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⑤ 전남 해남 서정분교
2. ⑤ 전남 해남 서정분교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2.10.18 09:32
  • 호수 1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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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학교 지향하는 학부모들이 폐교 위기 서정분교 살려

전남 해남군의 송지초등학교 서정분교도 곧 학교 문을 닫을 위기의 학교였다.
8년 전 전교생이 5명밖에 안돼 교육당국이 폐교를 결정한 것이 2003년이었으니 학부모, 지역사회에서 나서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은 서정분교는 해남 교육역사에서나 찾아볼 그런 학교였다.
하지만 서정분교 폐교 소식을 들은 지역사회와 학부모들은 앉아서 폐교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작은 학교 살리기에 나서 2012년 64명으로 학생수가 늘어났고 올해는 본교승격 추진위원회를 꾸려 활동하고 있다.
본교도 아니고 분교생이 64명인 것은 보은군의 본교 전교생 숫자만큼이나 많다. 보은군의 학생 수는 339명의 삼산초등학교와 616명의 동광초등학교를 제외하면 판동 73명, 내북 64명이고 나머지 학교는 모두 교육당국의 통폐합 기준에 해당돼 칼만 빼들면 그대로 통폐합될 대상학교다.
노인들만 있고 젊은 인구가 없는 농촌에서 입학할 학생이 없는 것은 당연한데 앉아서 입학생만 기다리니 당연지사다.
폐교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는 우리지역과 달리 선진 사례지역은 보은과 같은 농촌이면서도 학교를 살리는데 모두 성공했다.
이번 호의 사례 학교인 서정분교가 폐교 위기에서 찾은 돌파구는 무엇일까?
바로 학부모들이 아이들이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학교를 찾았고 아이들을 자녀처럼 돌보고 있는 교사들이 있는 서정분교를 보냈기 때문이다.

◆가고싶은 학교가 되기까지
2003년 서정분교를 다니는 자녀를 가진 학부모들은 교육청에 학군조정을 요청해 상당수의 학생이 서정분교가 아닌 본교인 송지초등학교를 다니게 됐다. 자연히 서정분교 재학생은 5명으로 감소했고 폐교를 위한 공청회까지 열렸다.

폐교준비가 진행되면서 학부모들은 자녀를 어느 학교로 보낼까 궁리를 하던 차에 학부모들로 부터 폐교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학교가 사라지면 지역 공동체가 무너지고 마을의 미래도 없다는 위기의식을 가진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작은학교 살리기 운동이 이어졌다.

학부모들은 먼저 작은학교가 아름답다는 소망을 위해 1주일에 한 번씩 모임을 갖고 국내외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토론을 벌였다.

해남읍내 학생,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주말생태체험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여름방학에는 작은학교에 관심을 가진 해남지역 학부모들을 초청해 가족캠프도 운영했다. 자연스럽게 작은 학교와 대안교육에 대해 연구하는 학부모 공부모임도 생겨 주기적으로 모여 학습과 토론을 이어갔고 참여하는 수가 점점 늘어났다.  캠프와 공부모임에 참여했던 학부모들이 자연스럽게 자녀들을 하나, 둘 서정분교로 전학시키면서 학생들은 계속 늘기 시작했다.

2003년 5명에서 2004년 20명, 그리고 2005년 37명, 2006년 56으로 늘어나는 등 작은학교 살리기 운동을 시작한 지 8년 만에 학생 수는 67명으로 늘어 교실이 부족한 상태까지 이르렀다.

전 학년 중 학생 수가 가장 적은 6학년은 교실을 쪼개 한쪽은 교실로, 또 한 쪽은 컴퓨터 교실로 활용하고 교무실도 반으로 나눠 한쪽은 과학실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급식실이 있지만 2~3년 전에는 급식실도 없어서 도서관이 밥도 먹고 책도 읽는 공간이었다.

강당도 없어 좁은 도서관은 입학식이나 학교 행사를 하는 공간으로도 사용하는데 학생수가 제법 되는 지금은 사람을 수용할 수 없을 정도다.

