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쉬어가 봄
잠시 쉬어가 봄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03.30 09:08
  • 호수 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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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 철 순
시인
마로면 관기약국

감기를 심하게 앓았다. 얼굴이 너무 많이 부어서 하루 약국을 쉬기로 했다. 잠시 쉬어보니 많은 생각이 오간다. 내가 진정으로 해야 하는 일이 뭔가? 동시를 쓰는 일인가? 아님 노후에 풍족하진 않지만 그래도 초라해지지 않기 위해서 일을 더 해야 하나?
3월초부터 근 20여 일간 미친 듯이 동시를 썼다. 왠 시상이 그리 몰려오는지, 피곤하고 감기몸살을 앓으면서도 아침 일찍 일어나 동시를 썼다. 동시문학상에 도전하려고 50편만 써도 좋겠다, 생각했는데 80여 편이 넘어버렸다. 은근히 욕심도 생긴다. 두 군데 넣어봐?
며칠 전 동생이 너무 열심히 산다고 억지 휴가를 받았다며 전화가 왔다. 주말에 와서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 주말에 동생과 오빠와 남편과 함께 맛있는 것도 먹고 전망 좋은 카페에 가서 커피도 마셨다. 동생은 참 열심히도 산다. 대형트럭을 운전하는데, 동생이 세워둔 차를 다른 차가 박고 갔다고 한다. 수입차다 보니 고치는데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하면서, 억지 휴가라고, 너무 열심히 살아서 잠시 쉬어가라고 그러는 거 같다고 한다. 견인차 운전기사가 한 3일 정도 병원 다니면 돈이 더 나올 텐데 그러라고 하는 걸 거절했단다. 수리비도 비싸게 나올 텐데 인사사고 까지 들어가면 가해차량 운전자에게 보험료가 많이 할증되어서 안 된다고 한다. 역시 생각하는 것이 내 동생이다. 아들한테 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분이 아빠라는 소리를 듣는 착한 내 동생.
그 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70까지만 일하고 쉬어야겠다고 한다. 근데 아직 놀기에는 젊어서 그때 가봐야 알겠다고.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래 70까지만 일하고 책 읽고, 동시 쓰고, 뒹굴뒹굴 놀다가 배고프면 밥 먹고 또 잠 오면 자고 또 책 읽고 동시 쓰고, 그렇게 한가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몸이 아프면서 쉬고 보니 그걸 앞당기고 싶어진다. 동시집 낸지가 내년이면 십년인데, 아직 이러고 있다. 올해는 꼭 뭔가를 이루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물론 둘 다 중요한 일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일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은 신이 나서 하니까, 재미있으니까, 다른 건 욕심 없이 살고 있지만 글 욕심만은 내고 싶다. 좋은 동시를 쓰고 좋은 글을 쓰고 싶다.
봄이다. 감자 심는 걸 시작으로, 하우스에서 고추모종을 키우는 등 일 년 농사가 시작되었다. 허리가 아프고 무릎이 아프고 손가락이 갈라져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 농사일인 것이다. 농사를 짓는 일, 과연 하고 싶은 일일까? 해야만 하는 일일까? 잠시 생각해 본다.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힘이 들어도 재미있어서 하는 분들도 있고, 땅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도 행여 자식들이 힘든 농사일 할까봐 얼마 되지 않는 논밭을 모두 팔아버렸다. 산소가 있어 팔지 못한 땅이 있어 우리가 농사를 짓지만, 작은 농사도 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나야말로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해서 남편이 하는 농사일을 돕고 있지만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억지로 밭에 끌려가는 꼴이다.
잠시 쉬어가는 봄. 여기저기 꽃 소식이 들려오지만, 꽃구경 보다는 감기를 앓느라 이런저런 생각에 젖어 본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니까 그래도 행복한 사람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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