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잊고 산다는 건
나이를 잊고 산다는 건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03.02 09:55
  • 호수 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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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 철 순
시인
마로면 관기약국
나이를 잊고 산다는 건
김철순
어느 봄날 길을 가다가
깜빡 내 아이를 잊어먹었네
 
나이를 잊고 길을 가다가
봄 소풍 가는 아이들을 만났네
가까이 다가가
아이들에게 내 나이를 대보았네
삐죽이 튀어나온 나는
아이들과 맞지 않았네
 
한참을 걷다가
가는 허리를 바람에 흔들고 있는
개나리꽃에게 다가가
내 나이를 대보았네
턱없이 굵어진 내 허리
개나리 나이쯤도 아니었네
 
조바심이 나서
꽃다지에게도 대보고
조팝꽃 무리에게도 대보고
아무에게나 대보고
 
맞지 않아서 도무지 맞지 않아서
오래된 사과나무 아래서 쉬었네
 
- 「오래된 사과나무 아래서」 부분 -
 
위의 시는 오래 전에 쓴 시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나이를 잊고 산다. 그러니까 굳이 내 나이를 셈하지 않는다. 올 해도 새해가 시작되어 한 살을 더 보탰지만, 내가 몇 살이 되었는가는 굳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건강검진을 하려고 문진표를 작성하면서 내 나이를 써야하는데 도무지 몇 살인지를 모르겠는 거다. 여기 저기 내 나이가 적혔을 법한 종이를 찾다가 약봉투에 적힌 나이를 확인하고야 적을 수 있었다. 누가 내 나이를 물어보면 나이는 모르겠고 양띠라고만 알려준다. 내 나이를 몰라서.
얼마 전에 신협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그곳에서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자기가 노인회 총무일을 보는데, 노인회에 들어오라고 한다. 나는 극구 사양을 했다. 나는 아직 내가 노인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고 했다. 그렇게 부정을 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6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나는 분명 노인은 노인인가 보다. 얼굴에 주름은 늘고 머리고 염색을 안 하면 흰머리가 장난이 아니다.
손주를 보고나서 처음 할머니! 소리를 들었을 땐, 기쁘기 보다는 서글픔이 밀려왔다. 내가 할머니라니.
나이를 잊고 산다. 아직도 아이들 마음으로 돌아가 동시를 써서 그런지 내가 나이를 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가 80살쯤 되면 노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까? 남편한테 철이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철이 없고 나이를 잊고 산다는 건 행복한 일일까? 아님 불행한 일일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에게만은 행복한 일이다.
팔십이 넘어서도 동시문학상을 타며 맛깔나게 동시를 쓰는 어느 시인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살리라 다짐해본다. 나는 아직도 두근두근 좋은 동시를 쓰기 위해서 내 안의 조그만 아이를 불러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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