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쯤으로 생각할 수 있는 문학관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이 될 수 있는 데는 문학관의 시설이나 관심을 가질만한 프로그램도 있겠지만 작가의 영향력이 상당하다. 5060을 넘어 7080세대는 누구나 아련한 마음이 전해지는 소설 소나기를 쓴 황순원 문학관이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되는 서시의 윤동주 문학관은 국민들의 사랑이 대단하다.
수학여행단의 방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도서관의 독서모임, 가족 여행지, 초등학생 자녀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문학관을 찾는다. 이들 문학관은 이미 관광지가 되었다.
작가의 역사에 박제되지 않고 살아 꿈틀대는 현재의 모습으로 서 있다. 황순원 문학관과 윤동주 문학관의 살아있는 활동을 살펴본다.
첫사랑의 아련함이 있는 황순원문학관
황순원 문학관의 원래 주소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수능리인데 서종면 소나기마을길로 새 주소를 얻었다. 소설 소나기로 대표되는 황순원 문학관의 거기 있기 때문에 길 이름이 소나기 마을길이 된 것이다. 그만큼 황순원 문학관의 비중이 크다.
개관 5년 만에 방문객 수가 13만명을 넘은 황순원문학관은 올해 4월에는 한국문학관협회가 주최하는 올해의 최우수 문학관상을 받았다.
전국의 문학관 중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은 곳 중의 하나인 이곳은 교과서 등재 이후 문학 체험학습공간으로 더욱 호응을 받는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황순원 문학관의 성공 요인에는 공간이 주는 감흥이 크게 차지한다.
문학공원은 양평군이 2006년부터 3년간 국비 50억원과 도비 25억원, 군비 49억원 등 총 124억원을 투입해 지상 3층 규모의 문학관을 짓고 문학공원을 만들었다. 문학관 및 문학공원에 담은 콘텐츠는 선생이 재직했던 경희대학교 제자들의 연구에 의해 채워졌다.
육필원고와 유품 등을 전시하고 작품세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배열하면서 어른 아이 모두가 황순원 문학에 근접해 체험할 수 있도록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도입하고 작가에게 편지쓰기 등 여러방식의 체험 과정을 개설했다.
징검다리, 섶다리 개울 등 소나기에 등장하는 배경을 재현할 수 있는 체험장과 노즐을 이용해 인공적으로 소나기를 뿜어져 나오게 하는 소나기 광장, 소나기가 뿜어져 나올 때마다 소설 속 소년과 소녀가 소나기를 피해 수숫단 속으로 몸을 피하는 장면도 재현해볼 수 있는 등 문학테마공원은 소설 속의 극적인 장면도 연출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5만6천여㎡(1만7천여평)의 야산 산책로에는 작품세계를 형용한 조형물들을 설치했다.
소설 '소나기'에 딱 한줄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문장으로 인해 양평에 세워진 환순원문학관은 이같이 창의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의 산물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생산적인 결과를 약속하는 하나의 범례라고 할 수 있다.
국민적인 사랑을 먹고 자라는 황순원문학관의 또 하나의 성공요인은 문학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관의 사무국장에 공채된 이기인 시인은 2년전 처음 문학관에서 근무할 때 직원들과 많이 부딪혔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단체로 오면 쓰레기를 버리고 가니까 문학관과 문학공원에서 음식물을 먹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등 학생들이 많이 오는 것을 싫어했다는 것.
하지만 이기인 사무국장은 "황순원문학관 방문객들은 목적은 문학관 방문이지만 소풍을 간다는 개념이 자리하고 있어 음식 먹는 것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에 청소하기 힘들다고 음식을 못먹게 하면 사람들은 결국 열심히 구경하지 않고 밥때 맞춰 식당으로 가게 된다"며 "문학관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서비스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설득해 지금은 소풍장소로도 각광 받는 곳이 됐다"고 말했다.
황순원문학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도 사람들을 불러모으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5월5일 어린이날에는 1박2일 문학캠프를 운영, 소나기 광장에서 야영을 하며 야간에는 조명 밝힌 광장에서 맥주도 마시고 숯불에 바비큐를 만들어 먹고, 영화와 TV문학관 등 황순원의 작품을 다룬 영상도 감상하고 자녀에게 소설 소나기도 읽어주는 행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어린이날 놀이공원으로 가던 가족들이 문학관으로 야영을 온다.
