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희망이다
기다림은 희망이다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05.11 09:24
  • 호수 68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칼럼니스트 최 생 호
문화충전소 가람뫼 대표
보은읍 강산리

잊고 있었는데 꽃이 피었다. 가끔 바라볼 뿐 무언가를 해주지 못했다. 얄팍한 지식과 사소한 관심이 자라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됐다. 그런데도 오랜 시간을 견뎌내고 살아내더니 소리 없이 많은 꽃들을 보란 듯이 피워냈다. 저토록 예쁜 꽃들을 피워내기 위해 그 긴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지켜봐 준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몸부림이 새삼 경이롭다.
삶은 기다림이다. 살아가는 것은 무엇이든 때가 되고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애면글면한다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안달복달하면 기다림의 시간은 더 길어지고 멀어진다.  기다림은 인내다. 자신의 욕심과 기대를 내려놓고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것이다. 기다리면 올 것은 오고 될 일은 된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다. 갓 태어난 아이를 빨리 걷게 하기 위해 억지로 일으켜 세우는 일은 없었다. 뒤집기를 하고 배밀이를 하다 어느 순간 기어다닌다. 사방에 있는 의지할 만한 것들을 부여잡고 자기 몸을 힘겹게 일으켜 세웠다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스스로 일어서서 걷기까지 아이는 오롯이 혼자 힘으로 해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손뼉 치고 안아주는 일이 전부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아이의 성장과 발달 속에 기다림은 사라졌다. 때가 되지 않았는데 남보다 앞서가기를 닦달하고 늘 누군가와 비교하며 더 빨리 달리라고 다그쳤다. 차근차근 자라나 꽃피우기를 기다리는 것은 방관이요, 직무유기로 치부됐다. 기다림의 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아이들은 어느 순간 선포한다. 이제부터라도 나의 길을 가려 하니 제발 가만히 기다려 달라고.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이루려 했던 것들은 무용해지고 다시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과 마주한다. 
아이는 스스로 일어서고 우리의 몫은 한결같은 기다림이면 되는 것이다.
모든 만남도 기다림이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시간은 쉽게 주어진 인연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어느 한 지점에 닿아야 만나게 되는 운명이요, 행운이다. 그 긴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들을 만나고 친구와 이웃과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은 그 자체로 설레고 즐겁다. 집으로 돌아오는 가족을 기다리는 시간도 행복의 한 자락이다. 기다리는 만남은 모든 인연들을 소중하게 만든다. 오늘도 바람처럼 스쳐가는 시간들은 만날 수 없는 그리운 이들에 대한 기다림을 희망으로 채워가라 일러준다.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만나게 될 것이라고. 오지 않으면 내가 가고, 내가 못 가면 기꺼이 손 흔들며 다가올 것이라 말해 준다.
모든 결과는 기다림의 산물이다. 기다림의 시간이 없다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기다림은 스스로를 가꾸고 지켜내며 키워내기 위해 필요한 자양분이다.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다. 누구나 시작과 동시에 끝을 바라보며 그 시간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어떤 사람은 그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거나 주저 않지만 다른 누군가는 확신과 희망으로 기다린다. 한 사람의 현재가 빛을 발하는 것도, 어두운 터널 같은 시기를 지나온 것도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결실을 맛보기 위함이었다. 기다려준 많은 이들의 인내와 기도가 함께 닿아 현재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모든 기다림은 희망이다. 가뭄 끝에 내릴 단비를 기다리는 간절함이다. 어딘가로 가기 위해 들어선 문 앞에서 다시 문밖으로 나서기까지 견뎌내는 시간과 힘도 희망이다. 언젠가는 만나게 될 사람을 만나러 가기까지의 나날들도 희망이다.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다림의 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날들이 많아지기를 기다리는 오늘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