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우리 요즘 청국장을 일주일째 먹고 있어"
동생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제부는, 끼니때마다 청국장만 내 놓아도 좋아 한다고 하네요.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먹던 주된 식품중 하나는 콩이었던 듯합니다. 두부, 된장, 콩자반 등등…. 그 중에서도 으뜸은 겨울철 내내 먹던 청국장이 아닌가 합니다.
어느날 경원상회 앞을 지나가는데 박창숙 사장님이 저를 불러 세우시더니 "아나운서, 이런거 먹어봤어?" 하시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 같은 것을 국자에 담아 내미셨습니다. 고추장을 만드시려고 엿기름을 달이신 것이라는데, 난생 처음 맛보는 달착지근하고도 친근한 맛에 급 관심 발동~! 신기해서 이것저것 질문을 드려 보니, 국산 콩을 불렸다가 10시간 삶은 후 27도 온도에 72시간동안 띄우면 완제품이 되는 청국장도, 직접 만드셔서 속리산의 유명 식당들로 납품을 하신다네요. (누가 뭐래도 부녀회장님께 저는 DJ가 아니고 "아.나.운.서"입니다 ~ㅎ)
훤칠하고 인물 좋은 큰 자제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시는 사장님의 하얀 피부 검은 눈동자 속에는, 입은 활짝 웃으시는데도 애잔한 슬픔과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어려 있어요. 이미자씨의 '여자의 일생'을 좋아하시는 모습을 뵈면, 춘원 이광수님의 소설 중, 파란만장한 어떤 여인의 인생을 그려낸 '그 여자의 일생'이나, 역시 결혼생활을 통해 겪는 고통을 그려낸 프랑스 작가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제목이 불쑥불쑥 떠오르는 것은 웬일일까요?
그러나 이제 사장님의 삶은 해피엔딩만 남았다고 굳게 믿는데, 제 시각속의 사장님은 촌각을 다투시면서까지 열심히 사시면서, 식재료에 관한한 좋은 것만을 사용한다는 정직한 자부심이 담겨있는 김치나 청국장의 깊은 맛이 여러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으니까요.
어쨌든 청국장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들은 경원상회의 청국장 나오는 날을 기다리는 마니아가 되었고, 지금은 청주 사는 동생 내외에게까지 보내주고 있네요. 그리고 청국장을 먹을 때마다 음식솜씨 좋기로 인근에 소문자자 하시던 우리 어머니의 청국장 맛이 불현 듯 떠올라 그리움에 눈물짓기도 합니다.
"초겨울 매운 바람에 문풍지 흔들리는 날이면
고드름 녹이는 햇살 비집고 들어오던 구수한 냄새
청국장 맛 안에는 그 여인의 한 맺힌 인생 녹아 있었네"
박태린
보은전통시장 음악방송 DJ/청주 한음클라리넷 오케스트라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