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가는 날
소풍 가는 날
  • 보은사람들
  • 승인 2024.05.16 10:18
  • 호수 7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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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철순
시인
마로면 관기약국

우리 형제들은 모두 모여서 봄, 가을 소풍을 간다. 그 소풍을 손꼽아 기다린다. 봄 소풍은 사월 초파일, 아버지 제삿날이다. 그리고 가을 소풍은 추석 전 산소에 벌초를 하는 날이다.
봄 소풍 준비를 위해 나는 며칠 전에 쑥을 뜯어다 삶아서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 그날 아침에 따끈한 쑥절편을 만들어 나누어 먹기 위해서다. 해마다 고사리를 사는 분에게 부탁해 고사리도 사두었다. 작년 것도 남았지만 싱싱한 햇고사리가 더 나을 거 같아서다. 시금치 심은 것도 마침맞게 잘 자라 있다. 그날 아침에 뽑아서 파랗게 데쳐서 참기름 넣고 무쳐서 산에 가져가리라. 이제 주말에 고기랑 전 부칠 거랑 과일이랑 장을 보면 된다. 
부처님 오신 날 아침에 오빠와 동생들 만나 산에 올라 아버지 산소에 제사 지내고 그 옆 나무그늘에 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을 생각만 하면 신이 난다.  
“이렇게 소풍오니 좋네, 옛날 맛이네” 동생은 연신 그런 말을 하리라. 누구는 힘들지 않느냐고 하지만 나는 전혀 힘들지 않다.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놓고 어릴 때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그렇게 손꼽아 기다린다. 
가을 소풍도 그렇다. 추석 가까운 주말에 날짜를 잡아 놓고 또 그렇게 손꼽아 기다린다. 가을엔 쑥절편 대신 송편을 준비한다.
어릴 적 우리 집엔 제사가 많았다. 일 년에 몇 번씩 엄마는 제사 준비를 했고, 밤늦게 제사를 지냈던 기억이 난다. 옛날엔 그렇게 늦은 시간에 제사를 지내서, 제사 지내는 걸 보지도 못하고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다음 날 고사리, 시금치나 무나물, 숙주나물 등을 넣어 비벼먹으면 그렇게 달고 맛있을 수가 없었다. 
전에 먹던 이런저런 음식을 준비하며 또  며칠 후면 만날 형제들을 기다린다. 모이는 곳은 우리 집, 나만 고향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모여 헉헉대며 산등성이를 오르면 동구 밖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아버지 산소가 있다. 아버지는 누워서도 자식들이 오는 것을 보고 싶다며, 살아계실 때 손수 자기가 누울 자리를 고르셨다. 자식 사랑이 넘쳤던 아버지, 우리는 그 사랑만으로도 세상 살아갈 힘이 된다. 자식들에게 유산 한 푼 남겨주지 않았지만, 그 보다 값진 사랑을 남겨주셨다. 
어릴 적 소풍을 생각하면 지금처럼 햄이나 맛살 단무지나 시금치 등을 넣고 말아서 예쁘게 썬 김밥이 아니라, 그냥 김에 밥을 둘둘 말아서 썰지 않고 길다란 걸 뭉텅뭉텅 끊어먹던 생각이 난다. 그래도 소풍날에나 먹는 김밥이었고, 없던 시절이라 그런지 꿀맛이었던 거 같다. 그리고 속리산으로 소풍을 갔던 날, 오빠는 나를 따라와서 빨간 모자를 사서 씌워주고 되돌아갔다. 그 빨간 모자를 쓰고 얼마나 신이 났던가.
그리고 또 다른 소풍 중학교 3학년 때 수학여행, 수학여행 경비를 내지 못할 만큼 가난하고 가난하던 시절, 나만 그랬던 건 아닌 거 같다. 수학여행 가는 애들이 얼마 되지 않으니까 수학여행 전날, 집에 가서 수학여행을 갈 것인가 부모님께 물어보고 경비를 가져오라고 선생님은 일찍 집으로 보내주셨다. 십 여리의 길을 걸어 집에 가보니 아버지는 무슨 타작인지 도리깨질을 하고 계셨다. 선생님께서 보낸 얘기를 해주었더니, 아버지는 하던 일을 멈추고 말없이 이웃으로 가더니 돈을 꾸어 내 작은 손에 쥐어 주셨다. 그 날 저녁은 학교 옆 친구의 친척집에서 묵어야 했다. 
십 여리의 길을 하루에 두 번 씩이나 오가서 그런지, 양말이 낡아서 그런지 양말에 구멍이 났고, 석굴암 앞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시오’란 팻말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그만 들어가지 못했다. 드러난 발꿈치가 부끄러워 차마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어릴 적 값진 추억으로 남아있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어릴 적 겪었던 소중한 추억이, 어릴 적 먹었던 소중한 입맛이, 평생을 따라다닌다. 그 추억의 맛을 기억하며 또 봄 소풍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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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선 2024-05-16 10:31:16
흐뭇하게 글쓰고 계시는 작가님의 보습이 보이는듯합니다
행복한 추억이 많은 가슴속에 사랑이 넘치시네요
오늘도 행복한날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