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랑하나 사이에 두고 마을이 두개 …삼승내망 대 옥천 망월, 마로원정 대 옥천 대성리는 이웃사촌
도랑하나 사이에 두고 마을이 두개 …삼승내망 대 옥천 망월, 마로원정 대 옥천 대성리는 이웃사촌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0.10.14 09:23
  • 호수 6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둘레산행 8구간 : 원남중~망월~삼승산~오천치~437.2봉~대성리(월남리) : 도상9㎞

예년에 없이 버섯이 풍년이다. 9월 산행에서도 철 이른 식용버섯을 많이 채취했는데 둘레산 8구간은 그야말로 밀버섯, 가지버섯이 발길에 채일 정도였고 영지버섯도 눈에 많이 띄었다.
별도로 버섯 채취를 하러 간 것이 아닌데도 비닐봉투 가득가득 담아왔다.
지난 10일 원남중학교~내망(망월)~삼승산~오천치~437.2봉~월남리(대성리와 원정리)까지 8구간을 함께 한 종주단은 7명에 불과했다.

둘레산행 첫 구간 산행에 23명이 동참했던 것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10월은 결혼시즌인데다 휴일이면 각종 집안의 빠질 수 없는 대소사가 많으니 그것을 빼놓고 둘레산행에 동참하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이런저런 사정을 뒤로하고 하루를 둘레산행에 쏟은 7명은 우리 보은군의 경계는 어떻게 생겼을까, 우리지역과 이웃하고 있는 인근 지역은 어떤 마을일까 갖고 있는 궁금증을 하나하나 해소했다.

 

◆갈수록 태산이다
올해 1월에 시작한 둘레길 산행이 벌써 10개월째다. 총 10구간을 뛰어 내년 1월에 종료하는 것이지만 당초 계획했던 3구간을 2회로 나눠 마치고 7월 산행은 호우주의보 때문에 8월로 연기해 8구간을 마쳤다.

앞으로 연기하거나 구간을 나누지 않고 현재 계획된 구간대로 종주를 하면 내년 3월까지, 5회가 남은 셈이다. 현재 전체 둘레 중 중간을 통과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둘레산행 참여자와 산악회원들이 줄고 산길이 밝지 않아서인지 산 중에서 헤매는 일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헤맨 구간만 이번 구간까지 4번째다. 5구간인 염치고개~벌전~법수리~국사봉~서탄리목~은운리 언목에서도 헤맸고, 6구간인 은운리~지경리~용수말~노성고개~질고지~거멍산~문티 구간에서는 문티휴게소로 하산할 것을 옥천 방아실 구간으로 하산했다.

7구간 문티재~덕대산~거리고개~금적산~거무티~원남중학교 구간에서도 금적산에서 하산할 때 삼승면사무소 쪽으로 하산해야 할 것을 옥천 구 삼품농원 위쪽으로 하산했다. 구간마다 추가로 2, 3시간은 더 걸렸다.

이번 8구간에서도 역시나 헤맸다. 도상 9㎞ 산행 5시간, 오후 1, 2시면 산행을 마무리 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오후 5시가 다 돼서야 하산했다. 거의 8시간 정도 걸렸다.

이번에는 구간 초입인 삼승산 줄기를 찾는데 부터 혼선을 빚었다. 가다보면 나오겠거니 하고 걸었는데 막다른 곳이 과수원이었다. 이날 산행의 운명을 예고라도 하듯 우거진 나무덤불을 헤쳐가야만 했다. 옷이 걸려 뜯기고 앞사람이 가면서 밀친 가지가 뒷사람의 얼굴을 때리고, 거미줄에 걸리고….

헤매는 와중에도 버섯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비닐봉지에 가득가득 채워가며 갈지자로 걸어 겨우 삼승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찾았고 비교적 편하게 등산을 할 수 있었다. 봉우리가 높은 곳이 없어 힘이 들지 않아서인지 574.4m인 삼승산에 닿았을 때는 너무 허무할 정도였다.  이곳에서 왼쪽 마로면 오천리 방향으로 다시 산행을 이어갔다. 망월 할머니들이 얘기한 만수봉(547 m)도 나왔고 이곳에서 방향을 찾느라 잠깐 애를 먹기도 했지만 곧바로 오천방향의 능선을 찾아 산행을 계속했다. 오천구간 정점에 다다랐을 때 누구랄 것도 없이 밥먹고 가자는데 의기투합해 허기진 배를 소박한 음식들로 채우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능선에는 옥천군과 보은군의 경계라도 되는 것처럼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이게 함정일 줄이야. 누가 설치해놓았는지, 무엇을 잡을 요량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경계 아닌 경계 철조망을 따라 계속 아래로, 아래로 발길을 재촉했다. 옛날 산제당 같은 곳도 눈에 띄었다. 마을과 가깝다는 증거인데도 계속 하산만 했다.

하지만 우리가 택한 길은 산 능선으로 원정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천리 절골 마을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것을 하산이 거의 이뤄진 다음에야 알아차렸다.

 

◆헤매고 또 헤매며 길을 찾다
점심밥을 먹은 곳까지 다시 올라가야 했다. 그 허탈함이란…. 점심을 먹어서 비축해놓은 에너지가 거의 소진될 것 같았다.

그래도 방향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다행이다. 그동안 여러차례 산행을 하면서 능선을 잘못 타 원래 구간을 잡지 못했던 게 경험이 됐는지 이제는 다들 능선을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다.

