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맞는 곰두리봉사회의 김장봉사 현장
10년째 맞는 곰두리봉사회의 김장봉사 현장
  • 박상범 기자
  • 승인 2011.12.08 09:33
  • 호수 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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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기쁨, 나누는 행복, 사랑의 김치

몸이 불편하고 경제적으로 어렵게 사는 장애인 가정이 겨울을 앞두고 맞게 되는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있다. 바로 겨울철 일용한 식량인 김장을 장만하는 것이다. 보은에서는 곰두리봉사회(회장 강호웅)가 이런 장애인 가정의 걱정거리를 덜어 주고 있는 대표적인 단체이다. 지난 2002년부터 매년 초겨울 김장을 담은 지가 올해로 10년째를 맞았다. 지난 11월 27일과 28일 50여명의 회원들이 아름다운 마음과 뜨거운 정성을 담아 김장을 담그는 현장을 찾았다.

 

#김장봉사를 위해 정성을 심다
사랑의 김장담그기 사업은 단순히 배추에 양념을 버무리는 것이 아니다. 정성을 담는 일이다.
올해 곰두리봉사회는 김장을 위해 정종수(산외 길탕) 회원 밭에서 계약재배를 했는데,  지난 8월 회원 30여명이 참여해 300평이 넘는 밭에 배추를 정성들여 심었다. 김장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배추재배부터 정성을 담았다. 회원 밭에서 배추를 계약재배함으로써 예산도 줄이고 배추를 심으면서 회원간 단합도 도모하는 일석이조의 행사가 됐다. 올해는 배추값이 싸서 큰 도움이 않았지만, 배추값이 금값이었던 지난해에는 많은 도움이 됐다고.

갑작스런 기온 하강과 첫눈이 온다는 날씨예보에 11월 24일 회원 20여명이 참여해 포터 5대를 끌고 가 배추 1천포기를 보은군농업기술센터 농기계보관소 귀퉁이로 실어 날랐다. 여기에 박정태(수한 후평) 회원이 배추 200여포기와 무를 보태 김장에 사용할 배추와 무는 충분히 장만했다. 김장의 맛을 좌우하는 고춧가루와 마늘, 파, 갓 등 양념·채소류는 회원들이 김장비용으로 십시일반 마련해놓은 회비로 충당했다. 지난해에 비해 배추값은 싸졌지만, 고추와 마늘 등 양념값 폭등해 1천포기 김장을 하기 위해 이런저런 잡비는 최대한 아꼈다.

곰두리봉사회가 김장봉사를 시작한 것이 2002년. 현 8대 강호웅 회장이 4대 회장을 하던 때였다. 지금은 이런저런 단체에서 김장봉사를 많이 하지만, 당시로서는 생소한 봉사사업이었다.

강호웅(48, 강씨방앗간 대표) 회장은 “당시 식당업을 하고 있던 산악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장애인가정에 반찬을 조금씩 지원해주고 있었는데, 2001년 초겨울 반찬배달을 갔다가 장애가 있는 아들과 둘이서 살고 있는 아버지가 제대로 된 반찬도 없이 아들과 밥을 먹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김장김치만 해주어도 겨우내 반찬걱정은 없이 지내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듬해 300포기로 시작했다"고 김장봉사 계기를 설명했다. 덧붙여 “많은 어려움 속에서 시작한 김장봉사가 회원들의 정성과 노력으로 이제는 1천포기까지 확대됐고 김장철이 되면 이런저런 기관단체에서 먼저 도움을 줄 정도가 됐다"면서 그동안 고생한 회원들과 도움을 준 기관단체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다듬고 씻고 절이기에도 정성을
올해도 변함없이 김장장소는 보은군농업기술센터이다. 이곳에서 김장을 담게 된 것은 5년전부터로, 매년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김장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김기남(54, 기술센터 인력교육담당) 부회장이 기술센터에 협조를 얻어 넓고 편리한 김장장소를 마련해 주었다. 배추를 씻고 절이고 다시 씻는데 물 걱정 없이 깨끗한 지하수를 펑펑(?) 쓸 수 있게 됐다.

11월 27일 토요일 오후 1시가 되자, 각자 생업을 정리하고 배추를 다듬고 절이기를 위해 회원 20여명이 모여들었다. 오랜 만에 만난 회원들끼리 인사가 나누어지고, 지난해 김장하면서 고생한 이야기, 재미있었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작년에는 내가 배추 절이고 씻느라고 고생했으니까, 올해는 네가 좀 해라. 너 밖에는 할 사람이 없다. 네가 '딱’이야",“요새 내가 허리 아프다는 소문이 온 동네 쫙 퍼졌는데, 형님만 못 들었나보네. 나 허리 아파서 못해, 낄낄낄"

10년을 해온 일이라서 일까, 우스게 소리와 농담이 오고가면서도 각자 자신들이 할일을 알아서 찾아간다.
배추다듬기에 투입된 회원들은 배추 겉을 뜯어내고 노란색 뽀얀 배추를 2등분내지 4등분하여 옆의 책상에 놓는다. 그러면 2명의 회원들이 바구니에 배추를 담아 배추절이기를 맡은 회원들에게 날라준다.  배추 씻고 절이기를 담당한 회원들은 이미 앞치마를 두르고 장화를 신고 푸른색 천막을 이용해 임시로 만든 절임통 바닥을 깨끗이 청소를 하고 있다. 다듬은 배추를 받아든 회원들은 배추를 씻고 소금을 뿌려 절인 배추를 차곡차곡 쌓는다. 마치 벽돌공이 한장한장 정성껏 벽돌을 쌓아 올리는 것 같다.

