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을 가슴에 담았다
속리산을 가슴에 담았다
  • 송진선 기자
  • 승인 2009.10.15 11:08
  • 호수 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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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환종주(3구간)

매월 둘째 주 일요일마다 떠나는 우리지역 명산 탐방. 지난 11일 산행은 속리산 환종주 3번째 구간으로 대목골~갈목고개를 종주했다. 당초 말티고개까지 14.5㎞를 종주하려던 계획을 축소한 것이다.

이제 단풍이 들기 시작한 산 속에서 한 세월을 보낸 물기 없는 낙엽들이 뒹구는 산능선을 타며 속리산을 가슴에 담아왔다.

아침 8시에 시작된 산행은 속리산면 도화리(옛 대목리) 천황사 뒤 쪽을 올라가는 것으로 시작했다. 지난달 90도에 가까운 암벽을 올라가서 다시 내려와야 했던 그 칼바위를 또다시 타야 한다는 생각이 가슴을 조여왔다.

거기다 아침 기온이 10도 아래로 떨어져 등산을 시작하는 발걸음에 찬공기까지 엄습해왔다. 산행을 시작한 아침 8시. 대목골, 도화리는 한 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아직 햇살이 퍼지지 않았다.

 

#칼바위의 공포
여느 등산 때처럼 경사진 산을 오르다 보니 아침 찬 공기는 스멀스멀 멀어졌고 이마에서, 등줄기에서 땀이 난다. 숨소리도 고르지 못하다. 찬 공기를 막기 위해 껴입었던 옷가지들이 거추장스러울 정도였다.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지난달 하산했던 그 칼바위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옮긴다.

금초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봉분이 황량한 분묘가 나타났다. 여전히 멧돼지의 소행인지 일부 파헤친 흔적도 보인다. 그런 분묘를 몇 개 지난 것을 보니 곧 칼바위가 나타날 차례다

맞다. 칼바위인지 90도 가까이 곧추 선 바위가 등산로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다. 칼바위가 아니라는 선발대의 설명도 있었지만 칼바위 같은 중압감으로 다가왔다. 돌아갈 수도 없는 일,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모두들 암벽등반을 감행했다.

산행을 이끌고 있는 최윤태 속리산악회 회장과 김재열씨, 김영환 등반대장의 지시를 따르며 바위를 애인삼아 정말 힘껏 끌어안고 한발 한발 옮겼다. 오금이 저리고 가슴은 벌렁거리고 …. 일행 모두 암벽등반을 감행해 성공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나타난 진짜 칼바위다. 이번에는 대부분이 암벽타기를 포기하고 칼바위 아래의 우회하는 길을 택했다. 이곳도 험난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공포심이 생기지 않아 다행이다.

위쪽에서 보니 날선 칼바위가 더욱 공포심을 준다. 아무래도 암벽등반은 또다른 등산 세계로 남겨둬야 할 것 같다.

 

#한남금북정맥을 타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르리 없건만…. 오르는 줄만 알았던 강행군의 산행이 어느새 하산길인가.

대목골을 다 올라가니 갈목고개 쪽으로 접어든다. 참 묘한 게 아무도 오르지 않았을 것 같은 산인데도 꼭 사람들의 발길이 닿은 흔적이 있다. 아마도 속리산에는 소나무도 많고 산도 깊으니까 버섯을 채취하려는 사람들이 찾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곳 능선이 바로 그 유명한 한남금북정맥 구간이란다. 한강 수계의 남쪽이고 금강 수계의 북쪽으로 속리산 천왕봉에서 서북으로 뻗어 충청북도 북부 내륙을 동서로 가르며 경기도 안성시 칠장산(七長山)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우리나라는 1대간 9정맥이 있는데 원래 백두산에서 지리산 천왕봉을 이르는 1대간은 남한구간 지리산 천왕봉~진부령을 말하고 9정맥은 속리산 천왕봉~안성 칠장산까지(141㎞)의 한남금북정맥을 비롯해 낙동정맥(매봉산~몰운대), 낙남정맥(영신봉~동신어산), 호남정맥(주화산~백운산), 금남호남정맥(영취산~주화산), 금남정맥(주화산~조룡대), 금북정맥(칠장산~안흥진), 한남정맥(칠장산~문수산), 한북정맥(수피령-북한산)을 말한다.