오천리와 원정리 지하에서 석탄(흑연)이 매장됐던 곳이라는 것을 확인해주듯이 산 중에 검은 흙이 드러나 있는 곳도 있었다. 석탄산업의 침체 및 석탄생산량 저하를 이유로 2008년 폐쇄한 성하상사 마로광업소가 이곳에서 캐낸 흑연양이 얼마나 될까. 석탄 채굴을 위해 굴착한 지하 갱도에는 물이 가득 고였을 것이다.

성하상사 외에도 원정리와 경계인 옥천군 청산면 만월리에도 상원 보은광업소, 근모광산 등 광산이 있었지만 모두 폐쇄됐다.

문득 지하갱도가 어떻게 변했을까 상상하면서 원정리로 방향을 잡아 산행을 계속했다. 옥천 다래실과 오천리 절골과 이어지는 오천치(오천고개)도 지났고 437.2m봉우리도 지났다. 이대로만 가면 목적지까지 순항이다.

하지만 여기서 또 능선을 잘못 잡았다. 청산면 만월리 방향을 탄 것이다. 아마 산중에서 버섯을 채취하는 옥천 주민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번에도 옥천군 땅을 많이 살 뻔했다.

그 아저씨가 가르쳐주는 대로 월남마을로 방향을 잡았지만 마지막까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결국 8구간은 도랑을 따라 난 농로를 타지 않고 임도를 타는 바람에 이번에는 옥천군에 우리 보은땅을 내주는 것으로 산행을 마무리했다.

우리지역의 둘레를 찾는데 여전히 갈팡질팡한 것이다. 산은 호락호락 우리에게 길을 내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여전히 둘레산길은 없다. 지도를 보고 방향을 잡아서 가야한다. 그래서 어렵다.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길이 된다고 하는데 둘레산에서는 길이 되지 못했다. 언제쯤 제 길을 갈 것인지….

종주를 마무리 한 후 다시 종주를 시작해도 여전히 헤맬 것 같은 불길한 마음이 든다.
길은 많이 헤맸지만 수확이라고 하면 버섯을 많이 땄다는 것.

동네마다 거동아 불편한 고령의 어르신들이 거주해 버섯을 따지 못한 탓인지 산마다 버섯이 풍년이다. 이번 산행구간에서도 잡버섯이 널려있었다. 앞에 두고서도 먹는 버섯인지, 독버섯인지 몰라 그냥 지나쳤을 것을 이번 산행을 하면서 버섯 이름도 많이 알았다.

갓이 크고 기둥도 살이 통통한 밀버섯에 연보랏빛을 띠는 가지버섯, 싸리버섯, 밤버섯까지 버섯 모양을 눈으로 익혔는데 아마 내년에 다시 그 버섯을 만나면 여전히 식용인지 식용이 아닌지 헷갈릴 것이다. 확실히 아는 것은 영지버섯. 8구간에서는 영지버섯을 수없이 만났다. 다들 크고 작은 영지버섯을 많이 채취했다.

도토리도 풍년이었다. 옛날에는 한 고을에 수령이 발령받아 오면 산에 들어가 도토리가 많은지 확인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해 흉년으로 먹을 것이 부족하면 도토리 등 임산물이 식량을 대체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보통 들녘이 흉작이면 산중은 풍년이라고 한다는데 올해의 경우가 딱 그 현상이다 이상기후로 모든 농작물은 흉작인데 버섯, 도토리 등 산중 임산물이 풍년인 것을 보면 말이다.

 

◆군은 다르지만 한동네 사람들
이번 산행구간에는 도랑이 군간 경계를 하고 있는 마을을 두 곳이나 만났다. 옥천 청성면 능월리와 경계인 삼승면 내망1리와 옥천군 청산면 대성리와 경계인 마로면 원정리이다.
원남중학교 옆 도랑을 경계로 학교 뒤쪽으로 삼승면 내망1리에 14가구가 있었다.

도랑 건너편에 있던 청성면 능월리 할머니들은 "생활권이 삼승면인데 보은으로 편입하시지 그러느냐"고 하니까 "그렇잖아도 90년대에 통합하려고 주민 투표까지 했는데 마을 노인 몇몇이 반대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마을 주민들을 설득해서 안됐다"고 했다.

통폐합 얘기가 나왔을 때 마을입구에 청성농협 출장소를 설치했는데 면사무소 출장소는 없어서 면사무소에 볼일이 있어 가려면 너무 멀다고 하셨다. 다행히 각종 증명서는 삼승면사무소에서도 발급이 가능하니까 필요한 서류는 삼승면사무소에서 뗀다고 했다.

8구간 하산 종점이었던 월남마을은 옥천군 청산면 대성리와 마로면 원정리 일부를 일컫는 자연마을명이다.
주민들은 월남도 아니고 월래미라고 불렀는데 대성리 10여가구, 원정리 한 가구가 월남마을에 속한다.
이들은 행정구역으로 보은군과 옥천군으로 군을 달리하지만 지역과 상관없이 한동네에 사는 정겨운 이웃들로 생활하고 있었다.

산행을 같이한 일행은 "이같이 도랑으로 군간 경계를 하는 바람에 한 개의 마을이 두개로 나눠지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에 마을 공동체 형성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겠냐"며 "불합리한 경계기준으로 마을을 두개로 쪼갠 지역은 단일 지역으로 통폐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