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생활 버리고 귀농한 보은읍 누청리 이종현씨
교직생활 버리고 귀농한 보은읍 누청리 이종현씨
  • 류영우 기자
  • 승인 2009.10.01 11:10
  • 호수 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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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더불어 살겠다는 오랜 바람 이루어진 곳 '보은'
떠나려는 농촌, 자꾸만 인구가 줄어들어 이제는 아이울음 소리 듣기도 어렵다는 농촌에도 들어오려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는 사람들도 아니고, 경치 좋은 시골에 별장을 짓고 자연을 만끽하려는 돈 많은 사람도 아니다. 냄새가 좋아 자연과 함께하는 농사를 짓기 위해 연고도 없는 농촌에 둥지를 트는 젊은 사람들이다.
귀농이 한창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언론을 통해 '환상적인 전원풍경'으로 이미지화 된 시골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시골로 몰려들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단지 전원생활을 꿈꾸며 농촌을 찾은 사람들은 이내 다시 도시로 돌아갔다. 농촌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동네가 아니었던 것이다. 리고 이내 농사짓는 사람들도 아들, 딸에게 농촌에서 농사짓는 것을 만류하는 세상이 되었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는 그 행렬에 뒤쳐지거나 역행하는 사람은 오히려 별난 사람 취급을 받는 요즘 세태에 낮선 땅, 생면부지의 사람들속으로 한 젊은 귀농인이 스며들었다.
서울에서, 또 대전에서 초등학교 교사라는 안정된 직장생활을 했던 그가 올해 2월 돌연 사표를 던졌다. 사직의 이유는 바로 '귀농'이었다. 1999년부터 10년에 걸쳐 귀농을 준비한 보은읍 누청리 이종현(55)씨 이야기다.

 

 

◆28년 교직생활 접고 자연속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겠다는 그의 꿈은 이미 오래전부터 가슴속에 담겨 있었다.
20대 중반, 서울에서 첫 초등학교 교사로 임용될 때도 그는 자연과의 삶을 꿈꿔왔다.

 

"처음 임용될 때 광명의 한 시골초등학교로 갔죠. 그곳에서 농사를 병행하며 교직생활을 했습니다. 자연과 함께 살겠다는 꿈은 이때부터 시작된 거죠."

28년 동안 교직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흙냄새를 꿈꿔왔다. 아니, 자연과 더불어 살겠다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갔다.

그리고 1999년, 그는 오랫동안 품어왔던 그의 행복을 찾아 나섰다.
"오랫동안 자연과의 생활을 꿈꿔오다 1999년이 되어서야 실행에 옮길 수 있었죠. 맨 처음 꿈꿨던 곳은 대천이었어요.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멋진 곳이라 생각했죠. 하지만 다시 찾은 그곳에 산은 없어지고 아파트가 들어서 있지 뭐예요. 대천을 포기하고 다시 찾은 곳이 바로 보은이었습니다."

이씨가 처음 느낀 보은의 이미지는 안정이었다.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춘 곳 또한 보은이었다. 한 마디로 사람 살 만한 곳이었다는 것이 이씨의 얘기다.

보은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은 후 이씨는 멀리 삼년산성 줄기가 눈에 들어오는 보은읍 누청리 한 야산 밑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주말을 이용해 서울서 보은까지 발품을 팔아 조금씩 집을 지었고, 2년이 지나서야 2층으로 지어진 행복한 보금자리가 완성이 됐다.

그리고 2009년, 그는 대전 중원초등학교를 끝으로 28년 동안의 긴 교직생활을 접고 자연 속으로 돌아왔다.

 

◆귀농의 기본은 자급자족
"어려움도 있었지요. 하지만 젊어서부터 꿈꿔왔던 삶이기 때문에 어렵다거나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또 10년을 넘게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조금씩 실천해 나가면서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었구요."

보금자리부터 마련한 그는 오랫동안 그려왔던 밑그림에 조금씩 색을 칠해 나갔다. 가장 먼저, 자급자족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데 힘을 기울였다. 나무 아궁이를 만들었고, 재래식으로 우물도 팠다.

현대식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패턴으로 그의 삶을 바꿔나간 것이다.

또한 집 앞에 작은 연못도 마련했다. 이곳에서 자란 잉어와 향어, 쏘가리 등은 이씨의 소일거리이기도 했지만 농촌에서 살아가는 최소한의 생활자금을 만드는데 사용된다고.

작은 연못과 함께 이씨의 집 앞에는 클로버가 자란다.
이 또한 이씨가 계획한 밑그림 중 하나다.
"나귀를 키우려고 합니다. 말이나 소를 키우려면 대규모 경영계획이 필요하지만 나귀는 쉽게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클로버는 나귀 사육을 대비해 사료작물로 재배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씨는 농촌생활을 시작하면서 경제적 개념을 바꿨다.
경제가 어렵다는 것은 실제로 경제가 어려워진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씀씀이가 커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작은 연못과 나귀 사육은 그의 소박해진 경제적 개념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교육에 대한 미련
현장을 떠났지만 그는 아직도 교육자다. 아니 현장에 있을 때보다 교육에 대한 열정은 더 커져만 갔다.
"농촌에서 도시로 떠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교육문제입니다. 경쟁을 통해 남을 짓밟고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는 교육의 본질이 아닙니다. 사람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 바로 교육의 참 뜻이죠."
그는 우리고장이 교육적으로 훌륭한 고장이라고 했다.

적은 학생수때문일지 모르겠지만 단 한명의 학생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하며, 학생이 학생으로써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지역이 바로 보은이라는 것이다.

현장에서보다 더 높은 교육에 대한 열정을 지니게 된 그는 이러한 열정을 지역에 뿜어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교직에 있을 때 제 전문분야는 음악이었습니다. 음악은 삶에 기쁨을 줄 수 있고,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희망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생소한 색소폰을 지역에서 교육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이 지역에서 청소년들에게 미래에 대한 새로운 꿈을 준비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습니다."

▲ 자연과 더불어 살겠다고 보은땅에 정착한 이종현씨. 이씨는 음악을 통해 지역과 하나되는 바람을 내비쳤다.

 

또 하나, 그는 보은사람들이 보은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전했다.
"저는 이곳이 좋아 이곳을 찾아왔는데, 정작 보은사람들은 이곳을 걱정하더라구요. 성공하지 못해 떠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제가 보는 보은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꿈꾸기에 충분한 곳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보은사람으로써 함께 가꾸며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자신의 꿈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내딛고 있는 이종현씨의 얼굴에 가득한 환한 미소속에는 아직 남아있는 우리 농촌의 희망도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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