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며
한 해를 보내며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12.2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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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철순 시인(마로면 관기약국)

달랑 남은 한 장 달력의 무게가 무척 가볍게 느껴집니다. 대롱대롱 나무에 매달려 있는 한 장의 나뭇잎처럼요.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살았고 또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행복했던 기억들이, 어떤 이들은 아프고 슬픈 기억들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멀어지겠지요. 아니 이태원 참사같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들도 있구요.
저도 한 해를 나름 열심히 일했고, 열심히 책을 읽었고, 열심히 글을 썼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열심히만 살면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요.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한 거지요. 그것이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즈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너무 바쁘게 살다보면 놓치고 사는 것들이 많은 거지요.
올해로 8년 넘게 약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2년만 잠시 도와준다는 것이 이렇게 오래 발목을 담구고 말았습니다.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았다면 결코 이렇게 오래 견딜 수 없는 세월이지요. 서로 배려해주고 서로 뜻을 같이 하고 서로 읽은 책을 공유하고 그러다 보니 십년 세월이 가까이에 와 있습니다. 늘 내가 책을 읽어서 그런지 나보다 훨씬 젊은 약사님 둘과 친구처럼 지냅니다. 삶에 대해서 가치관에 대해서 서로서로 비슷한 생각을 가졌고요.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면서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생명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낍니다. 우리 셋 모두요.
작년에는 18년 가까이 저와 함께한 반려견 은비를 하늘나라로 보냈습니다. 장자는 부인이 죽고 자연으로 돌아갔다고 춤추고 노래를 불렀다는데, 어떤 경지에 닿아야 그리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프고 또 아팠습니다. 보고 싶고 그립고 시간이 지나도 도저히 잊혀질 것 같지가 않아요.
그런데 또 은비가 낳은 반려견을 딸아이가 키우고 있었는데, 꼭 은비만큼 살고 올해 시월에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내가 그 마음을 알기에 딸아이가 견뎌낼 날들이 얼마나 아플까 걱정이 됩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누군가와의 이별도 함께 늘어난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걸 견디는 게 나이가 든다는 것이고요. 나이가 들고 보니 참 많은 이들과 이별을 하였습니다. 슬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게 삶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며칠 째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춥다 춥다 하면서 집에선 보일러의 온도를 올리고, 약국에선 온풍기의 온도를 올립니다. 잠깐 밖에 나가면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닿는 것이 무척 차갑게 느껴집니다. 이 추위에 밖에 있는 고양이들은 개들은 얼마나 추울까 걱정이 됩니다.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고 따듯한 물을 부어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얼어버립니다. 은비를 키우고부터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 세상은 사람만 사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구요. 사람도 동물도 새도 나무도 하물며 풀까지도 함께 어울려 살아야한다는 것을요. 그래서 배고픈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책을 읽고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길고양이들에게 사료와 따듯한 물을 주고, 손주 녀석이 가져다 놓은 닭 두 마리에게도 사료와 따듯한 물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출근 준비를 서둘러 하지요. 약국에 출근해서도 마찬가지로 밤새 추위에 떨었을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챙겨주는 일입니다. 누군가는 잘하는 일이라고 칭찬을 하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러나 배고픈 길고양이들을 외면할 수 없기에 이 일을 계속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눈이 많이 내려서 비닐하우스가 내려 앉아 애써 키운 겨울농사가 피해를 보았다는 뉴스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니 복구를 하려면 더욱 힘들겠지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춥다 춥다 하기가 미안해집니다.
코로나로 독감으로 감기로 이 어둡고 추운 겨울이 빨리 지나가고 따듯한 봄이 오기만을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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