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마로면 갈평리
(56) 마로면 갈평리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02.09 09:13
  • 호수 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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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깊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기로 소문난 마을 마로면 갈평리

#구병산줄기가 남북으로 힘차게 뻗어내려 가다 웅장하게 치솟은 귀봉산(구병산)아래 효성 깊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칡을 걷어내고 황무지를 개간하여 이룬 갈평 마을
이번주는 칡이 많은 들이라고 전해지는 마로면 갈평리를 소개한다. 
갈평리는 김해김씨 집성촌으로 알려졌지만, 지금은 많은 성씨들이 살고있는 마을이다. 안말(갈평1리) 과 새터(갈평2리)로 이루어진 갈평리는 사모각, 영모재, 정수암지가 있고, 마을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가래실이라고 부르는 작은 골짜기가 있다. 또한 마을 뒤 큰 저수지와 작은 자수지 두 개가 있는데, 그 아래는 구렁이들이라고 부르는 땅심 좋은 들판이 있어 물 걱정 없이 매년 풍년을 이룬다고 한다. 특히 마을 뒤로 구병산 줄기가 남북으로 길게 내려가다 웅장하게 치솟은 귀봉산(구병산)을 주산으로 하고 있어, 예로부터 길지로 알려진 마을이다. 마을 뒤는 바른골, 오야골 절골, 도마티라 부르는 골짜기가 많은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서설이 조금씩 내리고 저 멀리 구병산이 웅장하게 보인다. 반쯤 걸친 운무에 둘러싸인 구병산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마을 길옆으로 김해김씨 세거지지(金海金氏世居之地)라고 쓰여 있는 돌탑이 보이고, 그 옆으로 창효각(彰孝閣)이 보인다. 창효각과 조금 떨어진 갈평2리 마을 입구에 1979년 김종호(金鍾鎬)가 쓴 해사선생 사모비(海史先生 師慕碑)가 보인다. 사모비(師慕碑)를 뒤로하고 마을회관에 도착하니 어르신들 몇 분이 이야기를 하고 계신다. 마을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고, 인사를 하니 조금 젊어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내가 시집와서 이 마을에 60년을 살았는데, 우리 마을은 갈등이 없는 마을입니다. 그만큼 주민들 사이에 우애가 깊은 마을이지요. 마을 뒤로는 바른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는데요. 그곳에는 부정한 사람은 갈 수 없는 지역이랍니다” “그런 골짜기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그 이야기 좀 해주시지요?” “옛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바른골에 물탕 바위라는 신기한 바위가 있는데요. 평상시는 물이 조금씩 떨어지다 부정한 사람이 오면 물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옛날 우리 마을 사람들은 바른골로 나무를 하러 갈 때는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일을 하지 않고 다녔답니다”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갈평리는 지금도 정자나무 아래에서 매년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동제(洞祭)를 지내
“또한 동쪽으로 적암 넘어가는 서낭 고개라는 작은 고개가 있는데요. 지금도 그곳에는 년 초가 되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분들이 있답니다. 작은 저수지 위쪽으로 오야 골이라는 곳에 산제당이 있는데요. 산 제당에는 지금도 매년 음력 정월 14일이 되면 제사를 지내고 있답니다. 또한 큰 저수지 아래 커다란 소나무가 있는데, 그곳에는 호랑이묘 등(嶝)이라는 봉우리가 있지요” “복호 등(伏虎 嶝)이라는 봉우리를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복호등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호랑이묘 등은 범이 웅크린 모양이라 그리 불렀다고도 하고, 전설에 의하면 마을 터를 잡아준 호랑이가 죽었는데, 사람들이 죽은 호랑이를 그 곳에 묻어 주었고, 그 이후부터 복호등이라고 불렀다고 하네요. 절 골이라고 부르는 곳은 정수암지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큰 절터, 중간 절터, 안 절터로 불리 우고 있지요. 예전 그곳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기와 조각이 많이 발견되곤 하였는데, 지금은 찾아가기 어려울 것 같네요. 전설에 의하면 사찰에 빈대가 많았는데, 살생을 할 수 없던 승려들이 모두 떠나 폐찰 되었다는 설이 있답니다. 마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회관을 나와 정자나무아래 빈터를 바라보고 있는데, 주민 한분이 다가와 여기가 옛날에 물레방앗간이 있었답니다. 옛 어른들 말씀에 의하면 물레방앗간 옆으로 샘이 큰 게 있었는데요, 우리 마을은 샘이 여러 개가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이곳에 있던 샘이 가장 큰 샘이었지요. 이 마을 사람들은 이곳 정자 나무 아래에서 제사도 지내고 마을의 대소사를 논하기도 했던 자리입니다” “그럼 마을 제사를 여기서 지내셨군요?” “그럼요. 이곳에서 지금도 매년 1월 14일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차려놓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동제(洞祭)를 지낸답니다” “샘과 물레방아,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으니 마을 사람들 쉼터로 딱 맞는 곳이네요” “지금은 어른들이 많이 돌아가셔서 옛날 같지 않지만, 아직도 옛 풍습을 많이 유지하고 있는 마을이 우리 마을이지요” 
주민과 헤어지고, 마을 안쪽을 둘러보는데,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모습이다. 아직도 옛 돌담이 그대로 있고 여기저기 빈집과 빈터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니 예전에는 규모가 꽤 큰 마을이었다는 것이 실감 난다. 

