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 Train
The Last Train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05.31 19:57
  • 호수 6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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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성 수
속리산면 거주
시인, 수필가
충북작가회의 회원

우리 고장에서 나고 자란 문화 예술계의 자랑스러운 인물을 꼽으라고 할 때, 가장 먼저 오장환 시인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1918년 보은 회인에서 태어난 시인은 1930년대 ‘시단의 3대 천재’와 ‘시의 황제’로 불리며 문단에서 활동하고 수많은 작품을 쓰고 큰 족적을 남겼다. 이에 보은사람들에서 ‘오장환 시 다시 읽기’를 통해,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시인의 작품세계와 그의 생애를 다시 한 번 돌이켜보는 기회를 함께 가져보려고 한다. 시인의 존재와 업적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지역민들이 많이 계시는데 반해, 막상 그의 시를 접하게 되는 기회가 흔치 않았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이어질 연재를 통해 오장환 시인의 시를 만나고, 100년의 시대 차이를 넘어, 새로운 시각과 해석을 통해 그의 시정신을 공감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시인의 연대기나 작품 연보를 보면 그의 삶과 작품 세계는 1945년 8.15 해방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전후로 나누어진다. 앞으로 시인의 작품과 삶을 더 살펴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비교되고, 시대변화가 시인의 삶과 작품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도 알 수 있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해방 전의 시인도 시인이지만 해방 후의 시인의 문학과 삶이 더 치열해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막차라는 우리말을 굳이 「The Last Train」이라고 제목을 붙인 시인의 의도를 존중하면서 읽어보자. 

저무는 역두(驛頭)에서 너를 보냈다.
비애야!

개찰구에는
못 쓰는 차표와 함께 찍힌 청춘의 조각이 흩어져있고 
병든 역사(歷史)가 화물차에 실리어 간다.

대합실에 남은 사람은
아직도
누굴 기다려

나는 이곳에서 카인을 만나면
목 놓아 울리라.

거북이여! 느릿느릿 추억을 심고 가거라
슬픔으로 통하는 모든 노선이
너의 등에는 지도처럼 펼쳐 있다.          (1938년작  「The Last Train」 전문)

  시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장면이 있나요? 화물차가 수증기를 내뿜어며 지나가는
기차역의 저녁 풍경, 대합실의 온기가 식어버린 난로와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의 애잔한 분위기 그리고 아무런 말없이 역을 바라보는 시인의 고독한 뒷모습. 지식인의 무기력한 비애를 관련짓지 않아도, 시가 전해주는 감성만으로 완성도가 높은 문학세계를 만날 수 있다.
  못 쓰는 차표와 청춘의 조각이라니 그것이 또 역 구내 바닥에 버려져 흩어지고 뒹굴고 있으니 얼마나 쓸쓸한 마음이었을지. 화물차에 실려 가는 것이 석탄이나 목재가 아니라 역사라니 그 역사가 어디로 가는지, 얼마나 먼 곳으로 가는지, 마지막 종착역은 어딘지, 민족과 나라의 운명을 정해주는 역사, 어느 것 하나 분명하지 않은 막막함은 또 얼마나 시인의 가슴을 짓눌렀을지. 시인이 기다리는 카인은 시인을 목 놓아 울게 할 수 있을까.

  마지막 연은 더욱 빛나는 묘사와 비유가 기다리고 있다. 역사를 싣고 가는 기차와 추억을 싣고 가는 거북, 슬픔으로 통하는 기차 노선, 그리고 거북의 등에 그려져 있는 지도. 막차, 마지막 열차, The Last Train을 보내는 시인의 애잔한 마음이 어땠을까 아프게 공감이 되지 않는지요. 마지막 열차가 떠나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열차에 시인을 태워 보낼 수만 있다면 우리 마음이 조금 위로가 되겠지요. 다시 한 번 소리 내어 시를 읽어본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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