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 특집>풍물, 시각장애인도 칠 수 있어요
<장애인의 날 특집>풍물, 시각장애인도 칠 수 있어요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2.04.19 09:17
  • 호수 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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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날씨. 두꺼운 옷이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날씨가 따뜻해졌다. 방에만 들어앉아있었던 앞 못 보는 시각장애인들도 나들이하기가 좀 편해졌다. 지난 16일 시각장애인들이 월요일마다 모여서 풍물연습을 하고 있다는 구세군교회(사관 김윤택)를 찾았다. 연습에 방해가 될까봐 살며시 문을 열고 발을 들여놓았다. 예배를 보는 의자에 우리악기를 놓고 시각장애인 어르신들이 강사의 지도를 받아 열심히 풍물을 두드리고 있었다. 오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앞을 보지 못한다고 의기소침해 있지 않고 취미활동을 하며 삶의 활력을 찾고 있는 시각장애인 풍물단을 소개한다.

 

 

“1주일에 1시간 바깥세상과 소통, 연습시간 더 길면 좋겠어요"

“자 어르신 상쇠 한 번 쳐보세요," "깨갱깽깽깽깨개갱" "예 잘하시네요. 그렇게 하시면 돼요"
“그럼 북 한 번 쳐볼까요?" “ 예, 북은 그렇게 치시면 돼요"
“다음 장구하면 쳐보세요!" "아니 그게 아니고 양쪽을 두드려 장단을 잘 맞춰야죠" “덩덩 더더덩"예 이제 잘하시네요"
“소고는 잘 두드리시죠?" “딱딱딱딱" “잘하십니다"

악기 하나하나 돌아가며 지도한 강사가 “자 그럼 인사장단 한 번 쳐볼까요?"하고 추임을 넣자 시각장애인들 전체가 장단을 맞춰본다.

인사장단은 바로 이것이다. “안녕 안녕 친구들 안녕" 지도강사가 시각장애인들이 박자를 잘 맞출 수 있도록 장단에 맞춰 붙인 문구다. 말을 하면서 두드리니 신기하게도 장단이 잘 맞는다.

인사장단을 시작으로 시각장애인 풍물단은 각자 악기에 혼을 불어놓으며 그동안 배운 가락을 열심히 두드리니 저절로 신명이 난다. 하지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

따라가기가 어려울 정도로 속도가 빨라지니까 장구를 치던 어르신이 “아이구 너무 빨라서 못하겠어룖하며 장구채를 놓자 강사는 연주를 중단시킨다.

그러자 제법 신명나게 풍물을 두드려 흥에 겨웠던 시각장애인 어르신들은 “한창 신나고 잘되는데 왜 딴말을 넣느냐"고 하시더니 모처럼 흥겹게 두드렸다며 좋아하신다.

지도강사는 “부쇠는 상쇠를 보좌해야 합니다. 상쇠가 빨라지면 속도를 늦출 수 있도록 신호음을 두드려줘야죠. 그렇게 하지 않고 상쇠가 틀렸다고 딴 음을 잡으면 안돼요.“

“자 그럼 제가 주의를 준 부분에 대해 조심하면서 전 곡을 다시 한 번 연주해볼까요?" 시각장애인들이 신명나게 두드리는 풍물소리가 구세군 교회 밖으로 삐져나올 정도다.

앉아서 상쇠를 치던 어르신은 신명이 나니까 자기도 모르게  일어서서 어깨를 들썩이며 추임새를 넣는 상쇠 잡이를 비롯해 북, 장구, 징, 소고를 두드리는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 참 맑다.

 

#집에서도 손으로 무릎치며 연습
시각장애인 풍물단은 상쇠 김기성(76, 탄부 장암1리)씨, 부쇠 명진윤(62, 보은 교사)씨, 북 허복동(76, 보은 산성1리)씨, 징 이종수(78, 마로 관기2리)씨, 장구 정길영(68, 회인쌍암3리)씨, 소고 김성구(80, 마로 세중)씨·김영순(78, 속리산 도화)씨·이대화(78, 탄부 장암)씨로 구성돼 있다.

