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중순이다. 예년 같으면 '기온이 25도를 넘었으니 초여름의 날씨를 보이느니'하는 소리가 나올 법한데, 겨울의 끝자락이 여전하다. 잦은 비와 강한 바람으로 좀체 기온이 올라갈 줄을 모른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는 거스를 수 없는 법, 부지런한 세월은 우리 곁에 이런저런 봄의 모습을 가져다 놓았다.
본사와 보은속리산악회(회장 조진)가 함께 하는 4월 둘레산행은 봄을 시샘하는 차고 매서운 바람속에서 진행됐지만, 산속 곳곳에 와있는 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산행이었다.
지난 11일 떠난 둘레산행 3-1구간은 회인면 쌍암리 쌍암재에서 시작해 새터고개를 지나 팔봉지맥 분기봉(단군지맥 오석 표지)을 거쳐 547봉을 넘어 회인면 오동리 피반령 고개로 향하는 6㎞의 짧은 산행으로 진행됐다.
#부지런한 계절은 피어선 지고
산행에 동참하는 속리산악회(등반대장 최웅식)회원 및 지역주민 19명이 버스를 타고 4구간의 시작점인 쌍암재로 향했다.
차창 밖에는 트랙터가 부지런히 밭을 갈고 있고, 비료를 잔뜩 실은 경운기가 농로를 달리고 있고, 물이 채워진 논에서는 써래질이 한창이다.
추위는 남아있어도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들은 분주하기만 하다. 부지런한 계절은 겨울을 지게하고 봄을 피게 만들었다.
약 30분을 달려 9시에 쌍암재(290m)에 도착했다. 각자 등산화를 졸라 메고 배낭을 챙기고 최웅식 등반대장을 선두로 산행을 시작했다.
산으로 빙 둘러싸여 아늑하기 그지없는 법주리 양지말을 지나 새터고개에 오르자, 우측으로 넓은 인삼밭이 나타나고 황토로 지은 집 몇 채가 나타난다.
회원들이 한마디씩 한다.
"바람도 쌀쌀한데, 저 황토집에 들어가 몸이나 지졌으면 좋겠다"
집과 인삼밭 구경을 하다가 앞을 보니, 여성회원이 무언가를 뜯고 있다.
대표적인 봄나물 중 하나인 원추리였다. 원추리 새순은 씹는 식감이 좋아 나물로 무쳐먹거나 국을 끓여 먹기도 한다.
"누구 신랑은 좋겠네, 저녁에 시원한 원추리국 먹겠다"
"그냥 두고 가기에는 너무 많아서 그러지"
봄의 전령은 화려한 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식욕을 돋워 주는 파릇파릇한 봄나물도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한남금북정맥을 지나 팔봉지맥을 타고
산행시작 30여분이 지나자 가파른 능선이 나타난다. 능선을 약 15분정도 오르자 살짝 땀이 나려할 때쯤 능선 정상(526봉)에 섰다.
이곳이 바로 보은군 내북면과 회인면, 청원군 가덕면의 경계봉이자, 한남금북정맥에서 팔봉지맥이 분기하는 지점이다.
다시말해 약 50분간 올라온 코스가 내북면 법주리와 회인면 쌍암리의 면계를 따라 올라온 한남금북정맥 구간이며, 이곳 정상에서 북동쪽(내북면 염둔리) 방향으로 가면 청원·청주로 이어지는 한남금북정맥을 타게 되고 반대방향인 남서쪽(회인면 신문리) 방향으로 가면 보은군 회인면과 청원군 가덕면의 군계를 걷게 되는 것이다.
정상에서 잠깐 쉬는 사이, 청주의 ㄹ산악회에서 세운 단군지맥 표지석에 대해 말들이 오간다. 단군지맥은 백두대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남금북정맥 능선에 이 표지석이 서있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곳에 단군지맥 표지석이 있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경로로 확인한 결과, 여기서 시작해 약 47㎞의 능선을 지나 충남 연기군 금남면에서 맥을 다하는 팔봉지맥 중 그 중간지점인 청원군 강내면 은적산에 단군성전이 있어서 그 시작점인 526봉 정상에 단군지맥이라는 표지석을 세운 것으로 파악됐다. 표지석 뒷면에는 대종교 경전인 천부경이 새겨져있다.
#노란 생강꽃과 분홍 진달래 피어
이제 서쪽으로 급하게 내려서는 능선을 따라 굴참나무와 상수리나무가 하늘 숲을 이루며 군계를 가르는 뚜렷한 등산로가 나타난다. 400~500m 높이의 능선을 따라 오르고 내리기가 반복된다.
