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굽은 나무
등 굽은 나무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02.02 09:17
  • 호수 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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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 철 순
시인
마로면 관기약국

거의 십여년 전쯤의 일이다. 군민원과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했었다. 두 군데의 신문사에서 동시로 신춘문예 당선을 하고 동시를 열심히 쓰고 있을 때이다. 우리 아이들은 너무 커버렸고 나의 어린 날을 불러내 동시를 쓰기에는 한계가 느껴졌다. 체험에서 우러난 싱싱한 동시를 쓰고 싶었다. 
어린이들을 직접 보고 느끼고 싶어 점심을 얼른 먹고 민원과 바로 뒤에 있는 삼산초등학교로 갔다. 벤치에 앉아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교문 옆에 있는 등 굽은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바로 동시가 쓰여졌다. 동화처럼 동시에도 환타지를 접목하면 어떨까 생각 중이었는데, 등 굽은 나무를 말처럼 타고 하늘 높이 날아가는 상상을 하니 재미있는 동시가 쓰여졌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등 굽은 나무’는 나의 첫 동시집 “사과의 길”에 들어갔고 4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리는 행운도 얻었다.
등 굽은 나무를 생각한다. 어쩌면 곧게 자란 나무가 아니라서 날카로운 톱날을 피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등이 굽어 허리도 많이 아팠으리라. 곧게 자란 잘생긴 나무들 틈에서 따돌림도 당했으리라. 등이 굽어 눈부신 햇살을 많이 받지도 못했으리라. 등이 굽어 세상과 당당히 맞서 싸우지도 못했으리라. 
저 산이 저리 청청한 것은 곧게 자란 나무만 있어 저리 푸른 것은 아니리라. 등 굽은 나무가 있어 슬쩍 햇볕을 내주고 그 옆의 나무가 햇볕을 받고, 그 밑에 있는 작은 풀꽃들도 함께 꽃을 피울 수 있었으리라. 
곧게 자라 누군가의 대들보는 되지 못해도 나처럼 어느 시인의 좋은 시의 제목이 되었을 테다. 어느 부족한 사람의 위로가 되었음은 물론이리라. 등이 굽어 새들의 좋은 놀이터도 되어 주었으리라.
나이가 드니, 아니 철이 들어서 그런가? 등 굽은 나무처럼 조금은 부족한 얼룩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약국에 오는 등이 굽은 할머니들, 할아버지들, 평생 농사일을 해서 손가락은 갈라지고 굽어지고, 무릎이 아파 절룩인다. 농사일을 하던 나의 부모님도 저런 모습이었지 생각하니 마음속 깊이 아픔이 몰려온다.
상처가 있는 나무에 더 눈길이 가고, 다리를 절룩이는 길고양이에게 마음이 더 간다. 
젊었을 적엔 올곧은 나무에만 눈길이 더 갔다. 그래, 저래야 한다고, 저렇게 번듯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 어리석은 시간들이 흘러 나를 키웠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세상의 얼룩이 눈에 들어왔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었다고 말한 어느 노시인의 말처럼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얼룩이 아니었을까?
뭔가 부족해서 끙끙댔던 시간들이 나를 시를 쓰게 만들었다. 내게 굽어진 시간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시인이 되진 않았을 터이다. 그냥 평범한 삶을 살면서 등 굽은 나무에게 눈길을 주는 그런 사람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가 더 가고 싶다고 울며 떼쓰던 굽어진 시간들,
반항하며 일찍 결혼한 굽어진 시간들, 그 아픈 시간들이 약이되어 시를 쓰게 만들었다.
등 굽은 나무를 생각한다. 내가 한 그루 등 굽은 나무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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