문학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빌딩이라는 작품에서 하모니카를 불고 싶다는 문장을 끄집어내 하모니카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구연동화 행사 등 관객들을 문학관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사무국장 이기인 시인은 "문학관은 과거(유물이 있는 공간)와 현재(문학관을 관람하며 내가 감흥을 받는 것)가 공존하는 공간"이라며 "관람객이 과거만 보게 해서는 안되고 현재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토리 입혀 명소된 윤동주 문학관
국민 애송시 중의 하나인 '서시'를 쓴 윤동주문학관은 시 만큼이나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관심을 끄는 곳이다.
종로구 부암동주민자치센터 쪽에서 청와대 방향의 내리막길 시작점에 위치한 윤동주 문학관은 원래 상수도 가압장과 물탱크였던 곳이다. 지대가 높은 청운동에 수돗물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물살에 압력을 가하던 곳이었는데, 이미 오래전에 폐쇄됐다.
문학관이 버려진 가압장이었다는 것도 놀라운데 문학관으로 리모델링한 것이 지난 8월 서울시건축상 대상과 건축명장 상을 수상했다.
상수도 가압장이 문학관으로 탄생한 것은 2년 전인 2012년. 개관 2년 만에 18만명이 다녀가는 명소가 됐다.
윤동주문학관의 활성화 요인에는 국민들이 좋아하는 시인이라는 점 외에 문학관의 스토리가 갖고 있는 매력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윤동주문학관이 종로구에 들어선 것은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대학 재학시절 세종마을(누상동)에 거주하며 별 헤는 밤, 자화상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기 때문이다. 종로구는 이런 인연으로 지난 2009년 인왕산 자락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조성하고 매년 윤동주 시 낭송회, 백일장, 문학둘레길 걷기 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2012년 7월에는 5억원을 들여 90㎡에 윤 시인의 시 세계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문학관을 조성했다.
문학관내에는 문학자료 뿐만 아니라 북간도 윤동주 생가에 있던 우물 목판, 윤동주 소학교 의자, 등사기, 다리미, 다듬이 돌, 톱, 떡살, 떡판, 생가 기와, 윤동주 친필원고 영인본 등, 윤동주와 인연이 있는 것들을 전시했다.
윤동주문학관이 처음부터 종로구의 계획대로 추진된 것은 아니다. 유족들이 문학관에 전시할 유물과 종로와 시인과 연관성이 약하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대학시절을 보냈다고는 하나 유족들이 보기엔 70여년이 지나 연고를 주장하는 것이 생뚱맞았던 것.
종로구는 윤동주 이름의 문학관을 지을 해법을 이야기에서 찾았다. 윤동주가 일본에 유학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성을 바꾼 서류와 일본으로 떠나기 5일 전에 썼던 시 '참회록; 영인본을 위, 아래로 배치해 시인의 고뇌를 전하는 등 시인과 종로의 인연을 연상시켜 윤동주를 종로사람화 시켰던 것이다.
또 두 개의 물탱크 중 하나는 천정을 들어내 하늘을 볼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시인의 고향과 사상을 상징하는 우물을 상징했고 밤에는 별을 헬 수도 했다. 다른 하나는 천정을 그대로 둬 시인이 의문의 최후를 맞은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를 연상토록 했다. 벽면에 있는 작은 창으로 스며드는 빛은 밝은 세상을 갈망했던 윤 시인의 뜻으로 표현해내는 등 건물에 이야기를 입혔다.
어쩌면 그렇게 윤동주의 삶을 닮도록 공간을 구성했는지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무미건조한 건물에 이야기를 입히니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문학관이 됐고 이것이 유족들의 마음을 열게 했다.
윤동주문학관은 청운동 사람들에게도 희소식이 됐다. 1968년 북한무장공비의 청와대 침투로가 근처에 있어 김신조 마을로 불리는 등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었으나 윤동주문학관이 생긴 후 윤동주 마을로 불려 주민들은 크게 반기고 있다.
지역에 긍정적 이미지까지 만든 윤동주문학관은 종로구 문화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지난 7월 25일에는 윤동주문학관 개관2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기념행사는 윤동주 시인의 이름이 갖고 있는 것에 비하면 조촐했지만 국민시인 윤동주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꽉 찼다. 유족인 윤인석 성균관대 교수는 큰아버지인 윤동주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히 풀어내 관객들에게 인간 윤동주를 이해하게 했다.
또 시인의 언덕에서 밤이 깊도록 이어진 기념음악회는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품인 '서시'와 '별 헤는 밤'을 아름다운 선율로 엮어내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종로문화재단 심정구 주임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의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이 휴식하고 치유될 수 있도록 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별다른 특징을 찾을 수 없이 박제된 공간에 머물러 있는 오장환 문학관에도 스토리를 입힐 차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