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다리를 잘랐다
가구 다리를 잘랐다
  • 김수진
  • 승인 2024.06.05 10:00
  • 호수 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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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심웅섭
회인 해바라기TV 운영자

“여보, 탁자가 너무 높은가 봐. 노트북 자판을 한참 두들기면 어깨가 아파”


아내가 엉거주춤, 두 손을 허공에 치켜들며 말했다. 탁자 설계자이며 제작자인 나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소비자 불만이다.


“그래? 이상하네. 원래 의자 높이는 40cm, 탁자는 70cm거든. 거기에 맞추어 만든 건데”
아내는 요즘 동화작가를 꿈꾸며 글쓰기에 재미를 붙여가는 중이다. 환갑 나이에 열심히 강의 듣고 글 쓰는 모습이 대견하기 그지없다. 그런 아내가 불편하다니, 이유를 떠나서 해결해야 한다. 혹시 싶어서 ‘내 몸에 맞는 테이블 높이’라는 검색어로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그런데 뜻밖의 정보를 발견했다. 사람의 키에 따라 탁자와 의자의 높이가 다르단다. 키에 따라 적정 높이를 구하는 공식까지 나와 있어서 우리 부부에게 맞는 높이를 구해보았다. 탁자는 65cm, 의자는 36.5cm다. 현재 높이에서 5~6cm를 잘라야 한다. 지금까지 불편함을 몰랐는데 이게 맞는 걸까, 확인해 보려고 의자에 앉아서 내 자세를 관찰했다. 엉덩이를 깊게 뒤로 넣고 앉으니 발꿈치가 바닥에 닿지 않는다. 발가락이 겨우 닿아 짧은 다리를 지탱할 뿐이다. 그렇다면 발을 반쯤 들고 있느라 피로했을 것이고 엉덩이에만 체중이 실려서 척추에도 무리가 갔을 것이다. 아니면 의자 끄트머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앞으로 쏠린 자세였을 테니 이 또한 척추에 무리를 주었다는 말이다. 탁자도 그렇다. 내 몸에 맞지 않은 높이에서, 게다가 자판과 모니터가 붙어있는 노트북으로 글을 썼으니, 자판을 두드리기 위해서 두 팔을 공중부양했을 것이다. 머리가 나쁘면 손, 발이 고생한다더니, 나의 무지로 그동안 아내가 어이없는 불편을 겪었구나 싶다.


그럼 내가 알던 40과 70이라는 숫자는 어디에서 나온 걸까, 궁금하여 조금 더 읽어보니 키 170cm에 맞는 높이란다. 대한민국 남녀 어른의 평균 키가 그쯤 되려나 싶다. 어쨌든, 공장에서 만들어 내는 기성품 가구에서 채택한 숫자라는 말이다. 우리 부부는 이 숫자에서 둘 다 한 뼘은 작으니, 그동안 남이 만들어 준 기준에 내 몸을 맞추며 살았다는 거다. 허튼 웃음이 나왔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세상을 통찰하는 지혜는 아니더라도 내 몸에 맞는 가구 높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그냥 소비자도 아니고 맞춤형 생활 가구를 제법 뚝딱거리고 만들어 내는, 자칭 야매 목수가 아닌가? 침대 길이에 맞추어 사람들의 다리를 자르거나 늘려서 죽였다는 그리스 신화가 있거니와, 맞지 않는 기준에 억지로 맞추며 살아온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인가?


공식에 맞추어 의자 다리를 반 뼘쯤 잘랐다. 너무 많이 자르는 것 아닌가, 겁도 나지만 그동안의 무지에 대한 사죄라도 하듯 용감하게 싹둑 잘랐다. 바닥에 놓고 앉아보니 세상에나, 발꿈치가 닿는다. 체중이 분산되어 편안하다. 5cm의 길이가 이렇게나 엄청난 편안함을 선사하는구나 싶다. 이번에는 탁자의 다리를 잘랐다. 요건 의자보다 좀 어렵다. 네 다리 중 하나가 짧아져서 자꾸만 기우뚱거린다. 괜히 이놈 저놈 잘라서는 복잡할 듯하여 짧은 다리에만 양말을 신기는 특별 조치를 했다. 앉아보니 팔꿈치가 편안하다. 이제 노트북 앞에서 얼마든지 글을 쓸 준비가 된 것이다.


의자 다리를 자르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수평과 높이를 맞추어 금을 긋고, 톱으로 살금살금 썰어주면 그만이다. 문제는 내 몸에 맞는 높이를 구하는 일, 아니 그보다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나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최초의 깨달음일 것이다. 잘라낸 의자와 탁자에 편안하게 앉아서 잠시 생각해본다. 가구 높이가 아닌 세상살이에서 나는 내 기준을 세우며 살고 있을까? 남에게 욕먹을까 봐, 인정받기 위해서, 모난 돌이 정 맞지 않으려고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어울리고, 내가 즐거운 방식으로 세상을 노래하고,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남을 존중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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