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년 세월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온 황규설, 장금자 부부
59년 세월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온 황규설, 장금자 부부
  • 편집부
  • 승인 2012.05.24 08:40
  • 호수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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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배려, 희생으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다복한 가정 꾸려

요즘 젊은 세대들의 이혼율이 높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혼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얼마 전 식당에서 마주 앉아 국밥을 드시는 노부부를 보았다. 할아버지가 할머니 숟가락 위에 깍두기 하나를 올려주셨다. 밥을 다 먹고 난 후 할머니는 티슈 한 장을 뽑아 할아버지에게 건네주셨다. 두 분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살짝 훔쳐봤다. 손을 잡고 걸어가는, 다정하게 밥을 먹는,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노부부의 모습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59년 세월을 함께 한 노부부가 있다. 그 긴 세월을 펼쳐보면 부부의 청춘, 기쁨, 중년, 아픔, 배려, 인내, 삶의 모든 희로애락이 그들의 삶에도 있었다. 지금 노년의 부부는 행복하게 웃는다.  이해하고 인내한 사랑의 힘이다.

# 6.25 전쟁 당시 피난 간 부산서 만나
6.25 전쟁이 일어나고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부부는 그곳에서 만났다.
당시 헌병 파견 대장이었던 황규설 어르신은 아내 장금자 어르신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곱디곱던 아내는 84살의 나이가 됐다. 전쟁 통에 끼니를 굶는 일이 허다하던 그 시절 장금자 어르신의 가족들을 돌봐준 참 고마웠던 청년은 남편이 되었고, 세월이 흘러 83살의 나이가 됐다.

53년 남편의 고향인 충남 공주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된 두 사람은 61년 서른이 조금 넘었을 즈음 청주에서 보은 회인으로 이사와 새 터전을 일군다. 그때 '회인 약방’을 열고 5남매(1남 4녀)를 키웠다.

당시 회인은 산골 오지였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장금자 어르신이 산으로 둘러싸인 오지 마을 회인에서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딱 일 년만 살다가 떠나야지 했다. 딱 일 년만... 그랬던 것이 50년을 살았다.
회인에 들어와 남편과 약방을 열고 장금자 어르신이 시작한 일은 보건 사업이었다.

서울에서 보건 업무에 대해 교육을 받고 와 면내 마을을 다니며 예방 주사도 놓고, 가족계획 세우기도 홍보하는 등 20여 년 동안 보건 사업을 했다. 버스가 없던 시절이라 예비군 중대장을 하고 있던 남편이 오토바이 뒤에 아내를 태우고 마을 곳곳을 다녔다고 한다. 장금자 어르신은 그렇게 보건 사업을 하면서 사람들과 정이 쌓이고, 자신이 하는 일에 보람을 느껴 다시 도시로 떠나지 않았다.
61년 문을 연 회인약방이 부부와 함께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아내는 내조의 여왕
1980년에 처음 시작해 25년 동안 주례를 2,000쌍을 섰다.
대단한 황규설 할아버지다.
회남, 회북 등지의 부부의 연을 맺는 젊은이들 결혼식 주례를 무려 2000쌍이나 섰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한 해 겨울 50~60명의 주례를 섰을 정도다.

황규설 어르신이 주례를 서면 젊은 부부가 빈손으로 출발해도 좋은 직장을 구하고, 집을 산다며 사람들이 너도 나도 부탁을 해왔다. 그것은 주례서는 일을 결코 소홀히 생각하지 않은 황규설 어르신과 장금자 어르신의 정성어린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례가 있을 때면 황규설 어르신은 보은 읍내에 나가 목욕을 하고 이발을 했다. 주례를 서는 날에는 속옷부터 양말까지 새것으로 갖춰 입고, 장금자 어르신은 남편을 위해 새하얀 실크 와이셔츠와 빨간 넥타이를 준비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사온 건강구두는 주례 설 때만 신는 특별한 구두였다.

전날 예행연습을 마친 후 다음날 정성껏 차려입고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양복 안주머니에 축의금도 잊지 않고 꼭 챙겼다.

장금자 어르신이 옆집에서 중국집을 하는 이웃의 아들 결혼이라 안 가 볼 수가 없어 약방문까지 닫고 청주에서 하는 결혼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남편이 주례서는 모습을 딱 세 번 봤는데 그때가 그 중 한 번이었다. 많은 하객들이 집중할 수 있게끔 멋지게 주례사를 하는 남편의 모습에 장금자 어르신도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부부에게 전하는 황규설 어르신의 말에 하객들도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황규설 어르신은 대통령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11년 동안 했던 예비군 중대장 시절에 한 번, 15년 동안 활동했던 평화통일정책 자문위원으로 또 한 번을 받았다.

