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나무. 많이 들어본 나무이름이다. 언제? 어디서? 백숙요리를 파는 식당에서. 메뉴에 엄나무 백숙이 있다.
보은군이 관리하는 보호수 목록이 대부분 느티나무인데 엄나무라 특이했다. 어떤 역사적인 이야기가 있고 수령이 오래돼서 보호수로 지정이 됐을까? 호기심이 발동한다.
가시로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엄나무가 서식하는 지번을 입력해 탄부면 성지리를 찾았다. 동네를 돌아다녀도 육안으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농번기라 집안에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오르락, 내리락 헤매는 중 다행히 주민을 만났다.
성함은 밝히지 않겠다는 A씨는 70세이고 성지리 출신이고 10년전 귀촌했는데 당시 고향에 빈집이 없어서 삼승면으로 귀촌했다면서 그분이 알려준대로 산을 올랐다. 산이긴 하지만 언덕 정도로 낮아서 오르는데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다. 지명지를 보면 엄나무가 있는 곳이 가름재. 이곳을 중심으로 동쪽은 큰 망지(성지의 옛 지명) 서쪽이 작은 망지라고 했다. 아직 아침이슬이 마르기 전이어서 가름재를 오르는 동안 스치는 이슬에 신발이 젖어 축축했다.
엄나무는 가히 보호수로 지정할만했다. 1982년 8월 보은군 보호수 8호로 지정된 성지리 엄나무는 성인 2명이 두팔을 벌려 나무를 둥글게 감싸 안아도 손가락이 닿지 않을 정도로 굵은 아름드리 노거수였다. 나무의 키는 무려 23미터이고 수령은 330년 정도되지만 수세가 왕성해 다섯 손가락처럼 생긴 잎에서 초록빛을 영롱하게 발산했다. 느티나무와는 다르게 귀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지난 2020년 6월 보호수 엄나무의 몸에 빌붙어 자라던 소태나무가 죽어서 보은군이 제거한 바 있다
주민 A씨는 현재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를 비롯해 주변 3그루가 있었는데 3그루 모두 불에 타서 죽고 현재 한 그루만 남아 있다고 했다. 또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는 가름재에 명당이 있었는데 이 명당자리를 지나가던 노승이 묘를 쓰지 못하도록 엄나무 말목을 박고 갔다고 한다.
그 나무가 자라서 세 아름이 됐고 그중 3그루는 불에 타 없어지고 현재 한 그루만이 남아 있는 것.
마름재에 있던 엄나무 3그루가 불에 타 죽은 후 인업(人業)이 큰 망지에서 오천으로 넘어가는 등투고개로 해서 비지재로 넘어간 후 마을이 작아졌다는 이야기가 지명지에 전해지고 있다.
A씨는 마지막에 죽은 엄나무 굵은 가지가 낮게 늘어져 내가 20대때는 그 가지에 줄을 매고 그네를 타고 놀았다고 회상했다.
또 과거에는 정월 대보름날 새벽에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건강과 운수대통을 비는 동제사를 지냈으나 70년대 새마을사업이 전개되면서 이같은 풍습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전통풍습을 증시하던 문화유산들이 사라지고 있다. 다행히 지명지 등에서 가름재나 보호수 등에 대한 옛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으나 관리가 소홀해지면 남아있는 보호수의 유산마저 사라질 것이 뻔하다. 가름재를 오르는 산책로의 제초작업과 입구에 표지판을 설치하는 것만이라도 보완작업이 필요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