산을 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웬만한 사람들은 하나의 산을 정상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일반적인 등산으로는 재미를 느끼지 못해 1대간 9정맥 도전으로 산행의 묘미를 느낀다. 그래서 대간과 정맥을 종주중이거나 종주했다는 사람들이 특히 많다.

기암괴석이 자리하지도 않았고 새벽에 토끼가 눈비비고 일어나서 마실 것 같은 깊은 산속 옹달샘도 없고 수천 길 낭떠러지의 계곡도 없는 그냥 평범한 능선에 불과한 산줄기이지만 한남금북정맥의 일부분을 밟고 있다는 희열이 느껴지는 산행이다.

오르락내리락 하며 흘릴 법도 한 땀을 말려버리는 바람까지 불어 상쾌하고 아직 여름이 남아있는 푸른 나뭇잎이 눈까지 맑아지게 한다.

앞사람 발뒤꿈치만 보며 오르는데만 정신을 쏟지않고 가끔 뒤돌아서서 멀리 천왕봉과 소천왕봉의 자태를 감상했다. 천왕봉 정상 부근은 성질 급한 단풍이 살짝 들었는지  붉은 기운이 눈안에 들어왔다.
단풍 고운 가을 속리산의 절경이 눈앞에 펼쳐지듯 선하게 다가왔다.

#정이품송 안쪽 십승지지 만나다
천재(天災)나 싸움이 일어나도 안심하고 살 수 있다는 열 군데의 땅을 예로부터 십승지지라고 불렀다.
참위설(讖緯說)과 풍수지리설을 신봉하던 술가(術家)들의 말로는 경북 풍기의 금계촌, 안동의 춘양면, 보은의 속리산, 운봉의 두류산, 예천의 금당동, 공주의 유구와 마곡, 영월의 정동상류, 무주의 무풍동, 부안의 변산, 성주의 만수동을 가리킨다.

갈목고개 방향으로 내려오면서 사람이 살았던 터를 만났다. 산 중에 일부러 조성해놓은 것 같은 평평했다. 옛날 십승지지를 찾아 들어온 사람들이 화전을 일구며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지명지에는 이곳을 '새목이'라고 밝히고 있다. 새의 목처럼 생겼다 해서 불려진 곳이다.

이들의 주통행로는 정이품송앞쪽 속리산관리사무소 옆 골짜기다. 정이품송에서 속리산 사무소 옆 골을 보면 그대로 산이기 때문에 그곳에 마을이 있으리라는 것을 외부에서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다. 그야말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십승지지였던 셈이다. 지금 그곳은 계속 관리를 했는지 나무도 없고 제초작업까지 돼있었다.

이곳에서 우리 차지가 된 미처 털지 못해 떨어진 산밤줍기 대회가 열렸다. 송이가 벌이지기도 전에 떨어진 밤송이를 벌려 까느라 가시에 찔려 영광의 상처가 생기고 아팠지만 모두들 밤을 줍느라 여념이 없었다.

배낭 한쪽 주머니를 밤으로 채운 후 다시 하산을 재촉한 마지막 구간에서 행동조심 지령이 떨어졌다.
공원 내의 등산로가 아닌 구간을 등산한 것이어서 갈목고개 정상 부근 갈목마을 쪽에 있는 속리산관리사무소 초소 근무자에게 발각되면 자칫 과태료를 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갈목마을쪽이 대신 갈목재 아래 삼가저수지 쪽으로 살금살금 발걸음을 돌렸다. 다행히 초소 근무자에게 들키지 않았고 아침 8시부터 시작한 산행은 오후 3시경 갈목재에서 마쳤다.

한남금북 정맥 구간, 주능선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금강, 북쪽으로는 한강으로 이어지는 물의 여행이 이어지는 곳. 하산구간은 나무숲에 둘러싸여 능선을 타면서도 한치의 조망도 허락지 않아 조금 답답했던 산행이었지만 물의 여행이 이어지는 한남금북 정맥구간도 밟아보고 서원계곡에서 탁족(濯足)하는 것으로 그 한을 다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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