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을 뽑으며
풀을 뽑으며
  • 보은사람들
  • 승인 2024.06.27 09:50
  • 호수 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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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윤이
산외면 대원리

농사를 짓다 보면 가장 힘든 일이 풀을 뽑는 일이다. 특히나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는 나에게 풀은 공존하고 싶지 않아도 공존할 수밖에 없고, 뽑고 싶지 않아도 뽑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기도 살아보겠다고 자라는데 내가 키우고 싶은 작물 옆에 자란다는 이유로 가차 없이 뽑아버리니 가끔은 미안하기도 하다. 미안해서 최대한 늦게 뽑고, 꽃을 피울 때까지 기다려 주기도 한다. 개망초, 애기똥풀, 명아주, 질경이, 토끼풀 등 제 나름의 이름이 있는 풀인데 ‘잡초’라는 이름으로 뽑혀야 하니 풀들의 짧은 생에 미안할 뿐이다.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에게 풀은 제거 대상이 아니라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처럼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할 대상일 수도 있다. 이름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랑스럽고 예쁜 풀꽃들이 얼마나 많은가. 물론 도시에서도 공원이나 정원 같은 데서 자라는 풀들은 어김없이 뽑히고 잘리지만 말이다. 

안타깝지만 농부들에게도 풀은 없애야 할 대상이다. 논과 밭에서 자라는 풀은 작물에 공급하는 양분을 빼앗고 햇빛과 바람을 막아 작물의 생장을 저하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뽑을 수밖에 없다. 그 중엔 생명력이 질겨 다시 뿌리를 내리는 것도 있다. 그래서 풀은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김수영 시인의 시 “풀”은 비를 불러오는 동풍에 나부껴 눕지만 결국엔 바람보다 빨리 일어난다고 표현해 거센 바람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을 의미한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작물 옆에는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르고, 더 강한 풀들이 자란다. 지난 봄에 취나물을 뜯을 때 취나물과 비슷한데 갈수록 더 커지고 뾰족해지는 이름 모를 풀을 보았다. 그 풀이 어릴 때는 취나물과 여간 비슷한 것이 아니어서 취나물인 줄 알고 뜯을 뻔했다. 그런데 커갈수록 취나물과 다르게 안쪽이 하얗고 잎도 더 뾰족해지고, 줄기도 강해지는 걸 보았다. 그때는 취나물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지난 2주 동안 작은 논에서 김매기를 하였다. 김매기란 “작물의 생장을 방해하는 쓸데없는 풀을 없애고 작물 포기 사이의 흙을 부드럽게 해주는 일. 논이나 밭에 자생하는 불필요한 풀을 ‘기음’이라 하고 이를 손이나 연장으로 뽑아버리거나 흙에 묻어 없애는 일을 ‘김매다’라고 하며, 매는 곳에 따라서 ‘논매다’ 또는 ‘밭매다’라고 한다”라고 네이버지식백과에 써 있다. 밭에도 기음(풀)이 많았지만 논이 급해 논매기를 먼저 했다. 

한 줄로 시원하게 모가 자라야 하는데 모와 모 사이, 모 바로 옆에서 모와 비슷하게 자라는 풀들, 그리고 물여뀌라는 풀까지 논을 가득 메워 논이 잔디밭처럼 무성하였다. 이걸 언제 다 뽑을까 싶었는데 남편과 하루하루 풀을 뽑다 보니 잔디밭이던 논이 비로소 논이 되어갔다. 
사실 내겐 김매기라는 말보다 피(풀) 뽑기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 논의 풀을 뽑을 때는 모 사이에 난 풀뿐 아니라 모 바로 옆에 난 풀들을 조심스럽게 뽑아야 한다. 모와 모 사이에 난 풀들은 확실해서 뽑는 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모 옆에 난 풀은 조심해서 뽑아야 한다. 모 옆에 난 풀은 모와 비슷해서 자칫 모까지 뽑을 수 있다. 모보다 풀이 많은 곳은 풀에 딸려 모까지 뽑히는 경우도 있다. 풀이 모랑 비슷하지만 모보다는 더 가늘고 색깔이 좀 더 연하다. 하지만 조금 더 크면 모보다 굵어져 뽑기 힘들다. 

농사는 타이밍이다. 다 때가 있는 것이다. 마을 어르신들은 “쯧쯧쯧, 약 한 번 쳐”라고 안타까운 마음에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 하신다. 어떤 어르신은 “제초제 나오기 전에는 우리도 다 손으로 피 뽑았어”라고 말씀하신다. 하루하루 조금씩 풀을 뽑다 보니 풀이 거의 없어지자 지나가던 마을 어르신이 “그래도 사람 손이 무서운 거여.”라고 하셨다. 힘들었겠지만 사람 손  이길 풀이 없다는 말씀이실 것이다. 아직 큰 논의 풀은 다 뽑지는 못했지만 또 하루하루 뽑다 보면 언젠가는 논의 모가 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점점 깊이 뿌리를 내리고 분얼(分蘖, “벼, 보리 등 분얼성 식물의 새로운 줄기가 형성되는 현상.”-농업용어사전)을 해서 자라고, 이삭을 패서 벼가 노랗게 익어가면 기쁜 마음으로 추수할 것이다. 

장마를 앞둔 6월의 끝에서, 풀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다른 한 편으로는 빨리 제거해서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두 마음이 왔다갔다 한다. 오랜 가뭄으로 마당의 풀들이 바짝 말라 잎이 오그라들더니 비가 오고 나니 기지개를 켜듯 말린 잎들이 온몸을 쭉 펴고 생기를 되찾았다. 장마가 오면 더 빨리 쑥쑥 자랄 텐데 한 편으론 걱정이고, 한 편으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어쩌면 겨울이 오기 전까지 나는 천천히, 게으르게 풀을 뽑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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