이런 남자회원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여자회원들은 파, 갓, 무 등 양념에 들어갈 채소를 다듬고 있다. 나기연 사업봉사분과장은 회원들의 간식거리를 위해 열심히 부침개를 부치고 있다.

팔이 아프고 손바닥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열심히 배추를 자르고 다듬었다. 배추와 채소류를 다듬고 난 부산물 쓰레기까지 트럭에 실어 버리고 난 시간이 오후 5시. 내일 양념에 들어갈 고춧가루를 물에 개는 작업과 저녁 8시경 절여놓은 배추를 뒤집을 회원 몇 명만 남고 내일을 위해 모두들 집으로 돌아갔다.

마치 군인처럼 일사분란하게 맡은 일을 처리하는 곰두리봉사회원들과 함께 약 4시간을 보냈다. 오래 지속된 봉사활동이 몸에 배였기 때문이라.

 

#배추 속마다 올올이 들어간 빨간 정성
11월 28일 오전 10시30분, 다른 취재일정을 부랴부랴 끝내고 다시 농업기술센터를 찾았다. 이미 40여명의 회원들이 모여 있었다. 남자회원들은 주로 절임배추를 씻고 나르고, 여자회원들은 어제 다듬어 놓은 파, 갓, 무우, 마늘 등을 넣어 만든 빨간 양념을 배추 속에 정성스럽게 넣고 있다. 하나둘씩 박스에 채워지자, 남자회원들이 박스를 포장해 트럭 위에 옮겨 싣는다. 겉보기에는 작아보여도 박스 하나가 제법 묵직하다. 족히 10㎏이상은 나갈 듯 하다.

이렇게 착착 회원들이 손발을 맞춰 김장을 담그는 모습이 마치 공장에서 기계가 돌아가는 것 같다. 이런 모습을 사진에 담느라 멀리서 바라보니, 신기하고 재미있을 정도다. 회원들은 일하는 동안 허리한번 제대로 펴지도 못하는 힘든 상황에서도 장애인가정과 소외계층을 돕는다는 생각에 모두들 즐겁다. 행복한 일을 해서 일까, 표정들이 모두들 살아있다.

이상훈(42, 보은관광 기사)회원은 “봉사는 시간이 남아서 하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서 하는 것이다. 1년에 한 번하는 김장봉사를 위해 이틀간 생업을 포기했다"며 “내 손으로 만든 김장김치를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다"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

김인선(46, 종갓집순대 대표) 회원도 “회원 모두가 내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정성을 다해 김장을 담갔다"며 “외로운 장애인 가족들과 소외된 가정의 따뜻한 겨울나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오후 2시부터는 김장 배포도 병행됐다. 주로 읍에서 멀리 떨어진 면지역부터 회원들이 직접 배포를 시작했다. 이렇게 저녁 7시까지 배포된 양이 장애인가정, 저소득가정, 조손가정 등 120여 가정에 달한다.

이틀 동안 배추를 다듬고 자르고 김장 속을 넣느라, 손바닥에 물집은 잡히고 어깨는 뻐근하고 눈물콧물도 제법 흘렸다. 곰두리봉사회는 매년 초겨울 3일간 10년째 이 일을 해오고 있다. 이들과 보은에서 함께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훈훈해진다.
올 겨울 반찬걱정을 덜 장애인들을 생각하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농업기술센터 정문을 나왔다.

 

#장애인 자립 위해  노력할 터
김장봉사가 끝난 다음날인 11월 28일 취재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강호웅 회장을 잠시 만났다.
강 회장은 전날 저녁 내내 전화를 받느라, 할일을 제대로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당연히 김장걱정을 덜어줘서 고맙다는 감사전화다.

강 회장은 "약 40~50통 정도 감사전화를 받았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학생이 '아저씨, 고맙습니다.  맛있게 잘 먹을께요’라는 전화를 받고 뭉클했다. 먹다가 모자라면 연락해, 아저씨 더 갔다줄께’하고 끊었다. 힘들었던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는 사연을 소개했다. 덧붙여 강 회장은 "앞으로는 장애인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봉사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지원이나 도움은 지양해야 하며,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도록 봉사회를 이끌어가겠다"고 향후 봉사방향을 강조했다.

1989년 회원 20명으로 출발한 보은군 곰두리봉사회는 22년이 지난 현재, 회원 52명이 한마음이 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장애인 편의를 위한 차량이동봉사와 함께 김장봉사, 빨래봉사, 집수리봉사 등 장애인을 돕는 보은의 대표적인 봉사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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