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형 인간 저녁형 인간
아침형 인간 저녁형 인간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04.27 09:20
  • 호수 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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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 철 순
시인
마로면 관기약국

오늘도 나는 새벽 5시 2분에 눈을 떴다. 정확하게는 5시에 눈을 떴을 거다. 눈을 뜨고 몇 시쯤일까? 생각하다 일어났으니까.
저녁형 인간이던 내가 언제부턴가 아침형 인간이 되어있다. 5시 즈음에 일어나 밤새 움츠렸던 허리 30번 두드려 주고, 복식 호흡 30번 하고, 눈도 좋아야 오래 책을 볼 수 있으니까 눈 운동도 하고, 스트레칭도 하고, 그러다 보면 15분 정도 지난다. 그리고 찻물을 끓이는 동안 전에 배운 요가 동작을 조금 더 한다. 그러면 20분 정도 지나고 그때부터 녹차를 우려마시며 책을 보거나 글을 쓴다,
언제부턴가 커피의 쌉쌀한 맛보다 녹차의 떫고 씁쓸한 맛이 더 좋아졌다, 아침에 녹차를 마시면 씁쓰레 떫은 맛이 입안에 퍼지며 정신은 더 맑아지고 정화되는 느낌이 들며 집중이 잘 된다.
고요한 새벽 혼자라는 그 느낌이 좋다. 온전히 혼자 깨어있는 그 시간에 책속에 있는 글은 더 잘 읽히고 글도 더 잘 써진다. 어쩌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다 너무 집중을 해서 찻물 부어놓은 걸 잊고 있다가 너무 오래 우려내면 더 쓰고 더 떫지만 그래도 진한 그대로 좋다, 오래 먹다보니 연한 맛보다는 진한 맛이 더 좋은 것 같다.
전에 나는 저녁형 인간이었다. 그러니까 직장을 다니기 전까지는 그랬을 거다. 밤늦게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늦게 잠이 들어 아침 아홉시나 열시쯤에 일어나곤 했다. 아이들 키울 때는 그러지 못했지만 아이들 모두 나가고 혼자가 되고부터(남편은 있지만 아침을 먹지 않는 사람이라)쭈욱 그런 생활이 이어졌던 거 같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늦게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면 기분은 썩 좋았던 것 같지는 않다. 남들 모두 일어나 분주하게 일하는데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는 게 뭔가 뒤쳐진 느낌이랄까?
아무튼 직장을 다니고부터 어쩔 수 없이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해야하고 그러니 자연히 늦잠을 잘 수는 없었다. 그러다보니 시간에 쫓기고 책볼 시간도 글을 쓸 시간도 없고,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나? 그런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고르다가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젊은 여자 분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래, 나도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녹차를 마시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을 거다. 그러나 그게 처음부터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축 늘어진 몸을 일으키려면 더 자고 싶은 유혹이 따듯한 이불 속으로 나를 끌어들였다. 그래도 유혹을 뿌리치고 일어나 책을 보면 하품은 왜 그리도 나는지.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가고 한 달이 가고, 몇 년이 지나 습관이 된 지금 이제는 더 자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지 않는다. 오히려 밤에 잠자리에 들 때면 언제 아침이 오나 기다려지는 날도 있다. 은비가 아파서 밤새 간호하느라 지쳐서 못한 날 말고는 그렇게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책을 읽고 글을 쓰다보면 창문 밖이 차츰 환해지면서 아침이 눈을 뜨곤 한다. 7시가 되면 길고양이 밥을 주고 기르는 강아지 밥 주고 출근 준비를 한다. 처음엔 피곤하기도 했지만 습관이 되고 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 문제는 아플 때다. 요 앞전에 밤새 열이 나고 감기를 심하게 앓았는데, 어김없이 새벽 다섯 시에 눈이 떠지는 거다. 잠이 안 와서 많은 동시는 썼지만 얼마나 심하게 앓았는지 이틀 동안 출근도 하지 못했다.
전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분들을 보면서 나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게으르다고,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일찌감치 포기하고는 했다. 그런데 저녁형 인간이던 내가, 늦게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던 내가 바뀌었다.
아침형 인간이 되어보니 좋다. 혼자 깨어있는 느낌도 좋고, 고요함도 좋고, 밤이 서서히 물러가고 아침이 오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좋다. 희망 같은 것이 꿈틀거리며 다가오는 느낌이 좋다. 나는 죽을 때까지 아침형 인간으로 살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쓸 것이다. 설레면서 아침이 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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