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4월 보은군 보건소가 취약계층의 질병예방 및 조기발견을 위해 맞춤형 방문보건사업을 시작했다. 5년이 지난 현재 7명의 방문관리사가 군내 약 2천800명의 대상자를 직접 가정으로 찾아가 맞춤식 보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방문보건사업은 가정과 사회복지시설 등을 방문하여 행하는 보건의료사업으로 지역주민들의 건강관리를 수행하는 보건소의 기본업무로 자리 잡았다. 지난 4월 30일 보은군 방문건강관리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양선옥(51, 간호사) 방문간호사와 유수경(45, 보건7급) 방문보건담당 주사를 따라 오후 일과를 함께 했다.
#집으로 찾아가 건강을 챙긴다
점심식사를 마친 양선옥 방문간호사와 유수경 주사는 부랴부랴 양치질을 마치고 곧바로 오후 방문에 나섰다. 오전에 3가정을 방문했고 오후에는 4가정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오래되어 털털거리고 '삐걱’ 소리가 나는 방문보건차량을 타고 방문지로 향했다. 방문건강관리팀에게 배정된 차량은 모두 2대, 7명의 방문간호사들이 번갈아 가면서 이용을 하고 있다. 방문보건차량이 부족해 본인들의 차량을 이용하고 있는 실정으로, 차량 추가지원과 신차 보급이 절실해보였다.
이날 오후 첫 방문가정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50대 초반의 여성이다. ㅂ모(52, 보은읍)씨는 4년 전부터 앓기 시작한 파킨슨병으로 인해 집밖 출입이 어렵다. 얼마 전에는 홀로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현관 유리창에 부딪혔고, 깨진 유리창은 그대로 있었다.
마침 연락을 받은 보은노인장애인복지관 사회복지사가 깨진 유리창을 떼어내고 임시방편으로 비닐을 이용해 창을 막고 있었다.
갑자기 여러 사람이 찾아와서인지, 긴장을 해서인지 ㅂ씨가 갑자기 호흡곤란 증상을 보이며 발작을 일으켰다. 모두들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는데, 양선옥 간호사는 자주 겪었던 일처럼 베개를 고쳐주고 가슴을 들어주면서 귀에 대고 크게 호흡하라면서 긴장을 풀어준다. 또 간호사 출신답게 혈압계와 청진기를 이용해 이런저런 체크를 하고, 팔다리를 주물러주고 물 한 모금을 건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ㅂ씨가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정신을 차린 ㅂ씨는 “밤에 무서워서 잠을 잘 자지 못한다. 하루 종일 혼자 있으면 무섭다"면서 고통을 호소했다. 이 말을 들은 양선옥 간호사는 자식들과 잘 지내지는지, 식사는 제때 잘 하고 있는지, 다른 불편한 곳은 없는지 등을 물어 체크리스트에 꼼꼼히 기록한다.
ㅂ씨가 왼쪽 무릎에 찬 물을 빼야겠다고 말하자, 무릎을 확인한 후 복지관 사회복지사에게 읍내 이송을 부탁하고는 40분간의 첫 방문을 마쳤다.
집을 나오면서 양선옥 간호사는 “시골이다 보니 서비스연계가 잘 안된다. 특히 이분은 장애등급을 받지 못하고 장기요양보험 대상자도 아니어서 가족 외에는 돌 볼 사람이 없어 더욱 신경이 쓰인다"면서 자원봉사자와 연계한 의료이송지원서비스의 체계화를 강조했다.
두 번째 방문한 곳은 하루 종일 3평 안팎의 방에서 홀로지내는 ㅇ모(72, 보은읍) 할아버지 댁이다.
양선옥 간호사가 “계세요"하면서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할아버지는 모처럼 만에 찾아오는 손님이어서인지 반가운 얼굴로 일행을 맞았다. 하지만 밝은 얼굴과는 달리 할아버지는 바짝 마른 모습으로 채 40㎏도 나가지 않는 상태였고, 방안 환경도 여기저기 곰팡이가 피어 할아버지의 건강이 우려됐다.
양선옥 간호사는 할아버지 건강을 곧바로 체크했다. 빈혈검사와 혈압체크를 하고 드시고 있는 약을 확인했다. 변비약, 심장약, 무좀약 등이 쏟아져 나온다.
양선옥 간호사가 “식사는 제대로 하시냐"고 묻자, ㅇ씨 할아버지는 “집사람이 아침 일찍 식당일을 하러 나가면, 입맛이 없어서 밥도 안 넘어간다"고 답한다. 할아버지에게 안마를 해드리면서 양 간호사가 “혼자 있다고 식사를 거르니까, 체중이 더 줄고 변비까지 생기는 것이다. 식사를 조금이라도 계속 드셔야 하고, 또 물도 자주 드시고 담배도 끊고 종종 밖에 나가서 햇볕도 쐬고 마을주민들도 만나시라"면서 목이 멘다.
