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직 공직자는 주민의 표에 의해 좌우되지만 당선되면 그에 따라붙는 권력이 생긴다. 기관이 제공하는 각종 정보를 선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출직 공직자들의 기능이 예산을 좌우하고 정책을 좌우하고 그에따라 군민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주민들이 님님 하며 모신다. 그래서 어깨에 뽕이 들어갔다, 고개가 뻣뻣하다는 등 자세에 대한 지적부터 실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능력에 대한 평가까지 이뤄진다.
우리지역 선출직 공직자들은 어떨까. 군수와 군의원, 도의원의 취임 1주년이 지났다. 보은군을 비롯해 군의회, 도의회가 각각 취임 또는 개원 1주년을 맞아 의식행사를 갖고 이를 홍보하는 색다른 퍼포먼스도 했다.
그러나 1년을 반추하면서 후보시절 유권자 한 명이라도 더 만나고 후보의 진심이 전해지도록 손을 꼭 잡고, 얼굴을 까맣게 태우면서 들판으로 누비던 그때 내가 당선되면, 내가 군수가 되면, 내가 의원이 되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겠다, 어떤 처지의 군민들이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하고 군민들이 어깨를 펼 수 있게 하겠다는 초심이 그대로 살아있는지, 빛바래지는 않았는지, 하나하나 곱씹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1주년이다.
선출직 공직자, 우리지역에서는 이들이 권력자이다. 평범한 주민, 나와 이웃하며 살던 선한 인상의 주민이 군수가 되고 의원이 된 것인데 무슨 권력자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말을 타니 종을 부리고 싶어서 대우받음이 당연한 것이 됐을 수 있다.
운전기사 딸리고, 차 딸리고, 비서 딸려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느라 운전기사가 안전하게 운전하는 길만 따라 계획된 곳만 찾는다.
먼저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민원현장을 찾지 않는다. 지정 펼침막 게시대가 아닌데도 우리 얘기좀 들어달라고 군수 등 선출직 공직자들이 드나드는 길목에 내걸린 펼침막이 장식이 아니다. 주민들의 울부짖음이고 호소인데도 먼저 주민을 찾지 않는다. 현장 속으로 들어가 주민 얘기를 경청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지 않나? 날짜를 조정하고 시간을 조정해서 겨우겨우 면담약속이라는 거창한 절차를 거쳐야만 겨우 대면할 수 있고 하소연할 수 있다. 군수와 주민이 그만큼 아주 먼 거리의 관계가 돼 버린 것이다.
그 옛날 임금은 백성들의 삶을 느끼기 위해 야행을 했다. 임금일 것이라고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꾸밈을 하고 민초들의 삶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말을 경청도 하고 행동도 살폈다. 그 속에서 자신이 펼치는 정책에 대한 잘잘못 평가도 했다.
임금에 비하면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지체 낮은 평민이 가감없이 사심없이 평가하는 평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얼마나 생동감 있는 현장인가.
현장은 장소로도 특정되지만 그 장소에서 나오는 주민 목소리는 그야말로 현장이다. 답은 현장에 있다고 하면서 맨살 그대로인 현장은 외면하는 것이 현실이다.
할 일이 산더미 같이 쌓이고 결제도 해야하고 출장도 가야하고 해야할 일이 많다는 것을 모르는 주민은 없다. 그러나 주민들이 처한 삶보다 더 시급한 현안은 없다.
매일매일 계획을 세워서 점포를 방문해서 요즘 얼마나 어려운지, 잘사는 잘되는지 물건을 잘 팔리는지 식당은 잘되는지 살피는 것도 수장이 챙겨야 하는 숙제다. 의전이라는 틀, 형식에 얽매이다 보면 주민과의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또 이번 선출직 공직자들에게는 이해충돌이라는 단어가 따라다니고 있다. 매우 부정적인 의미지이고 평가다.
가진 것 없고 줄 없고 백없는 주민이 대다수인 소지역에서 군수, 의원은 갖고 있는 큰 권한을 행사하는 권력자이다. 특별히 권력자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그들이 갖고 있는 권한이나 정보는 그들에게 무기가 된다. 해석여지, 활용 여부에 따라 선출직들은 자기가 하는 사업이나 지인들이 이득을 취할 수 있다.
그래서 군수가, 의원이 선출직 공직자들이 자기자신에게 자기 가족에게 자기 형제에게 보다 엄격해야 한다. 심하게는 손해를 본다는 수준으로까지 자기자신을 낮춰야 한다.
그동안 해왔던 일이고 이번에 특별히 하는 것이 아니고 정당한 영업행위이고 거래라도 신분이 선출직 공직자가 되면 주민들은 상황을 겉에 보이는 것으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공무원들이 많이 이용한다, 줄을 선다는 얘기도 나오면 그건 끝장이다. “공무원들이 지 돈 내고 지들이 이용하는 것인데 무슨 문제냐”고 하겠지만 주민들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무리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설명하고 해명해도 주민들은 이해충돌 사적 이익을 취하는 선출직 공직자로 낙인찍는다. 구제가 되지 않는다.
최근 6, 7년전부터 민원이 있음에도 인도가 개설되지 않던 읍내 한 농촌마을에 특정인이 토지를 매입한 후 인도가 개설됐다는 소문이 꿈틀대고 있다.
인도를 개설한 구간 전체에 인도가 필요한데 시작 끝 다 잘라내고 왜 하필 특정 구간에 개설했는지, 횡단보도도 없이 시내버스 승강장은 마을 쪽이 아닌 하천쪽에 설치해놓았다. 현장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주민 민원이 제기된 곳이라는 설명만으로 납득하기에는 매우 불충분하고 매우 이상한 사업이다. 그럼에도 인도가 필요하다는 당위성이 있으니 그것으로 애써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해충돌은 없는지 따져봐야 한다.
특정점포도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이로인해 우호적 평가가 상당히 빠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취임 1주년, 개원 1주년에 맞춰 기자가 굳이 이같이 문장들을 풀어내는 이유를 선출직 공직자들은 알아차려야 한다.
선출직 공직자도 군민인데 필요하면 취해야 하고 혜택을 누려야 하고 또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력을 취득하기 위한 활동이 범법이 아닌데 하고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주민의 표로 그 직, 즉 신분을 얻었기 때문에 공동이 요구하는 선이 무엇인지부터 살펴야 한다. 그리고 가장 먼저 신념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자기 가족에게, 자기 형제에게, 자기 지인에게 더욱 엄격해야 한다.
정보를 선점해서 얻는 이득이 있다면 이를 취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 더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가져가도록 방법을 제시해주고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 선출직 공직자들이어야 한다.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매지 말고 외밭에서는 신발 끈을 고쳐매지 말라고 했다. 선출직 공직자들의 행동, 말 한마디는 개인의 행동이고 개인의 말이 아니다. 공인 누구의 행동이고 말이다. 그것을 표를 주민들은 항상 평가한다.
도덕 재무장, 청빈까지는 아니더라도 청렴을 위한 자기자신을 가꾸는 긴장 자세를 잊지 말기를 1주년을 맞은 선출직 공직자들에게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