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혹은 착각에 관하여
용기, 혹은 착각에 관하여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03.23 09:52
  • 호수 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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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심 웅 섭
해바라기문화공작소 대표
회인면 눌곡리

최근 위안부 배상과 한일 관계를 둘러싼 정권의 해법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거기에 도지사가 직접 ‘친일파가 되겠다’, ‘내 무덤에도 침을 뱉어라’ 는 식의 비장한 입장을 낸 충청북도 도민의 입장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뜨거운 관심거리일 수밖에 없다. ‘이완용이 살아 나왔냐?’, ‘도지사의 애국심이다’ 는 식의 상반된 현수막들이 나붙고, 신문지상과 언론에서도 관심이 끊이지 않는다. 도대체 뭐가 맞는 말일까? 한편으로 보면 진정한 사과도 배상도 없는 일본의 뻔뻔함, 그런 일본에 굴욕적인 해법을 내 놓은 정권에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과거사에 매달리기보다는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모색할 때도 되지 않았냐는 생각도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둘 다 나름대로의 논리와 타당성이 있어 보이니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까?
일단 두 가지 입장을 조금 자세하게 살펴보자. 필자가 역사학자가 아니니 그저 소시민이 이해할 수 있는 평범한 언어로 양 측의 입장을 정리를 해 보자면 
1)역사는 그냥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는 현재진행형이며 현재의 출발점이다.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지 않고 현재가 바로 설 수 없다. 이 점을 잘 알고 있기에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는 전후 나치 협력자들을 철저하게 청산했다. 프랑스에서는 독일의 괴뢰정부였던 비시정권의 총리인 라발을 총살하는 등 6700여명을 처형하였고, 가해국인 독일에서 열린 뉘른베르크 재판으로 12명의 전범들을 교수형에 처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달랐다. 도쿄에서도 전범 재판이 이루어졌지만 그 범위가 제한적이었고 난징대학살이나 731부대, 위안부 등 반 인륜적인 범죄에 대한 단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해자인 일본은 진정한 사과와 반성 없이 원폭 피해자의 모습을 부각시키면서 주변국에 대해서는 고압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라는 이름으로 머리를 숙이는 것은 결코 미래지향적인 태도가 아니다. 
2)과거 일본의 행위와 반성하지 않는 태도가 문제인 것은 맞다. 그러나 한편으로 일본은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이웃이며 세계 경제대국이다. 더구나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의 위협에 공동 대처해야 할 안보 파트너이기도 하다. 과거사가 중요하긴 하지만 용서와 화해를 내세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정권, 혹은 통일 베트남의 경우를 보라. 굳이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대승적인 포용정책을 펴지 않았나? 우리나라도 이제 세계 경제대국이니 이에 걸맞게 과거에 매이지 말고 좀 미래 지향적으로 대처하자.
둘 다 나름대로의 타당한 이유와 논리, 그리고 선례가 있으니 이를 어찌 판단하랴. 그런데  이 경우는 헷갈리는 답이 아니라 문제 자체가 잘못 되었다. ‘무엇을 할까’ 하는 동사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하느냐’ 하는 주어의 문제가 바른 문제이다. 정답부터 말한다면 선택의 주체는 당연히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어야 한다. 정치인은 국민에게 의견을 내놓고 동의를 구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왜곡된 경험과 그릇된 역사관에서 나온 무모한 선택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 더구나 충분히 내부 토론을 거치며 사회적 합의점을 도출하는 노력조차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평지돌출 식으로 해답을 내놓고 국민들에게 이를 따라오라는 태도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전혀 민주적이지 않다. (앞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베트남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가장 큰 피해를 본 지도자가 승리를 한 후에 내리는 용서이니 당연히 권리가 있다.)
물론 그들의 충심만은 이해할 수 있다. 당장은 인기가 없지만 민족의 먼 장래를 위해서 외로운 선택을 하는 그 용기와 결연함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착각하지 마시라. 당신들은 국민들의 선택권을 제한된 범위 안에서, 잠시 위임 받았을 뿐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외로운 선택으로 국민들을 올바르게 끌고 가려는 생각은 사이비 종교나 오래된 왕조정치, 혹은 역사의 유물이 되어버린 독재정권에서나 통용되던 낡은 패러다임임을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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