이 말을 들은 할아버지도 “가끔씩 선생님이 와서 건강관리도 해주고 말동무도 해주어서 고맙다"면서 눈물을 흘린다. 옆에 있던 유수경 주사가 “오래 사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시는 동안 건강하게 사셔야 한다"면서 무거운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한달 뒤 다시 찾아 뵐 것을 약속하고 방안을 나왔다. 양선옥 간호사는 “약은 약을 부른다. 이 어르신의 경우도 운동도 하지 않고 식사를 제때 하지 않으니까, 식욕장애, 수면장애, 우울증, 변비 증상이 나타나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이런저런 약에 의존하게 된다"면서 의식개선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관리한다
세 번째와 네 번째로 방문한 가정은 건강상태는 큰 문제가 없지만, 정신건강이 위기상태에 있어 주로 대상자들과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세 번째로 찾은 곳은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ㅎ모(42, 보은읍)씨 가정이다. 양선옥 간호사는 운동부족으로 비만상태인 ㅎ씨의 혈압을 체크한 후, “어머니 말씀 잘 듣고, 하기 싫어도 운동 열심히 하고, 물 많이 마시라"고 또박또박 이해를 시킨다. 이어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하루에 2번씩 안마를 꼭 해드리라고 하면서 직접 안마시범을 보이고 ㅎ씨로부터 약속을 지킬 것을 다짐 받는다.
이어 ㅎ씨의 어머니와 대화를 시작했다. 7~8세의 지적능력을 갖고 있는 자식을 위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어머니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한 것이다.
방문을 마치고 나오면서 양선옥 간호사는 “이 가정은 아들보다 어머니가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잠시도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으려는 아들 때문에 어머니가 집안 일 외에는 아무것도 못하고 집 밖으로 일절 나오지 못하고 있어 정신적으로 위기상태에 놓여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마지막으로 방문한 가정은 다문화가정으로, 베트남 출신 며느리가 집을 나가 네 살짜리 손자와 함께 살고 있는 ㅂ모(83, 수한면) 할머니 댁이다.
4살 임에도 아직 말이 서툰 손자에게 이런저런 말을 시킨 후, 양선옥 간호사는 할머니의 혈압을 체크하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할머니는 평소 안면이 있었던 양 간호사에게 그동안 속에 쌓여 있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야기에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1시간 넘게 할머니와 대화를 한 후, 집을 나왔다.
보통 한 가정의 방문은 한 시간을 넘지 않지만, 몸보다는 마음이 아픈 대상자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므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보면 2시간을 넘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양선옥 간호사는 “세번째와 네 번째 방문한 가정의 대상자들은 신체적으로 큰 문제가 없지만,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고 있는 분들이다. 그냥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그 분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유수경 주사는 “지역에 너무 어려운 분들이 많다. 방문간호사들이 많은 고생을 하면서 취약계층들의 건강을 돌보고 있다"면서 “보은의 노인인구가 점점 많아지고 독거노인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중앙정부와 보은군에서 방문보건사업에 지원을 확대하고 방문간호사의 신분과 처우가 안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후 5시가 넘어 보건소로 돌아온 양선옥 방문간호사와 유수경 주사는 방문결과를 정리하는 것으로 바빴던 하루 일과를 마감했다.
#방문건강관리사업과 방문건강관리사는
방문건강관리 대상은 군내 의료급여수급자, 저소득주민, 다문화가정, 독거노인, 지역사회기관에서 의뢰한 건강문제가 있는 주민들이 대상자이다. 서비스내용은 가족구성원의 건강검사, 만성질환에 대한 보건교육 및 상담, 혈압·혈당 등 측정, 지역사회자원 연계, 방문요구도 조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대상자들의 신체적 기능 향상과 심리적 안정에 도움을 주고 있다.
전국의 보건소에서 시행하고 있는 방문건강관리사업으로 인해 65세 이상 노인 1인당 진료비가 연간 22만원씩 절감되고, 19세 이상 국민은 연간 16만원의 진료비 절감효과가 있다는 분석결과도 있는 만큼, 이들 방문간호사들에 대한 보수나 처우개선이 중앙정부 차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현재 보은군 보건소에서 방문건강관리사업을 맡고 있는 방문건강관리사들은 간호사, 운동처방사 출신임에도 열악한 보수와 계약직으로 신분보장이 되지 않는 상황에 처해있다. 보은군의 경우는 도시와 달리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대상자를 찾아다니다보니, 1인당 약 450가정을 담당하고 있는 방문간호사들은 많이 이동해야 하고, 사비를 털어 써야 하는 경우가 잦다. 오지수당, 차량유지비, 통화료 등을 군비로 지원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