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길이 열리다
벚꽃길이 열리다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04.05 19:31
  • 호수 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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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 윤 이
보나팜영농조합법인 대표
산외면 대원리

보은 보청천변에 벚꽃길이 활짝 열렸다. 연분홍 벚꽃들이 웃으며 봄이 왔다고 손짓한다. 보청천변을 중심으로 50리길에 벚나무들이 양쪽으로 줄지어 서 있어, 한 해 가운데 벚꽃이 한창인 이 때가 보은이 가장 환해지는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렇게 예쁜 벚꽃이 피어 있는 때가 찰나이다. 피어오르기 시작한 때부터 2주 안에 꽃잎들이 거의 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사이에 비가 내리면 더 빨리 꽃잎들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벚꽃의 순간적인 찰나를 보면서 인생의 덧없음을 본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벚꽃을 볼 때면 왜 우리나라에 일본 꽃을 심을까 의아해한 적이 있다. 일본 사람들은 ‘사쿠라’라고 불리는 벚꽃을 유독 좋아해서 봄이면 벚꽃축제, 벚꽃파티를 열고, 일본의 남쪽부터 북쪽까지 시기별로 벚꽃여행 상품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벚꽃이 일본의 국화(國花)인 줄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국화(菊花)가 일본의 국화(國花)이다. 그래도 벚꽃은 일본의 정신적, 문화적 국화(國花)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인지 반일 감정을 가진 이들은 지금도 벚꽃축제를 반대하고, 심지어 여의도 윤중로의 벚나무를 베다가 잡힌 분도 있다고 한다. 
그러한 민족 감정의 차원에서 벚나무의 원산지가 한국이냐, 일본이냐 갑론을박이 많았는데 국립수목원은 2018년 유전자 분석을 통해 제주도에 자생하는 제주왕벚나무와 일본의 왕벚나무는 서로 다른 종이라고 밝혔다. 다만 우리나라 여의도를 필두로 한 벚꽃축제 현장과 지역 명소에 심긴 벚나무들은 대부분 일본산이라고 한다. 이에 국립산림과학원은 제주왕벚나무를 어미나무로 하는 가로수 보급을 위해 1만 그루 이상의 제주왕벚나무를 증식하여 제주도를 시범지역으로 공급하기 시작해 전국에 확대 공급할 예정이라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고려시대 목판인 팔만대장경의 반 이상이 산벚나무로 만들었을 만큼 벚나무는 껍질이 질기고 자생력이 강해 활의 재료로 쓰이기도 했다는 자료를 보니 벚나무의 벚꽃이 더 이상 일본만의 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네팔, 이란, 미국 등 온대기후에 자생하는 나무이니 벚꽃에 대해 반감을 가질 필요는 없겠다. 벚나무 또한 자연이 주는 선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렇지만 비슷한 시기에 피는 살구꽃이나 앵두꽃, 매화 등에 비해 사람들은 왜 유독 벚꽃을 좋아할까? 화사해서? 진짜 봄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그냥 예쁘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쁘니까 좋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요즘 MZ세대들은 사진이 잘 나와서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살구꽃과 앵두꽃, 복숭아꽃들도 벚꽃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화사하고 예쁘다. 다만 가로수길에 살구나무나 앵두나무, 복숭아나무를 심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쉽게 만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우리 마을 대원리에서 신정리, 장갑까지 가는 길에는 살구나무가 심겨져 있어 살구꽃을 볼 수 있는데 벚꽃과 비슷해 살구꽃이라고 아는 사람들이 적은 듯하다. 다른 봄꽃들의 존재가 희미해져 안타깝다.
제주 4.3은 벚꽃의 찬란함에 묻혀 있는 듯하다. 관심을 갖기 전에는 제주 4.3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을 터이다. 사실 나도 그랬다. 제주 4.3은 1978년에 출판된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이 나오기 전까지는 거의 쉬쉬 하던 사건이었다. 요즘엔 교과서에 실려 있지만 1980-1990년대만 해도 학교에서는 제주 4.3에 대해서 거의 언급이 없었다. 단순히 사건이라고 명명하기도 어렵지만 나무위키에 따르면,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7년 7개월에 걸쳐 제주도에서 경찰의 3.1절 발포사건을 발단으로 남조선로동당 측의 반란과 서북청년회 등 극우단체의 과잉진압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대대적으로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한다. 당시 제주도민의 8분의 1이 희생되거나 행방불명 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는지 알 수 있다. 오늘 자 신문을 보니 “4.3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온전한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던 윤석열 대통령은 75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작년에 대통령에 당선된 후 당선인으로서는 참석했으나 정작 대통령으로서는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 주말에는 대구에서 야구 시구까지 했는데 말이다. 노력은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아쉽다. 
예년보다 일주일 정도 빨리 핀 벚꽃이 이번 주 봄비로 인해 얼마나 흩날리며 떨어질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겐 벚꽃이 사랑과 삶의 아름다움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인생의 덧없음으로 다가가며, 누군가에겐 찬란한 슬픔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벚꽃은 벚나무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꽃이고, 자연이 우리에게 쉬어가라고 손짓하는 미소다. 이번 주 토요일(8일)에 열리는 보은군 벚꽃축제가 먹거리 장터나 놀이터, 경품행사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은 군민들에게 따뜻함을 선사하는 봄의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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