#효성(孝誠)지극하고, 학식(學識)높은 해사 김정배(海士 金鼎培)의 사모비(思慕碑)가 있는 마을, 갈평은 효자효부(孝子孝婦)가 많기로 소문난 마을
마을을 둘러보고 뒤로 돌아서니 저 멀리 영모재(永慕齋)가 보인다. 영모재(永慕齋)는 비지정 문화재로 병산 김수기(屛山 金守起)가 그의 아버지 통정대부 이직(通政府君 以直)을 장사지내고 3년 동안 시묘를 하던 곳으로 그의 9대손인 해사 정배(海士 鼎培)가 조상(祖上)의 효성(孝誠)을 사모(思慕)하여 영원히 기리고자 친족(親族)들과 함께 창건(創建)한 곳이다. 영모재를 둘러보고 마을 입구에 있는 유래비를 살펴보니 구병산 정기 받아 칡덩굴을 걷어내어 한두 집 지은 것이 마을 이루었네, 그 이름 갈벌 갈평리라 하였도다. 인의예지(仁義禮智), 삼강오륜(三綱五倫), 미풍양속(美風良俗)이어 받아 모범부락 이룬 것이 보은군의 자랑이니 황무지를 개간하여 밭농사를 지어오다. 정부 시책 받아들여 저수지를 축조하고 앞뒤들 경지정리 옥답(沃畓)이루었네, 새마을사업으로 진입로 포장하고 아름다운 꽃길 조성 전국이 유명하며, 훈훈한 마을 인심 내일을 밝혀주니 우리 부락 주민 일동 한 마음 한뜻으로 자랑스러운 마을 이루자고 쓰여 있다. 마을 이야기를 듣고 돌아 나오는데, 어느덧 눈발은 멈추고 저녁 햇살이 구병산을 더욱 아름답게 비추고 있다.
양화용 시민기자

마로면 갈평리 마을 전경의 모습.
김씨세거지비와 창효각.
돌담길이 예쁜 마로면 갈평리 마을안길의 모습.
마로면 갈평리 마을회관앞에는 수령이 약 500년이상 된 보호수 53호로 등록된 느티나무가 있다. 오랜 세월 갈평리 마을을 지켜온 마을의 유산이다.
사모각.
샘터.
서낭길
영모재.
물레방아터
갈평리 마을회관
갈평리 마을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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