풍물연습을 마친 이들 시각장애인 단원들은 “우리는 아무것도 안보여 내 눈앞에서 총을 겨누고 있어도 몰라. 그런 사람들인데 여기 나와서 이거 하면 얼마나 흥겨운지 몰라. 집에 있으면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감옥살이나 마찬가지여. 혼자서는 어디 나들이도 못하니까 여기 나오지 않는 날에는 방에서 텔레비전만 봐. 경로당에 나가도 되는데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서로 어울려 화투도 치고 윷도 노는데 나는 어울릴 수가 없잖아. 여기 나오면 서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있으니까 편하고 참 좋아"라며 풍물연습장에 나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말했다.

그렇게 풍물 연습하는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으니, 풍물연습이 얼마나 재미있을까?
시각장애인들은 “풍물연습을 하고 나면 쌓였던 스트레스도 다 풀려. 재미도 있고. 집에 가서도 배운 거 생각하면서 손으로 무릎을 치면서 장단을 맞춰보거든. 기력이 다할 때까지는 풍물을 계속 배울거여. 그게 소망이여"하신다.

시각장애인들이 이렇게 풍물에 열중인 것은 본인이 즐거운 것도 있지만 또 다른 소망이 있다. 그것은 앞 못 보는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풍물소리를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지난해에도 내북면에 있는 행복한집과 보은의 집에서 공연을 했고 흰지팡이의 날 행사에서도 공연을 했다. 올해도 6월경 행복한집에서 풍물공연을 할 계획이다. 생각 같아서는 일반인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풍물을 선보이고 싶은데 아직 그들에게 마당을 펼쳐주지 않아서 하지 못한다.

지난해에도 모 단체가 주최한 행사에서 공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이미 프로그램이 짜여있다는 이유를 들어 무대에 서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그래도 요양원등에서 풍물을 치면 거기 노인들도 좋아하고 잘한다고 칭찬하니까 신이 나서 더 잘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력보다 할 수 있다 자신감 줘
작년에도 배웠고 그 이전에도 배웠다. 그런데도 실력은 늘 거기에서 거기다. 올해도 3월부터 했는데 늘 초보자 같다.

그래도 풍물을 배우기 위해 구세군 교회까지 나오고 또 풍물을 치면서 이곳에 있는 시간이 이들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시각장애인 풍물팀을 지도강사는 웃음치료사로 활동하고 10월 속리산에서 열리는 속리축전 등에서 사회를 보기도 하는 정용식씨이다.

설명을 여러 번 해도 잘 따르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답답할 수도 있지만 정용식씨는 “시각장애인이지만 우리가락을 들어본 어르신들이기 때문에 지도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용식씨는 “가락은 머리로 익히는 게 아니라(외워서 되는 게 아니라) 몸으로 받아들여야 흥으로 발설돼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우리 혼이 있는 음악이다 보니 무리 없게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휘몰이, 일체~칠체를 가르치고 있는 정용식씨는 난타장단, 인사장단, 자진모리장단, 휘모리장단, 호남가락, 행진가락으로 7분용 공연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또 어르신들이 지루해 할까봐 공연용 프로그램 외에도 굿거리장단도 두드려보고 민요도 중간 중간 하면서 재미를 주고 있다.

정용식씨는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풍물을 치며 생활하는 것이 즐겁다"며 “즐거워하시는 장애인들을 보며 더욱 즐겁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구세군교회 고맙습니다"
처음에는 연습장소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웠다. 황호태 시각장애인연합회장은 “문의하는 곳마다 거절을 했는데 구세군 김윤택 사관이 구세군 교회를 시각장애인 풍물단 연습장으로 사용하도 된다고 먼저 손을 내밀어 이렇게 풍물연습을 할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황 회장은 “풍물을 하는 고령의 시각장애인들은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전맹들로 쉼터 프로그램이 없으면 바깥출입이 없는 사람들이어서 말이 없고 웃음이 없고 우울해 하고 집안에만 있는 사람들인데 이렇게 풍물연습을 할 수 있게 되어 어르신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구세군 교회를 기거이 시각장애인들의 풍물연습장으로 내놓은 김윤택 사관은 “교회가 신도들의 헌금으로 운영되는 시설이지만 시각장애인들이 연습을 하는 요일은 교회 업무와 중복되지 않아 제공한 것인데 장애인들이 좋아하시니까 참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장애를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고, 장애로 인해 사회활동에 위축받지 않도록 배려하면 장애인들도 우리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장애인과 함께 어울리는 지역사회의 모습,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다. 대추축제나 일반 행사에는 일반인들만 무대에 서는 것이 아니라 고령의 시각장애인 풍물공연단도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하루 빨리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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