본인도 작은 학교를 지향하고 있다는 주경희 선생님은 “1대 다수 보다는 1대 소수가 소통할 수 있고 개개인 보다는 단체로 보는 큰 학교 보다는 작은 학교는 세세하게 보고 지도하기 때문에 아이가 가진 본성이나 성질을 살펴 발현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보적 생각을 가진 교사와 학부모들이 많고 월말고사, 교육부 시행 일제고사도 반대하고 있지만 서정분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톱클래스에 든다며 아이들에게 특별히 스트레스를 줘가며 시험공부를 시키지 않는데도 공부를 잘해서 아이를 보내기 위해 문의전화가 많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가 교사 대신 교육 품앗이
이같이 학생이 많고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학교인데도 불구하고 분교이기 때문에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손해를 보는 것이 서정분교의 현실이다.

행정직, 기능직 직원이 없어 수업 중 전화가 오면 교사가 수업하다말고 전화를 받으러 교무실로 달려오기도 했다. 지금도 선생님이 부족해 교감까지도 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2010년 무지개 학교로 선정되면서 보조 인력이 충원돼 교사가 수업도중 전화를 받기 위해 교무실로 달려오는 일이 없고 다소 시설 투자가 이뤄졌지만 열악하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 만큼 학부모들이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은 깊다.

서정분교 자녀들을 위해 학부모들이 교육청에 요구해 낡은 재래식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바꿨고 울퉁불퉁했던 도서관 바닥도 학부모들의 요구로 바닥공사가 이뤄졌다.

학부모들은 도서관 서고도 짜고 의자도 만들고 1학년 교실 바닥도 학부모들이 시공하는 등 자녀를 위한 교육환경을 위해 몸으로 봉사하고 있다.

학부모들의 참여는 이뿐만이 아니다. 방과후 활동에도 지역 어르신들과 자원봉사자, 학부모들이 직접 참여하고 있다.

영어, 중국어, 종이접기, 풍물, 독서지도, 과학실험, 생태체험 등 다양하고 꽉 찬 방과후 수업에도 학부모들은 교육품앗이를 하고 있다.

특기적성 수업의 대부분은 대학시절 전공이나 생업 노하우를 살린 학부모들이 가르치고 있다.

사진관을 운영하는 학부모는 사진교실을 맡고, 영어학습지 교사인 엄마가 영어학습을 책임진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학부모는 만들기 교실을 운영했는데 운동장 한쪽에 있는 정자도 바로 이 만들기 교실 아이들과 함께 만든 것이다.

이같이 학부모들은 학부모회를 통해 특기적성 뿐만 아니라 학교의 크고 작은 일들을 상의하고 해결하는데 앞장선다.  아빠와 함께 하는 캠프, 가족캠프 등 학부모와 함께 하는 모임이 많아 내 아들, 남의 아들 할 것 없이 모든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 가진 것을 나누다 보니 어느 새 전교생과 가족들이 한 울타리 안에 사는 대가족이 됐다.

아이들도 수업시간에는 친구의 아빠, 엄마를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방과 후 동네에서 만나면 이모, 삼촌, 아저씨라고 부르며 따르고 학부모끼리도 형님, 동생으로 부르는 관사이다.

지역사회의 참여도 대단하다. 학교 인근의 사찰인 미황사 금강스님은 학생들에게 탁본을 가르쳤고 미황사 측이 초빙한 숲해설사는 학생들과 함께 달마산을 누볐고 미황사의 승합차는 학생들을 태우고 소풍을 다녔다.
그렇게 아이들은 학교 선생님과 학부모 선생님과 스님 선생님과 함께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바자회 열어 통학버스 마련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는 서정분교 학생 70%이상이 해남읍에서 다닌다. 해남읍내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서정분교까지 오는데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학교 버스였다.

처음 서정분교로 아이들이 전학을 오면서 통학에 대한 문제가 불거져 나왔었다. 분교에 대한 통학버스 지원이 안되자 학부모들이 자가용을 이용해 통학시키거나 시내버스와 택시를 이용해 통학을 했다. 그러다 학부모들이 기금을 추렴, 노후된 중고버스를 마련해 2년간 운행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안전이 가장 걱정됐다.

학부모들의 이런 고민 해결에 서정분교의 든든한 후원자인 미황사 금강스님이 또 나섰다. 금강스님은 2008년 평소 친분이 두터운 가수 노영심씨가 미황사에서 가진 피아노 연주회 실황을 CD로 제작해 판매한 2천500만원을 스쿨버스 구입자금으로 기탁하고 아이들과 학부모는 직접 만든 천연염색 옷, 직접 재배한 농산물들을 파는 바자회를 열어 4천500만원의 기금을 마련했다.

