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외면 대원리
보은에서도 18km 들어오는 이곳 대원리는 땅이 고르지 않고 돌들이 많은 데다 논과 밭이 따닥따닥 붙어 있어 농기계를 사용하기도 쉽지 않은 곳이다. 이곳에서 농약과 비료, 제초제를 쓰지 않으며 농사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생태적인 삶을 꿈꾸기에 땅을 살리려고 우리가 빌려 농사 짓는 논과 밭은 친환경농법으로 땅을 일구고 농작물을 키워낸다. 그래서 큰 수확을 얻지 못할 때가 많다.
마을 어르신들이 보기에 어쩌면 우리는 어리석고 게으른 초짜배기 농부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매년 밭에 무섭게 올라오는 풀을 다 감당하지 못해 농작물보다 더 크게 자랄 때는 어르신들이 지나가며 한소리 하신다.
“아, 그 약 한 번 치면 되는 걸 왜 그리 고생혀?”
그럴 때 우리는 다른 대답을 할 수 없다.
“그러게 말여유.”
하고 허탄히 웃기만 한다.
리집이 빌려서 농사짓는 논은 마을에서도 물이 많기로 소문난 고래실논이다. 고래실논이라고 하면 옛날에는 물이 많아서 좋은 논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수로의 물을 쉽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너무 많아서 질논이 되어버려 오히려 농사짓기 힘든 논이다. 논장화를 신고 들어가면 발이 푹푹 빠져 발을 떼기 힘들 정도이다. 그래서 로터리를 쳐서 논을 삶기도 힘들고, 물이 많아 가장자리에 심은 모들은 물 위에 떠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거나 물에 빠져 녹기 십상이다.
모가 물에 잠겨도 안 되지만, 모가 심겨진 땅이 물 위로 드러나도 안 된다. 그러면 단박에 피가 나기 때문이다. 피가 나기 시작하면 정신이 없어진다. 모가 작을 때는 피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비슷해서 뽑기 힘들고, 모가 커지면 피는 더 커져서 구분하기는 쉽지만 논에 뿌리를 깊이 내렸기 때문에 뽑아내기가 힘들다. 그만큼 한 해 논농사는 땅이 평평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매우 많이 달라진다.
언제가 한 번은 논의 평탄작업이 잘 안 된 데다가 물이 너무 많고 질어서 논의 한 부분은 도저히 이앙기로 모를 심을 수 없어 손모내기로 겨우 모를 심기도 하였다. 물론 이웃들이 도와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바쁘고 고된 농사철이어서 시간 내기 힘든데도 햇살이 비껴가는 이른 아침과 늦은 오후에 삼삼오오 모여 함께 손으로 모를 심어주었다. 오히려 그 해의 모들이 튼튼하게 심겨져 더 많은 쌀을 수확하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 벼농사는 유난히 힘들었다. 올여름 유난히 뜨거웠기도 했고, 듣도 보도 못한 물여뀌라는 놈들이 논에 자리를 잡고 모보다도 빠르게 커서 모들을 덮을 정도였다. 물여뀌들이 모 사이사이에 어찌나 강하게 파고 들었는지 수만 개의 뿌리를 땅에 내렸다. 피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판 싸움을 벌였지만 결국 내가 졌다. 피 뽑느라 손가락 마디가 아프고, 한동안 괜찮았던 허리만 더 아파졌다. 그리고 피는 채 다 뽑지 못해 벼보다 더 크게 자랐다. 완전 K.O패 당했다. 매년 벼농사를 짓는 데도 해마다 새롭고, 스펙터클하다.
우렁이농법을 하기는 하는데 실제로 우렁이가 풀을 먹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다가 논에 가보면 우렁이들은 야속하게도 짝짓기에만 바쁜 듯해 보였다. 모를 먹는 건지, 피(논에 나는 풀, 잡초)를 먹는 건지 확인할 수가 없다. 다음 주엔 추수를 해야 하는데 걱정이다.
농사 지은 지 오래 된 마을 어르신들이 허리가 굽고, 무릎과 다리 등의 통증으로 아파하는 모습을 볼 때 10년 후, 20년 후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할 때도 있다. 그러나 몸은 고되어도 건강한 쌀과 고추, 감자들을 추수할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또 우리의 건강뿐 아니라 우리가 정직하게 농사지은 농산물을 도시의 소비자들에게 함께 나누어 그들의 건강까지 책임지는 일이니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라도 위안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어리석어 보일 수 있다.
농사 짓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때이다. 힘들게 농사 지어도 쌀값을 제대로 받기 어렵고, 채소 물가가 올라가기는 하지만 정작 농부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치솟는 물가는 중간상인들의 몫인 듯하다.
무엇보다도 기후 변화가 심해 기후 변화에 따라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기후 변화에 따라 농사 품목의 변화나 대처방법을 세워야 할 텐데 농민들 혼자 대처하기는 어렵다. 국가가 나서서 농업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할 때이다. 농업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