름다울 거라는 기대를 한다.


☞이해미씨는 보은읍 지산리에 거주하고 있으며 6년전 결혼한 남편 박종선씨와의 사이에 6살된 아들과 20개월 된 딸을 두고 있다.
리티미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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