그뿐 아니라 지역과 사회를 위해 많은 활동을 했다.
회북면 25개 리 대표 노인회장을 12년 하고, 방범 대장, 청소년 선도위원, 충청북도 도정 모니터요원 등을 10년 이상을 했다. 외부 활동을 많이 하다보면 이래저래 지출도 늘고 아내가 싫어할 법도 한데 장금자 어르신은 남편이 하는 일을 지지하고 응원해주었다. 남편이 대통령상을 두 번이나 받은 것도 아내의 따뜻한 내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활동을 해온 황규설 어르신이 모든 일을 다 접은 것은 6년 전 건강이 안 좋아져서다. 몸이 아파 회북면 게이트볼 회장직도 내놓았었다. 그런데 게이트볼 활성화를 위해 황규설 어르신이 꼭 다시 맡아줘야 한다며 주위의 권유가 끊이질 않아 작년 12월 게이트볼 회장직을 다시 맡게 됐다. 황규설 어르신이 회장이 되고 회원도 늘었다고 한다. 

건강 악화로 수술을 하고 지금도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요즘은 불면증이 있어 밤에 잠을 못자 그것이 힘들다고 한다.
“이 사람 아니었으면 벌써 죽었을 거야."
아픈 자신을 간병하느라 고생한 아내의 마음을 황규설 어르신은 그렇게 알아주고 있었다.
 
# 할아버지의 일편단심 민들레 마음
황규설, 장금자 어르신의 가장 큰 보람은 5남매 대학 공부를 시킨 것이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어렵게 학비를 마련하고, 돈이 많이 드는 하숙을 시킬 수가 없어 자식들은 객지에 나가 손수 밥을 해먹으며 자취를 했다. 그래도 자식들이 부모가 고생한 것을 알아주니 참 고맙다.

자식들이 부모에게 고마운 건 그뿐만이 아니다. 금실 좋은 부모님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그 자식들이 부모로부터 보고 배운 대로 가정을 돌보며 살아가고 있다. 부부가 함께 일군 값진 행복이다.  

여든을 넘긴 황규설 어르신에게 물었다.
할머니가 아직도 사랑스러우세요?
수줍은 미소를 띠며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시는 할아버지다.
할머니를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에서 할머니를 향한 할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외출하고 돌아오실 때면 아내에게 줄 간식거리며 과일을 꼭 사들고 온다는 황규설 어르신. 빈손으로 귀가하시는 법이 없다고 한다.
할머니가 무슨 과일을 제일 좋아하세요? 물었다.
바나나, 귤, 오렌지. 바로 대답이 나온다.
할아버지가 사다주신 과일을 할머니는 또 이웃들과 나눠드신다. 그렇게 훈훈한 인심이 장금자 어르신이 오지 마을 회인에 들어와 50년 동안 이웃들과 나누며 산 넓은 마음이었다.

할머니의 생일이면 읍내에 나가 사온 예쁜 꽃도 선물하신다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마음이 꽃보다 아름답다.   
사랑은 단돈 1,000원으로도 할 수 있고, 과일 한 봉지로도 할 수 있고, 짜장면 한 그릇으로도 할 수 있다. 때론 돈이 필요하지 않을 때도 있다. '사랑해’ 그 말 한 마디면 당신의 아내와 남편은 행복하다.

부부가 살아가는데 좋은 날만 있나요. 맑은 날이 있다가도 비바람이 치고,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나다가도 다시 먹구름이 몰려오기도 한다.

이럴 때 사랑은 이해하고 인내하라고 속삭인다. 그럼 자기는 멀리 가버리지 않고, 몰아치는 비바람에, 밀려드는 먹구름에 지지 않고 다시 돌아온다고.

장금자 어르신이 말했다.
“서로 마음이 안 맞더라도 성격을 맞추면서 한 발짝 뒤로 양보하며 살아야지. 요즘, 여성 상위시대라고 하지만 난 내가 여자라서 그런가 여자가 양보하면 좋겠어." 요즘 젊은 부부에게 장금자 어르신이 당부한 말이다.
부부에게는 이해와 인내가 필요하다.

5월 21일 부부의 날에 황규설, 장금자 부부의 모습에서 사랑, 배려, 희생이 가정을 건강하게 다지고 그 속에서 행복이 싹틀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김춘미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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