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④ 전남 순천 송산초등학교
2. ④ 전남 순천 송산초등학교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2.10.11 09:40
  • 호수 1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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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와 학부모가 폐교 위기에서 본교 승격 기적 일궈내

“이래봬도 이 학교에서 고시패스한 사람, 외무고시에 합격한 사람도 있어. 순천에서도 이름난 학교였어.
우리 아들들도 모도 이 학교 댕겼어. 역사가 있는 학굔데 학생수가 11명까정 줄었다고 혀서 참 허망혔어.
학생이 없어 폐교된다는 소리에 얼매나 서운했는지 몰러. 걱정도 많이 했지. 안타깝지만, 우리같은 늙은이들이 대책도 없고 뭐 어떻하겄어.
그러다 다시 학교가 살아나서 얼매나 좋은지 몰러. 말도 못하게 좋았어. 지금 봐봐 저기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그들. 늙은이들만 있는 동네에 아그들 웃고 떠드는 소리가 나니께 참말로 좋아. 사람 사는 것 같혀. 공일날이라 애들이 학교에 안오믄 적적하다니께.
학교 땜시 집을 비워놓고 어디 가도 도둑놈이 못와 CCTV땜시. 우리동네는 학교땜시 참 좋아"

지난 9월 21일 전남 순천시 별량면 송기리에 있는 송산초등학교(교장 김성렬)를 방문했을 때 학교 앞 마을 경로당에서 만난 최영자(75, 별량면 송기리) 할머니 등 어르신들은 학교 자랑으로 입에 침이 마를 정도였다.

학교 정문 쪽에 경로당이 있어 어르신들은 경로당 출입문으로 아이들이 들고나는 것, 떠들고 노는 것을 볼 수 있으니 눈이 즐겁고 귀가 즐거울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어르신들의 말씀처럼 송산초등학교는 1941년 개교해 한 때 학생이 900명에 달했지만, 2000년 별량초등학교 송산분교로 격하, 2007년에는 전교생이 11명까지 감소해 폐교 위기에 놓였었다. 지난해 무지개 학교(혁신학교)로 선정되기 전까지 학교에 투자를 하지 않아서인지 무지개학교에 대한 예산지원으로 환경정비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낡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교로 격하된 지 11년만인 2011년, 별량초등학교 송산분교는 송산초등학교로 승격됐고 2012년 올해 재학생수는 127명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지금도 전학문의가 쇄도하고 입학 대기자가 줄을 섰을 정도로 송산초등학교는 순천에서도 가고 싶은 학교로 꼽힌다.

보은에서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이같은 현상이 우리지역으로 말하면 세중초등학교가 위치한 지역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공교육 속에서 대안학교와 같은 송산초등학교를 만들고 싶어하던 교사와 학부모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달 출근하면 월급을 받는 그렇고 그런 직장인이 아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오고 싶은 학교로 만들까 고민하는 교사들의 열정이 송산초등학교 교사들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자녀교육을 오로지 교사의 몫으로만 돌리고 자녀들의 실력 향상에 눈멀어 학교 수업 후 학원이나 과외를 시켜야 훌륭하게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이 아닌 학교교육을 선생님과 학부모 공동의 몫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학교 교육에 동참하는 학부모들이 송산초등학교에는 있었던 것이다.
우리지역에 이런 열정을 가진 교사와 학부모가 있는지 냉정하게 돌아보게 만든다.

◆88명이 순천에서 버스통학
송산초등학교 재학생 127명 중 88명은 순천시내에서 통학을 한다. 지난해에는 121명 재학생 중 104명이 순천시내에서 통학을 했다. 지역주민들도 도시로 이주해 도시학교로 보내는 상황에서 송산초등학교의 무엇이 그리 좋다고 순천시내에서 학생들이 몰려왔을까?

아이들이 행복하고 교사는 가르치는 즐거움을 느끼는 꿈의 초등학교를 만들고자 하는 송산초등학교의 교사와 학부모의 열정의 시작은 이랬다.

2007년 수직적 교육문화가 아닌 자발적 교육활동에 대한 열망을 가진 김현진 선생님을 비롯한 같은 뜻을 가진 교사들은 민주적인 학교 운영과 교사, 학생, 학부모가 교육과정을 함께 만들어가는 학교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여기에 주입식, 암기식의 교육이 아닌 공립학교에서 대안적인 교육과정을 접목한 학교가 있으면 좋겠다는 학부모들이 있었다.

