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경제와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대안으로 사회적 경제가 주목받고 있다. 사회적 경제 또한 다양한 형태로 실현되고 있는데, 지역에서는 마을기업과 사회적기업이 육성되고 있다. 이중 마을단위로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협동적 관계망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마을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에 본지는 기획취재를 통해 보은지역과 유사한 여건 속에서 마을주민들이 협동하여 소득을 창출하고 단합도 도모하는 성공한 마을기업을 소개함으로써, 마을기업 육성의 필요성을 짚어보고자 한다. - 편집자 주-
①기업 유치만큼 마을기업 육성에 관심 갖자
▶②협동을 통해 공동체를 복원한다(제주 한경농가주부모임, 홍성 젊은 협업농장)
③열심히 키워 직거래 방식으로 판다(완주 로컬푸드, 제주 무릉외갓집)
④떡으로 만들어 쌀의 부가가치 높인다(양양 송천떡마을, 서천 모시떡마을)
⑤시골마을의 넉넉함과 편안함을 판다(완주 안덕마을, 영월 한반도 뗏목마을)
⑥가족캠핑문화, 시골로 끌어들인다(홍천 살둔마을, 상주 구마이 곶감마을)
두레정신 되살려 함께 농사 짓고 판매한다
농촌에서 농사일을 공동으로 하기 위해 리(里)나 마을단위로 둔 조직이 '두레'이다. 또한 마을공동체에서 힘든 일을 서로 거들어 주면서 서로 간에 품을 지고 갚고 하는 일이 '품앗이'이다.
현재 이 두레나 품앗이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마을을 찾아보기는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농업을 둘러싼 제반 여건이 예전같이 않으니, 두레나 품앗이가 예전처럼 제대로 작동되기를 바라는 것도 욕심일 것이다.
하지만, 예전의 두레나 품앗이처럼 함께 살아가고 함께 나누었던 공동체정신을 살려 함께 농사를 지어 소득을 올리고,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을 하는 마을기업이 있다. 바로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도산2리의 '젊은협업농장'과 제주특별시 제주시 한경면 '한경농가주부모임'이다.
조합원 25명이 협업해 쌈 채소 키워
소나기와 햇볕이 반복되는 7월의 날씨 속에서 비닐하우스 안은 구수한 퇴비냄새와 함께 푸릇푸릇한 쌈 채소들이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시골 냄새가 좀 많이 나죠?"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도산2리에 자리 잡은 '젊은 협업농장'을 이끌고 있는 정민철(47) 대표가 인사를 건넸다.
'젊은 협업농장'은 홍성군 홍동면 소재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교사이던 정민철 대표가 2011년 제자 2명과 함께 뜻을 모아 비닐하우스 1동을 빌려 쌈 채소를 기르면서 시작됐다. 당시 마을이장의 도움 속에 100만원을 투자해 660여㎡ 하우스 1동으로 시작한 쌈 채소사업은 점차 사업규모가 커졌고, 지난해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된 뒤 조합원 25명이 2천만원의 출자금을 내 협동조합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20대에서 4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조합원들이 모여 1천400여평 규모의 8동 하우스에서 쌈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당초 영농조합법인 설립을 검토했으나, 영농조합법인의 경우는 농지원부를 가진 농민들이 설립해야 하는 제한 때문에, 농사를 처음 시작하는 조합원들의 참여와 지속가능한 협업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협동조합 방식을 선택하게 됐다. 또한,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영농조합법인 대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지향하기 위해 협동조합 방식으로 농장을 설립했다.
'젊은 협업농장'이라고 명명하게 된 것도 생산성이 떨어지는 북한의 협동농장을 연상시키는 '협동농장' 대신 조합원들이 함께 농업에 종사하고 함께 열심히 농사짓는다는 의미로 '협업농장'이라 정했다고 한다. 여기에 젊은 귀농자들이 시골생활을 경험하고 독립할 수 있도록 인큐베이팅 역할을 하는 교육농장 형태까지 고려했으며, 철저하게 지역에 녹아든 농장을 만들기 위해 지역의 영농조합이나 생산단체, 또는 지역 리더들을 구성원으로 포함시켰다.
