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건너
강을 건너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05.04 09:52
  • 호수 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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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성 수
속리산면 거주
시인, 수필가
충북작가회의 회원

연재를 준비하면서 이번 회에 어떤 시를 고를까하고 고민하는 일도 큰 즐거움이다. 그의 많은 시를 찾아 읽으며 한 편을 골라내는 일은 마치 보석을 골라내는 일과도 같아서다. 시인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지 모르겠지만, 골동품 가게에서 널려진 옛 것 속에서 빛나는 유물을 발견하는 일의 즐거움과 같은 일이다. 조금 긴 시여서 인내를 내어, 먼저 소리 내어 가만가만 읽어보면 좋겠다.

강을 건너

  모닥불. 모닥불. 은은히 붉은 속. 차마 흙 밑에는 냉기가 솟고. 재 되어 스러지는 태(胎). 강 건너 바람이, 날 바보로 만들었구려. 파락호 호주에 운다. 석유불 끔벅이는 토담방 북데기 깐 토담방 속에. 빽빽이는 갓난애. 갓난애 배꼽줄 산모의 미련을 끊어. 모닥불. 모닥불 속에 은은히 사그라진다.
  
  눈 녹아. 지평 끝, 쫒아오는 미더운 숨결, 아직도 어두운 영창의 문풍지를 울리며. 쑤성한 논두렁. 종다리 돌을 던지며, 고흔 흙, 새풀이 나온다. 보리. 보리. 들가에 흩어진 농군들. 봄밀. 봄밀이 솟쳐오른다. 졸. 졸. 졸. 하늘 있는 곳. 구름 이는 곳. 샘물이 흐르는 소리.
 
  해마다, 해마닥. 강을 건너며, 강을 건너며, 골짜기 따라 오르며, 며칠씩, 며칠씩, 불을 싸질러, 밤하늘 끄실렀었다. 풀 먹는 사슴이, 이슬 마시는 산토끼, 모조리 쫒고. 조상은 따비 이루고, 무덤 만들고, 시꺼먼 뗏장 위에 산나물 뜯고, 이 뒤에사 이 뒤에사 봄이 왔었다.

  어찌사 어찌사 울을 것이냐. 예성강이래도 좋다. 성천강이래도 좋다. 두꺼운 얼음장 밑에 숨어 흐르는 우리네 슬픔을 건너. 보았느니. 보았느니. 말없이 흐르는 강물에. 송화. 송화. 송화가루가 흥건히 떠내려가는 것. 십일 평야에 뿌리를 박고. 어찌사 울을 것이냐, 꽃가루여. 꽃수염이여. (‘강을 건너’ 전문)


  유난히 많은 마침표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이는 산문시로 보이는 형태에서 시어와 시어, 행과 행 사이에 여백과 운율을 넣은 효과를 내기 위한 시인의 의도가 보인다. 그래서 천천히 느린 호흡으로 소리 내어 읽어보면 좋겠다. 봄이 오는 시기의 계절 감각도 같이 공감하면서 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이 시는 1940년 발표된 시다. 오장환 시가 갖는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면, 식민지배의 끝이 보이지 않던 말기, 고향을  떠나 북방으로 떠나던 유민들의 생활과 생명 의지를 노래한 작품이다.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강을 건너 북쪽을 향해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서는 민족과 동포에 대한 시인의 아픈 공감이 절실하게 묻어난다.
  시가 보여주는 주제와는 별개로, 오장환이 왜 천재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는지를 여러모로 찾아 볼 수 있다. 3, 4, 5 각각의 음율을 다양하게 조합한 내재율과 적절한 시어의 반복을 통한 운율과 강조의 효과를 살리고, 사슬처럼 이어지는 시어의 배열로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이어져 나간다. 요즘 표현으로 사진 슬라이드가 아니라 동영상을 보는 듯하다면 적절할까.
  네 연이 비슷한 구조를 이루고 있어 반복되면서 점차 몰입하게 되는데, 곳곳에 뛰어난 구절을 가지고 있다. ‘배꼽줄 산모의 미련’과 ‘솟쳐오르는 봄밀’, ‘이 뒤에사 이 뒤에사 오는 봄’. 그리고 이 시의 가장 빛나는 보석과 같은 절창, ‘어찌사 어찌사 울을 것이냐 꽃가루여. 꽃수염이여’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시인이 준 선물과도 같다. 시인의 나라와 민족에 대한 아픈 공감이 절절하다. 지금 그를 만나는 일은 100년의 시간을 훌쩍 건너뛸 수 있는 시의 축복 아닐까. 다시 한 번 가만가만 소리 내어 읽어 보고 싶지 않은가. 
*파락호: 재산을 날려먹은 난봉꾼
*호주(胡酒): 중국에서 들여온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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