버스 마련을 위한 학부모들의 이러한 노력은 금호고속 사장의 마음까지도 움직여 성능이 꽤 괜찮은 중고버스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게 됐다.

지금 아이들이 타고 다니는 통학버스를 '구름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도 숨은 이야기가 있다. 아이들이 등하굣길에 만나는 사물들을 하나씩 그려넣어 도색한 것이다. 이 구름이가 매일 해남읍내에서 서정분교까지 또 서정분교에서 해남읍내까지 아이들과 아이들의 꿈을 실어 나르고 있다.

사단법인 학부모회에서 운영하는 통학버스 이용요금으로 학생 1인당 8만원씩 부담하지만 학생, 학부모 모두 만족하고 있다.

20분 이상 걸리는 통학버스 안에서 아이들은 잠을 자기도 하고 책을 보기도 하고 여자 아이들은 뜨개질을 하는 등 그 안의 문화가 있다. 소풍가는 분위기로 학교를 오가는 아이들을 보고 차타는 것 때문에 안전에 대해 고민했던 학부모들의 우려가 싹 사라졌다.

학교 수업 후 운동장에서 통학버스를 기다리는 3학년 윤수정(해남읍) 학생은 해남읍내에 있는 해남 서초등학교를 다니다 3학년 1학기 때 이곳으로 전학을 왔다. 수정양은 “서 초등학교는 공부가 너무 빡세다"며 “거기에서는 쉬는 시간에도 놀지 않고 계속 의자에 앉아있거나 책을 봤는데 여기서는 많이 놀고 왕따도 없고 친구들 사이도 좋다"고 말했다.

1학년 때부터 서정분교를 다녔다는 김인아 학생(3학년, 해남읍)도 “학교 뒷산인 달마산도 등산하고 미황사 주지스님으로부터 좋은 말씀도 듣고 외발자전거도 타고 스쿨버스가 출발하기 전까지 실컷 놀 수 있어서 좋고 버스 안에서는 뜨개질도 하고 친구들끼리 얘기도 하고 참 좋다"고 말했다.

◆본교 승격도 추진 중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서정분교에 대한 관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학부모를 중심으로 서정 본교 승격추진위원회(위원장 이성기)가 발족돼 서명을 받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올해 5월 조직한 본교승격 추진위원회는 10월4일 해남교육지원청에 본교추진 요구서를 제출했다. 여기에는 본교승격의 당위성과 함께 서정리, 신기리, 삼마리, 치소리, 장촌리로 돼 있는 서정분교의 학군 해제와 함께 교실 신축 또는 중축 등 시설 보완, 교사 수급의 자율을 보장받을 수 있는 초빙 교장제 도입을 담았다.

이성기(54, 사단법인 전남농공단지협의회장) 서정분교 본교 승격 추진위원장은 “서정분교가 1994년 분교로 격하되면서 투자가 거의 안 되고 있다"며 “분교라는 이유로 시설이나 인력이 지원되지 않아 노후된 학교환경과 부족한 교실, 특별실, 교원의 업무를 덜어주는 인력이 배치되지 않아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본교가 되는 방법 밖에 없어 본교 승격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학교가 사라지면 공동체가 사라지는 것"이라며 “농촌에 있는 작은 학교들은 지역민이 땅을 희사해 세워졌고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가 나무를 심고 자갈을 실어내 운동장을 만드는 등 역사와 추억이 깃들어 있는데, 교육부는 마치 자기 재산인양 학생수가 적다고 처분하고 있다"며 “교육부로부터 이것을 사들인 타 지역 사람이 주인행세를 한다는 게 있을 수가 없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아이를 가진 젊은이가 귀농을 하려고 해도 학교가 없으면 농촌으로 귀농을 할 수 없다"라며 “학생 수가 적다고 무조건 학교를 없앨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귀농해서 아이들을 그 학교에 보내고 또 농촌에 정착해 경제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주면 장기적으로 급감하던 농촌의 인구도 증가하고 학생도 증가해 학교가 유지되면 결국은 농산촌의 교육도 살릴 수 있다"며 농촌 학교 살리기는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을만들기와도 결부돼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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