'젊은 협업농장'에서 생산하는 친환경 유기농 쌈 채소는 대부분 홍성지역 유기농 영농조합, 로컬푸드 매점에 납품된다. 나머지는 대부분 직거래여서 서울 등지의 식당과 직판장으로 향한다. 친환경 농작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인기가 꾸준하다고 한다. 여기에 농장에서 생산된 샐러드채소와 주변농장에서 나오는 유정란, 어린잎, 방울토마토, 통밀빵, 요구르트를 모아서 가정에 배달하는 '꾸러미' 사업도 진행 중이다.
함께 일하고 수익도 함께 나누는 원칙도 세웠다. 정 대표와 제자 2명이 시작했던 2011년과 2012년에는 큰 수입을 얻지는 못해 모두 재투자 재원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사업규모가 커지고 조합원 수가 크게 늘어난 지난해부터는 1년 이상 '인턴농부' 과정을 거친 조합원이면, 누구나 똑같이 1/n로 적지 않은 수익금이 분배됐다고 한다. 농장에서 상근하는 조합원(여기에서는 스텝이라고 호칭)에게는 귀농지원금 등을 활용해 약간의 추가수당을 지급한다.
다만, 농사일을 배우기 위해 수습과정에 있는 3개월 미만의 수습 조합원에게는 아무런 대가가 없고, 1년 미만의 인턴 조합원에게는 교통비 정도가 지급된다고 한다. 이는 농촌과 농사를 현장에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으로, 소위 될 성 싶은 떡잎을 알아보기 위한 조치다.
인턴기간이 끝나면, 스텝이 될 수도 있고, 독립을 할 수도 있다. 스텝이 되면 농장의 전반적인 일들을 담당하게 되고, 독립을 하게 되면 개인농장을 운영하거나 협동조합농장을 만들게 된다. 홍성군내 청촌농장과 행복농장의 경우가 협업농장에서 인턴생활을 했던 젊은 농부들이 만든 협동조합농장이다.
이에 대해 정민철 대표는 "처음 3개월은 견습기간이다. 어차피 농사를 전혀 모르는 청년들이기 때문에 3개월은 그냥 농업과 지역을 이해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젊은 청년들이니까 노인들보다 일을 잘 할 것 같지만, 처음 농촌으로 오는 청년들의 노동력은 기존 농민의 1/6 정도 수준이다. 일당 1만원도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견습기간을 거치게 된다"고 밝혔다.
도산2리 마을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인구가 2011년 대비 19명이 늘어난 것이다. 그것도 젊은 청년들이 대부분으로, 변호사, 사진작가, 작곡가, 디자이너, 간호사, 영화감독까지. 이들은 장곡면에 정착해 함께 살면서 건강한 귀농과 농촌공동체의 삶을 꿈꾸는 동지로 더불어 일하고 있다. 또한, 자신들이 가진 재능을 마을의 발전을 위해 사용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젊은 협업농장이 만들어놓은 마을의 변화이다.
정민철 대표는 "우리 농장의 사례는 귀농인들이 협업을 통해 고민을 같이 해결해보자는 시도"라며, "아직까지 우리 사례가 일반화될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만, 협업농장이 젊은 귀농자들의 초기 정착을 위한 하나의 모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보은에서 1시간 거리에는 대전광역시를 비롯해 통합청주시, 세종시 인구가 300만명에 달하고 있다. 최근 보은지역으로 귀농귀촌하려는 인구도 꾸준히 늘고 있다. 보은군이 귀농귀촌인구를 대상으로 300만명의 주변 도시민에게 팔 먹거리를 생산하는 협동농장이 운영될 수 있도록 관심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농촌주부들, 호박즙 팔아 사회봉사
마을기업은 한 개의 마을주민들로 설립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제주시 한경농가주부모임 영농조합법인(대표 김정재, 농가주부모임 9대 회장)은 특이하게 한 개 면 농촌주부들이 모여 설립한 마을기업이다.
