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름의 끝자락은 어디일까요?
이 여름의 끝자락은 어디일까요?
  • 보은사람들
  • 승인 2024.08.22 09:24
  • 호수 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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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철순
시인
마로면 관기약국

뚜르르르 뚜르르르르 두꺼운 여름 벽을 부수는 귀뚜라미의 망치질 소리가 밤새도록 요란합니다. 그래요. 제아무리 무더운 여름도 계절 앞에서는, 귀뚜라미 망치질 소리에는, 힘을 못쓰는 법이지요. 입추 지나고 말복도 지나고 한낮의 더위는 여전하지만 이른 아침엔 조금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네요. 
올 여름, 참으로 견디기 힘든 무더위였습니다. 들일을 하다가 몇 사람이나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도 있었구요. 폭염에 주의하라는 재난문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을 서늘하게 합니다. 에어컨을 틀고 일을 하다가 문을 열면 훅 끼치는 더운 바람은 찜질방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 더위에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 짐승들, 곡식들, 풀들, 나무들, 모두가 안쓰러웠습니다. 나만 시원한데서 일하나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구요. 견디고 또 견뎌야하는 여름은 더 길게 느껴집니다. 
무더위에 에어컨을 하루 종일 틀어놓고 있다가, 선풍기를 틀어놓고 잠을 자다가 감기에 걸려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코로나도 기승을 부리구요. 이제 여름은 사는 게 아니라 견디는 게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무더운 여름은 더 길기도 한지요.
여름휴가 때부터 30분 일찍 책을 덮고 애완견 솔비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은비랑 다니던 둑길을 이제는 솔비를 데리고 다닙니다. 은비를 보내던 3년 전의 그 여름도 얼마나 더웠던지요. 이제 은비는 얼마 전에 새로 나온 나의 동시집 속에서 뛰어다닙니다. 출판사에 부탁해서 은비 사진을 동시집에 그림을 그릴 화가분께 전해달라고 했더니, 곳곳에 은비 그림을 그려주셨습니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은비가 살아서 돌아온 것처럼 동시집 속의 은비를 보고 또 보았습니다. 은비가 동시집 속에서 마구 뛰어노는 것처럼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둑길을 걸으면 풀벌레 소리도 따라오고요. 이름 모를 풀꽃들이 저마다 한껏 멋을 부립니다. 산에 있어야할 칡넝쿨이 내려와 함께 놀자고 발목을 잡아당기고요. 어릴 적 맡던 풀내음은 얼마나 정겨운지요. 벼이삭이 무더위를 뚫고 쑤욱 고개를 내밉니다. 세상이 궁금한 거지요. 귀를 씻어주는 여울물 소리는 오래 나를 머물게 합니다. 
산책길에 만난 작은 풀꽃 두 가지를 데려와 작은 꽃병에 꽂아두고 오래 바라봅니다. 아주 작은 꽃이라 먼데서 보면 꽃인가 싶지도 않은 것이 가까이 두고 보니 꽃잎도 다섯 장이나 되고 꽃술도 제법 풍성합니다.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꽃이 가까이 두고 보니 아주 예쁜 꽃이었습니다. 사람도 그러하겠지요. 무심히 지나치던 사람도 가까이 지내다보면 아주 마음 예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여름휴가 끝자락을 아들네와 함께 동해안에 다녀왔습니다. 너무 더워서 그런지 고속도로도 한산하고 바닷가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 뜨거운 햇볕아래서 바닷물에 뛰어드는 아이들은 행복해보였습니다. 얼굴이 까매지도록 수영을 하고 또 하곤 합니다. 아이들의 물놀이는 폭염 주의보에도 아랑곳없습니다. 당일치기로 다녀온 바닷가지만 오래도록 추억에 남겠지요.
호박넝쿨도 말라 죽이는 이 여름의 끝자락은 어디일까요? 말복도 지났는데 10일치의 일기예보를 봐도 30도를 넘는 폭염은 계속된다고 하네요. 전에는 말복이 지나면 아침 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가벼운 여름 이불이라도 덮어야했는데 말이지요. 모기의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올 여름엔 처서가 지나도 도통 모기입이 비뚤어질 것 같지 않으니 어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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