이들이 '새학교를 꿈꾸는 순천시민의 모임’을 구성하고 교육과정 운영에 자율성이 보장되고 잡다한 업무가 없고 주변에 논과 밭이 있고 개펄이 있는 학교에서 꿈을 펼치자고 수소문, 폐교 직전의 송산분교를 찾아냈다.

2008년 김현진 교사를 비롯한 함께 공부하던 교사 5명이 송산분교로 전근을 가고 학부모들도 이곳으로 자녀를 전학시키며 적극적으로 '자연속 공동체 삶 지향’이라는 교육철학을 홍보했다. 그 결과 37명이 전입함으로써 2008년 송산분교는 2007년 11명에서 48명으로 늘었고 2009년에는 98명으로 증가했으며, 2010년 121명, 그리고 지난해에는 분교 타이틀을 떼어버리고 본교로 승격되고 올해는 127명까지 늘어났다. 지금은 정원이 넘쳐 전입생을 받을 수 없는 행복한 고민까지 할 정도로 이름난 학교가 됐다.

순천시내에서 오는 학생들은 통학버스에 나눠 타고 오는데 이 버스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모셔오기 위해 마련한 것이 아니라, 학부모들이 순순한 자비로 운영하고 있다.

집 인근에 있는 학교를 마다하고 버스비를 내며 시골의 외딴 학교까지 아이들을 보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순천시 조례동에서 온 학부모는 “어릴 때부터 경쟁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며 “공부도 중요하지만 여유를 가지고 인성을 갖는데 중점을 두고 흙도 만져보고 공도 차보고 자유롭게 키우고 싶어서 이 학교를 보냈다"고 말했다.

순천시내의 한 초등학교를 다니다 3학년 때 송산으로 전학을 왔다는 6학년 강희웅 학생은 “팔마 다닐 때는 싸움도 많이 하고 욕도 많이 듣고 학교 수업 끝나면 운동장에서 놀 시간도 없이 바로 학원가고 학원 마치면 집에서 숙제하고 피곤해서 바로 자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송산으로 전학 와서도 학원을 다니지만 피곤하면 차에서 잘 수 있고 또 수업을 마치면 1시간 정도 축구도 하고 친구, 동생들과 함께 재미있게 놀 수 있어서 좋고 학교 수업도 재미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이렇게 행복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것은 김현진 선생님 같은 교사들의 역할이 크다. 김현진 선생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교육활동은 소통과 관계의 문제인데 아이들을 중심에 놓고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짜는데 개인의견이 아닌 전체 토의를 통해 교육과정이 다듬어지고 있다"며 “도시형 거대학교 보다는 자연 안에 있는 작은 학교가 아이를 긍정적으로 성장시키는 힘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학생을 중심에 둔 송산의 교육과정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송산의 교육과정엔 학생들을 중심에 두고 있다.
김성렬 교장은 학생의 특성, 지역사회의 특성을 감안해 고정된 교육과정이 아닌 농촌에 맞는 과정을 재구성했다. 학생들의 체험활동이 그것인데 1학년만 별도로 운영하고 나머지 2~6학년은 학년 구분 없이 공동체 교육활동, 프로젝트 학습 영역을 통합 운영하고 있다.

학생이 직접 계획해서 실행하고 평가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 주도적 학습력이 향상되는 효과를 얻게 되는데, 현재 운영하고 있는 목공분과, 농사짓기 분과, 옷 만들기 분과, 음식 만들기 분과로 운영되고 있는 프로젝트 수업을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고 있다. 특히 프로젝트 수업 중 목공분과에는 특기와 취미를 가진 학부모가 보조교사로 참여해 학생들과 함께 목공교육활동에 참여해 친밀도를 높이는 시간도 되고 있다.

학년별로 과제를 수행하는 도전활동도 아이들의 만족도가 높다. 1학년 15㎞ 걷기 도전, 2학년 지리산 들레길 걷기 도전, 3학년 무인도 체험 도전, 4학년 제주도 하이킹 일주 도전, 5학년 스스로 서울 탐방 도전, 6학년 지리산 종주 도전을 실시하고 있는데 도전활동을 통해 자존감과 성취감을 높이고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의 관계가 따뜻해지는 등 효과를 거두고 있다.

