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배고프다'는 말이 있다. 투자하는 돈과 시간, 열정에 비해 예술가로써 성공을 거두기는 그만큼 힘들다는 것이다. 음악 역시 예술의 일종으로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고 있는 예술 분야 중 하나다. 하지만 음악 역시 재능이 있다고 해서 성공하긴 힘들다. 특히, 장송출현은커녕 무대에 설 기회조차 거의 없는 지방에서 음악으로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일 것이다.
'기다리는 님', '세월 그리고 인생', '웃으면서 삽시다' 등의 곡을 발매하며 보은군 내에서 작곡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김윤제(66)씨 역시 오랜 세월 음악을 해오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힌 것은 물론이고 환경도 열악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기도 했다.
이런 김윤제씨가 처음 음악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김윤제씨가 11살 되었을 무렵이었다. 당시 김윤제씨는 보은에 살고 있는 가족들과 떨어져 부산에 자리 잡은 작은아버지댁에서 지내며 학교를 다녔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외로움을 느끼는 시간도 늘어갔다. 그럴때마다 김윤제씨가 찾은 것이 바로 음악이었다. 김윤제씨는 부모님이 보고싶고 그리워질때면 기타를 매고 학교 근처 뒷산에 올라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럴때면 부모님을 보고싶어 울적해졌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곤 했다고.
그렇게 음악에 빠지게된 김윤제씨지만 여느 다른 부모님들이 그렇듯 김윤제씨의 아버지 또한 반대가 심했다. 김윤제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아버지의 반대가 특히 심했죠.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딴따라 하지말라고 반대를 하셨으니까요"라고 말했다.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어온 음악 활동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서울이나 수도권은 말할 것도 없을뿐더러 지방에서 활동하는 가수다 보니 무대에 설 기회도, 노래할 기회도 없었다. 그런 어려움을 몸소 겪고 보니 그때의 아픔이 지금까지도 남아 음악을 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학생들을 보며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진 공부에 전념해라"고 조언한다고.
이렇게 어려움을 겪어오던 김윤제씨는 지난 2009년 현재까지도 그의 대표곡으로 알려진 '기다리는 님' 외 2곡을 직접 작곡하고 발매하면서 여러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충북가수협회 보은군지회의 회장을 자처하면서 보은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을 지원하고 후계를 양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김윤제씨는 "지금까지 음악활동을 이어오며 힘든일을 정말 많이 겪었고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노래할 수 있음에도 무대에 설 수 없었던 아픔이다. 지방에서 활동하는 가수라면 지금까지 누구라도 겪고 있는 아픔이다"라며 "앞으로 충북가수협회 보은군지회를 통해 미약하게나마 그런 아픔을 겪고 있는 음악가들에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