등산로에는 노오란 생강꽃이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따뜻한 햇볕이 잘 드는 양지에는 분홍 진달래꽃이 눈길을 잡아끌고 있다. 곧 터질 듯한 꽃망울이 간직한 철쭉은 수 일내 그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줄 태세이다. 약 1시간동안 등산로를 따라 철쭉 군락이 이어진다. 임재업 동양일보 취재본부장은 "이곳 등산로를 정비하고 철쭉과 진달래 군락지임을 널리 알려 많은 사람들이 보은을 찾게 하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고 한마디를 던진다.
그도 그럴 것이 1시간 전 지나친 한남금북정맥의 코스는 많은 산악회의 시그널이 매달려 있고 등산객들의 흔적이 많았으나, 팔봉지맥 코스는 상대적으로 등산객들의 흔적이 많지 않았다. 군내에 아름다운 등산코스를 개발하고 이미 개설되어 있는 임도를 제주도 올레길처럼 관광객들이 찾도록 개발하는 것은 산이 많은 보은군의 입장에서 신중히 검토할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보은군민의 부지런함을 보여주고
1시간 전인 팔봉지맥 분기점(526봉)에서 김기식 부등반대장이 속리산악회원들에게 쓰레기봉투를 나누어 주었다. 회원들은 등산로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워 담기 위해 가던 발길을 종종 멈추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약봉지, 초코파이 봉지, 빈 캔 등이 배낭 옆에 묶여있는 쓰레기봉투 속에 하나둘씩 담겨진다.
김기식 부등반대장은 "산을 자주 찾는 사람들은 그만큼 산에 대한 사랑도 큽니다. 깜빡해서 잊고 온 경우가 아니면 반드시 쓰레기봉투를 준비해 등산로 주변의 쓰레기를 수거합니다"고 말한다. 이렇게 주워 모은 쓰레기가 등산을 마친 피반령 고개에서 모아보니, 20리터 봉투 5개정도가 됐다.
지난 1~3구간에서도 느꼈지만, 군계능선 중에서 주요 봉우리 정상에는 외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표지판이나 표지석만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앞장서서 걷는 최웅식 등반대장은 보은속리산악회 이름이 들어간 군계종주 시그널을 주요지점에 부착하는 모습이다.
최웅식 대장은 "지금 부착하는 시그널은 나중에 이 등선을 타는 등산객들의 이정표 역할도 하지만, 외지인들에게는 보은사람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보은군의 군계를 종주했다는 것도 알리기 위함이다"고 강조했다.
출발한 지 약 2시간 30분이 지났을까, 삼각점이 있는 547봉에 올라선다. 발아래 회인면 신문리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마을 위로는 자그마한 소류지도 보인다. 30여분을 더 걷자, 제법 넓은 공터가 나온다. 피반령 고개로 내려가려면 이곳에서 가파르고 희미한 산길이 손짓하는 오른쪽 내리막으로 들어서야 하는데, 그만 왼쪽 평탄한 길로 들어섰다. 약 100m를 가서 되돌아 왔다.
"아이고! 이 길로 그대로 내려갔으면, 보은군 땅 몇 만평을 청원군에 그냥 떼어 줄 뻔 했어" 누군가 우스개로 한 말이겠지만, 보은을 사랑하고 아끼는 맘이 전해졌다.
#하산후 회남면 구간을 대비한 회의
피반령 고개에 도착한 시간이 등산을 시작한 지 3시간 30분 만이 12시30분이다.
이곳에서 회인면 중앙리 뒤편인 먹치고개(3㎞구간)까지 더 가자는 의견과 바람이 차고 강하니까 이 정도에서 접자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결국은 다음 4구간을 먹치고개에서 시작하면 회인면 중앙리에서 먹치고개까지 올라가느라 초반부터 많은 힘을 빼야 하므로, 출발이 편한 피반령에서 시작하기로 하고 산행을 마쳤다.
점심식사를 겸한 회의시간에는 7구간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군계종주에서 특이한 구간이 바로 회남면 구간라는 것. 회남면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산과 능선을 오르내리는 산행이지만, 호수 위로 군계가 지나가는 회남면 구간은 배를 이용하는 항해를 하여야만 한다. 따라서 당연히 산악회원들을 실어 나를 배가 필요하다.
4년전 있었던 1차 군계종주에서는 보은해병전우회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이번 2차 군계종주에서도 보은해병전우회와 행정선의 도움을 기대하면서 협조를 구하고 있는 모양이다. 협조가 잘돼 많은 산악회원과 지역주민들이 물위에 그려져 있는(?) 군계를 밟아보기를 기대해 본다.
돌아오는 길에 내 고향 보은이 넉넉한 인심이 흐르는 고장이 되기를 바래보며, 피반령 표지석에서 읽었던 시구를 떠올려 보았다.
'회인현감 부임시에 울며 넘어 왔다가, 후한 인심 뒤로 하고 울며 넘어 갔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