학생들에게는 블럭수업도 즐거움을 준다. 40분 수업하고 10분 쉬는 일반 학교의 수업모형이 아니라, 송산은 80분 수업하고 30분간 휴식한다. 40분 수업을 하면서 단절될 수 있는 수업을 80분간 운영함으로써 하나의 과정을 마칠 수 있는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10분 휴식으로 화장실 다녀오고 교실에서 대충 장난치는 것으로 쉬는 시간을 보내 아이들에게서 놀이가 사라졌지만 쉬는 시간을 30분간 운영함으로써 잘 놀 수 있게 하고 있다.

김성렬 교장은 “아이들이 길게 느낄 80분의 수업시간에도 중간에 화장실을 가는 등 필요한 경우 자율적으로 다녀오게 해 아이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아이들이 밝아진 것을 보면 지적으로 측정되지 않은 감성적인 게 더 큰 것 같다"고 평가했다.

 

◆학부모는 교육활동의 조력자
송산이 가고싶은 학교가 된 것에는 교육 공동체의 또다른 주체인 학부모들의 가치관도 한몫 했다.
학부모들은 자율적으로 학부모회를 구성해 학교 교육활동의 조력자로 나서고 학교 교육의 모니터링은 물론 자원봉사 등 학교교육 활동 참여와 지원, 자녀 역량강화를 위한 학부모 교육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프로젝트 수업에 학부모들이 보조교사로 참여하는 것은 물론 학교 도서관 운영도 학부모 5명이 순번제로 돌아가며 사서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아이들이 행복해 하는 학교를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순천에서 송산초등학교 인근마을로 이사를 왔다는 배현진(44, 1학년 자모)씨는 올 3월부터 독서 도우미를 활동하고 있다.

아이들의 이름을 거의 외우고 있고 무슨 책을 읽으면 좋을까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조언도 해주고 직접 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이미 내 자녀만의 엄마에서 송산 아이들 전체의 엄마가 된 것이다.

배현진씨는 “기분이 다운돼 우울하다가도 같이 급식을 하고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웃는 소리를 들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며 “1주일에 한 번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복"이라고 말했다.

운동회나 학예회 같은 활동은 학부모 수련분과나 학생 동아리 봉사분과에서 주도적으로 진행한다. 학부모들의 많은 참석을 위해 운동회는 공휴일에 실시해 가족 한마당 잔치로 운영하고, 학예회는 야간에 진행한다.

학부모가 많이 참석할 수 있는 날인지 여부는 관계없이 선생님들의 입맛에 따라 다음날이 휴일인 날을 잡아 운동회를 하고 아빠나 일을 하는 엄마들의 참석하기 어려운 낮 시간에 학예회를 하는 보은지역 교육계가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지난 4월 치른 운동회 때에는 학부모들이 마을회관에서 무료진료활동을 벌이고 미용 봉사도 펼치고 영정사진을 찍어드리고 경로잔치도 여는 등 학교와 마을이 함께 하는 잔치 한마당으로 진행해 큰 호응을 얻었다.

학생 수 감소로 하마터면 학교가 없어져버릴 뻔한 송산 학교에 순천시내에서 많은 아이들이 다님으로써 학교가 유지되는 것도 고마운데 마을과 함께 하는 활동에 주민들은 송산초등학교를 응원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학교가 위치한 송기리 박옥선(67) 이장은 “학교 때문에 도시에서 이사를 와서 빈집이 없고 땅값도 두 배 가까이 올랐는데, 그것보다 아이들이 말벗이 되면서 60~70대 노인들만 사는 마을에 활기가 넘치고 아이들이 경로당에서 재롱잔치도 벌여 하루 종일 텔레비전하고 대화하고 웃을 일이 없는 노인들을 웃게 해주니 얼마나 좋으냐“며 "시골에 있는 작은 학교라고 자꾸 없애기만 하는데 무조건 없애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김성렬 교장은 “경제적 논리로 따지면 작은 학교는 다 없애야하지만 학교교육은 경제로만 풀 수는 없다"며 "과거의 학교는 많이 배운 선생님들이 주민을 개화시키는 공간이었지면 지금은 문화적 공간이기 때문에 통폐합으로 학교가 없어지면 문화가 분산되는 것"이라며 작은 학교여야 아이를 따뜻한 마음으로 품어줄 수 있다는 소신을 밝혔다.

직업으로서의 교사, 직장으로서의 학교, 그리고 교육은 학교와 학원에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부모가 아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보다 즐겁고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송산의 교사와 학부모 같은 교사와 학부모가 우리지역에도 있을까?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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