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마로면 임곡리
(57) 마로면 임곡리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02.15 20:58
  • 호수 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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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산을 마주보고 있는 먹산이 자리하고 있는 역사 깊은 마로면 임곡리

#우복동(牛腹洞)이라 불리며, 해발 450고지에 자리하고 있는 청정 도계마을 임곡리(壬谷里)
입춘(立春)이 지나 마음은 벌써 봄이 왔나 보다. 
이번 주는 보은 동쪽 약 30km 떨어진 산골 마을 임곡리를 소개한다.
임곡리를 소개하기 위해 지인들과 함께 일찍 여정을 시작했다. 임곡리는 구병산(九龍山)을 마주 보고 있는 먹산(大母 山)이 길게 자리하고 있는 역사 깊은 마을이다. 
임곡리는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왕래산, 천태산, 먹산의 고원 분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소의 배속 같다고 하여 예전에는 우복동(牛腹洞)이라 부르기도 하는 마을입니다. 마을 북쪽으로 용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용굴이 있고, 단군 신앙을 기원했던 천제단이 있다고 전해지기도 하는 마을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경상북도 지역에 있어 오늘 마을 소개에서는 제외하기로 했다. 
마을 중심으로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가 이어지고 있는 도계마을이다 보니 한마을 두 회관이 자리하고 있기도 한 마을입니다. 
임곡리를 찾아가는 날은 비교적 맑은 날씨지만 아직은 겨울의 끝자락이다 보니 쌀쌀한 바람이 제법 강하게 불고 있었다. 하지만 임곡리를 찾아가는 동안 오리들, 지렁이들, 임한리 들, 봉비리 들, 구암 들을 비롯한 탄부면, 마로면 일대의 청정지역과 장기들 등 여기저기 농사 준비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제법 많이 보인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병자호란(丙子胡亂) 6.25등 나라에 사변이 일어날 때마다 많은 생명을 구해 주었던 은혜(恩惠)의 마을 
우리 일행이 관기를 지나 상주 방향으로 5km를 전진하니 임한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오고,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들어가니 마을 유래비가 길가에 자리하고 있다. 잠시 멈추고 유래비를 살펴보는데, 소백산(小白山) 천기(天氣) 받아 구병산(九屛山) 시루봉이 병풍(屛風)처럼 감싸 안고 산 새 우는 북향(北向)이라 임곡리(壬谷里)라 정하였네, 임진왜란(壬辰倭亂), 병자호란(丙子胡亂) 6·25 때에는 많은 생명을 구하였네, 피란지(避亂地)로 명소(名所)이고 충북(忠北), 경북(慶北) 도계(道界)마을 양쪽으로 분배되고 성씨(姓氏)로는 장씨(張氏), 강씨(姜氏), 김씨(金氏) 삼성(三姓)이 임진왜란(壬辰倭亂) 피난처(避難處)로 정한 후 장씨(張氏), 강씨(姜氏) 대성촌(垈城村)을 이루었고 타성(他姓)은 소수(小數)이며 동으로는 천연동굴(天然洞窟) 유생(儒生)들이 모여들어 한문서당(漢文書堂) 유서 깊네, 충효사상(忠孝思想) 뿌리 깊어 남쪽에는 북바위 서쪽에는 문바위, 천제당(天祭堂) 필봉(筆鋒) 먹산... 중략. 이라고 쓰여 있다. 
우리 일행은 마을 유래비를 뒤로 하고 본동(本洞)으로 들어가기 위해 마을 길을 들어서니 좁다란 길이 골짜기를 따라 이어진다. 한참을 올라가니 마을을 지키는 당산(堂山)나무가 우리를 맞아준다. 당산(堂山)나무 옆에는 마을 제사를 지내는 돌탑이 있고, 입춘제(立春祭)를 지냈는지 돌탑에는 소지(所志)가 끼워져 있는 왼 새끼줄이 둘러 처져있다. 일행은 당산나무에 오늘의 무사 안녕을 빌고, 마을 안으로 들어서니 경북 쪽 마을회관 앞에 왼새끼 줄이 처져있다. 보은 쪽 회관을 찾아가니 어르신 한 분이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신다. 마을 소식을 듣고자 찾아왔다고 인사를 하고 마을 유래를 여쭈어보니 “우리 마을에 돌 광산이 있는데 그곳에는 암각화가 그려져 있었답니다” “암각화요?” 깜짝 놀라 필자가 암각화에 대해 되물으니 어르신께서 이야기하시길 꺼리신다. “이 마을에 암각화가 있었나요?” 하고 재차 물으니 “예! 우리 마을 근처에 용굴이 있는데, 그곳에 암각화가 있었지요. 그뿐만 아니라 고인돌도 있었답니다” “지금도 있나요?” 하며 재차 여쭈어보니 “자세한 이야기는 해 줄 수 없다”라고 하시면서 자리를 피하신다. 

마을입구 당산나무와 돌탑.<br>
마을입구 당산나무와 돌탑.

#지금도 매년 1월 14일이 되면 마을 앞 당산나무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동제(洞祭)를 지내고 있는 청정마을
어르신의 말씀을 듣고 있다 보니 임곡리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르신 마을엔 많은 유적과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듯한데, 그것을 마을 사람들만 간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알고 있는 역사나 문화유적, 전통을 많은 후세에게 널리 알려 우리의 우수한 문화유산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곳에 전해지고 있는 마을 유래나 유적이 있다면 보다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려 사람들이 관심이 있어야 보존하고 관리가 되는 것입니다. 혹여나 마을의 전통이나 유물, 유적들이 방치되고 있다면 믿을 수 있는 관리기관에 신고하시어 온전히 보존할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합니다. 역사란 많은 분들이 공유할 때 발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계 10위권의 나라가 되는 것도 튼튼한 역사적 소명을 가지고 많은 분들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 보은도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유적, 유물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다행인 것은 최근 지자체에서 지역에 개인이 소장하고 있거나 방치되고 있는 유적 유물들을 찾아내고 보존하려고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답니다. 개인이 보존, 보관하기 어려운 유물들을 지자체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오래도록 지켜나갈 수 있으므로 혹시 그런 유적 유물이 있다면 신고하시어 관리를 부탁드려보시기를 바랍니다. 자리를 뜨시려고 하는 어르신을 붙잡고 간곡히 말씀드렸더니 그제야 알겠다는 표정을 하신다. 그러면서 명함을 하나 달라고 하신다. 어르신과 이야기를 끝내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초봄 날씨라 그런지 쌀쌀한 바람이 많이 불고 있어, 마을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삽살개 한 마리가 낯선 이가 반갑지 않은지 계속 따라다니며 짖어대고 있다. 우리 일행은 마을 앞 용굴을 찾아가려고 마을 안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날씨가 바뀌더니 어두워진다. 그리고 조금씩 눈이 날리기 시작한다. 결국 발길을 돌리고 용굴을 찾아가는 계획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마을을 떠나 작은 서당 골에 새롭게 조성된 나인벨리 파크에서 간단한 식사와 커피를 마시고 일과를 마무리했다.
양화용 시민기자

돌탑.
마을입구 연자탑.
마을입구 펌푸.
임곡리 마을 입구 전경.
임곡리 마을입구에 있는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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