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마로면 원정리
(60)마로면 원정리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03.09 09:42
  • 호수 67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많은 지하자원과 넉넉한 인심이 전해지는 마로면 원정리

#원정 최수성이 우거했다고 전해지는 원정리는 많은 지하자원과 넉넉한 인심이 전해지는 마을.  
원정리는 보은읍 남쪽 약 35km지점에 위치한 나들목 마을로 마로면 관기삼거리에서 청산방향으로 20여분 직진하다 솔정이봉을 배 산으로 하는 농촌마을이다. 
원정리는 원징 또는 원정이라는 지명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원정 최수성(猿汀 崔壽城 1487∼1521)이 마을에 우거(寓居: 임시거처)하면서 그의 호를 지명으로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마을이다. 최수성은 신진 사림파로 조광조(趙光祖), 김정(金淨)등과 교유하였던 인물로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 때 친구들이 희생당하는 것을 보고 벼슬을 포기하고 낙향하였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절친한 친구 충암 김정이 살았던 보은에 우거(寓居)했고, 그런 연유로 원정리라는 지명이 생겨났다고 한다. 경칩을 앞두고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원정리를 찾아가는 동안 길옆들판은 논갈이를 하는 트랙터들이 여기저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마을입구에 도착하니 마로광업소를 알리는 입석돌이 눈에 들어온다. 
원정리는 1리와 2리로 나눠지는데, 점동, 월납리를 통폐합하여 원정1리로, 모동, 관리동, 보리 골을 통폐합하여 원정2리로 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리 동은 우암 송시열선생이 이름 지었다는 설이 전해지기도 하는 마을이다. 
마을회관에 들어서니 주민 세분이 이야기를 하고 계신다. 인사를 드리고 마을이야기를 듣고자 찾아 왔다고 하니 올해 81세라고 하시는 어르신께서 19살에 시집와서 살고 있는데, 예전 광산업이 성행할 때는 마을 주민들뿐만 아니라 외지인들도 많이 와서 살았고 마을경기가 좋았다고 한다. 
필자가 지난 가을 원정리 삼층석탑을 찾아 왔었는데, 지금도 석탑을 갈 수 있는냐고 물어 보니 자동차 길은 되어 있는데, 입구에서 길을 막아 놓아 들어갈 수는 없고 다만 걸어서 갈 수는 있다고 하신다.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1리 회관을 나와 원정2리를 향했다. 

#원정2리는 많은 물이 흘러가도 떠내려가는 일이 없었다고 전해지는 명교(名橋)가 있었던 마을로 지금도 마을입구에 안녕과 풍년을 지켜주는 선돌이 있다
원정2리를 가기위해 큰 다리를 건너 직진하니 특이한 광경이 보인다. 길옆에 선돌이 여러 개 서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마을 앞에 선돌이 있는 곳은 보은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다, 선돌은 여러 용도로 활용되었는데, 이곳 선돌은 어떤 용도로 세웠는지 궁금증을 가지고 회관을 들어서니 주민 5~6명이 식사 준비를 하는지 분주하게 움직이신다. 어르신들에게 마을이야기를 듣고자 찾아 왔다고 방문목적을 말씀드리니 “아주머니 한 분이 내 나이가 올해 84세인데요. 하시면서 우리 마을 들어올 때 큰 다리를 건너왔지요?”하며 필자에게 물어본다. “큰 다리를 건너왔습니다.”하고 대답을 하니, “그 다리가 생기기전에는 돌다리가 있었는데요. 그 돌다리는 아무리 물이 많아도 떠내려가지 않았던 다리랍니다.” “옛 어른들 말에 의하면 그 다리는 암 돌과 숫돌을 교차로 만든 다리라 물이 많아도 떠내려가지 않았던 다리인데, 지금은 현대식 다리가 들어서있지요.” “어르신들은 그 돌다리를 건너 다녔겠는데요?”하고 궁금한 듯 물어보니, “그럼요. 예전에는 관기를 가려면 그 다리를 건너 다녔지요. 그 돌다리는 넓적한 돌로 만들어 장마로 물이 많아도 떠내려가지 않았어요.” “그랬군요.”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는 돌다리가 홍교라는 다리일 듯하네요. “홍교요.” 다른 말로 명교(名橋)라고도하는 데요.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옛날 원정 최수성 선생이 이곳에 살 때 냇가를 건너다니는 주민들이 불편해하는 것을 보고 이곳에 음양석(陰陽石)을 놓았다는 전설이 있는데요. 아마도 그 다리가 아닌가 합니다. 다른 곳에 또 다른 돌다리가 있었나요? 아니요. 없었어요. 우리는 이 다리로만 다녔거든요. “그럼 그곳이 홍교가 맞을 듯 하네요.” 하고 필자가 아는 체를 하니 “우리는 건너다니기만 했지” 그런 이야기가 전해지는 다리인줄은 몰랐다고 하시면서 무척 좋아하신다. 
“어르신들 혹시 이곳에 장군묘가 있다고 하는데 알고 계시는지요?”하고 조심스럽게 여쭈어보니, “마을 뒤 산에 장군묘라고 부르는 묘가 있는데요. 문인석이 눈이 크고 우락부락하게 생겨서 어릴 적에는 무서워 그곳에는 갈수가 없었지요. 지금도 있답니다.” 하신다. 
필자가 장군묘를 물어 본 것은 이곳에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계셨던 적암에서 전사한 이명백장군의 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확인 차 여쭈어 본 것인데, 장군묘로 불리 우는 묘가 있다는 소리를 들으니 참으로 반가웠다. 어르신들에게 위치를 물어 그곳을 찾아가니 문인석 두 개가 있고, 돌보지 않은 듯한 묘가 산 능선에 있다. 다만 묘지석이나 비문 등이 없는 관계로 그것이 이명백 의병장의 묘가 맞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어 아쉬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비옥한 황개들 쌀은 밥맛이 좋아 없어서 못 팔정도로 인기가 많고, 이 마을에서 생산되는 배는 수분이 많고 단맛이 강해 높은 가격에도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원정리 앞에는 황개들이라고 불리 우는 넓은 들이 있다. 이곳은 보청천과 세중천의 합수지점에 있어 토질이 비옥해 농사가 잘되고 밥맛이 좋기로 유명한 쌀이 생산되는 지역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원정리 황개들 쌀을 선호하고 있어 생산되기도 전에 매진사례가 매년 이어진다고 한다. 
특히 이곳에서 나는 배는 달고 수분이 많아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원정리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서둘러 이야기를 마치고 마을입구 선돌을 둘러보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서있는 선돌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지켜주는 듯 굳건해 보인다.
양화용 시민기자

마로면 원정1리 전경.         
마로면 원정2리 전경.
마로광업소 입구.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지켜주는 듯 마을입구에 서있는 선돌. 
이명백장군의 묘가 있는 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