한경농가주부모임은 1994년 농촌지역 주부대학모임으로 시작됐다. 당시 정명순 초대회장을 중심으로 한경면내 11개 리(里)의 부녀회장 11명이 모여 조직됐으며, 밭 2천평을 임대해 보리, 감자, 콩, 벼 등의 작물을 함께 재배해 수익금으로 불우이웃돕기 등에 사용했다.
이렇게 15년간 봉사활동을 해오다 한경면 및 한경농협의 지원 속에 제대로 주민자치사업을 해보자는 생각에 7대 이돈자 회장이 나서서 전·현직 부녀회장 31명을 모아 2009년 8월 12일 마을기업인 '한경농가주부모임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작목도 기존처럼 여러 가지가 아니라, 제주도에 흔하디흔한 돌담을 타고 올라가면서 자라는 늙은 호박을 선택했다. 호박을 재배해 그냥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호박즙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높였다. 한경면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돌담에 누렇게 호박이 익어가는 정겨운 풍경을 제공하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보너스였다.
설립당시 1인당 50만원씩의 출자금으로 모은 1천200만원의 자부담과 함께 제주시로부터 5천여만원의 보조를 받아 호박즙 가공시설 및 작업실, 저장고 등을 갖췄다. 매년 4월 호박을 식재해 여름, 가을이 지나도록 정성껏 키워 11월에 수확한 후, 12월 한달 동안 즙을 만들어 1월부터 3월까지 판매를 하고 있다.
식재와 수확은 31명의 조합원들이 모두 모여 함께 하지만, 즙 가공은 5명씩 6개조를 편성해 한달 내내 돌아가면서 한다고.
가장 큰 판매처는 제주도내 산후조리원으로, 한경농협농가주부모임에서 만든 호박즙을 먹어본 산모들은 또 찾거나 주변에 소개를 해줄 정도이어서, 판로 걱정은 하지 않을 정도가 됐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1년에 순이익이 1천만원이 좀 넘는다고 한다. 31명의 조합원이 참여하는 것치고는 순이익이 크지 않다고 할 수도 있지만, 자신들의 농사일을 하면서 틈틈이 함께 모여 소득을 올리는 것으로 적지 않은 금액이다.
특히, 지자체나 농협에서 주는 돈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출자해 설립한 영농조합에서 번 수익으로 봉사를 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1천만원의 순이익은 일부를 차기년도로 이월시키고, 나머지로는 연말 불우이웃돕기, 김장봉사, 장담그기봉사에 사용된다고 한다. 또한, 별도의 인건비를 지급하지 않기 때문에 12월 호박즙 가공까지 모두 마치고 나면 당일 내지 1박2일간의 선진지 견학 비용으로도 사용한다고 한다.
김정재 회장은 "저를 포함한 31명의 조합원들이 각자 농사일을 하면서, 공동체활동이나 취미활동, 봉사활동 개념으로 영농조합을 운영하고 있다. 조합원 모두가 옛날의 상호부조정신을 실천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 소득을 더 크게 올리려면 얼마든지 할 수도 있지만, 봉사활동에 필요한 자금마련 정도에 만족하고 있으며, 규모가 커지면 조합원간에도 수익배분, 상근자 배치 등 여러 문제가 발생될 소지도 있다"며 현 규모에 만족하고 있다고 밝혔다.
31명의 조합원 모두가 힘을 합쳐 영농조합을 운영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 이 모임이 좋아 고령에도 나가려고 하지 않는 조합원들이 있어서 70세로 제한을 두기까지 했을 정도. 지난해 2명의 조합원이 나이제한으로 그만 두게 되었는데, 많이 서운해하면서도, 출자한 50만원(현재 75만원으로 늘어남)도 찾아가지 않고 영농조합법인에 기탁할 정도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마을기업은 마을주민들의 수익창출을 위해 설립 운영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한경농가주부모임 영농조합법인은 수익보다는 조합원간 공동체정신, 즉 우리 전통의 두레 및 상부상조 정신을 되살리고 사회봉사를 목적으로 마을기업을 설립 운영하고 있었다.
한경농가주부모임 영농조합은 조합원들의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안전행정부가 선정하는 우수 마을기업으로 선정돼 5천만원의 사업비를 지원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