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마로면 수문1리
(52) 마로면 수문1리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12.22 11:36
  • 호수 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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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물과 넓은 들, 부지런한 사람들이 사는 마로면 수문1리

#상부상조(相扶相助)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수문1리 지금도 동학의 정신이 살아 있는 마을. 
겨울이 깊어 가는지 임한리 들녘은 간간히 눈이 내리고 있다. 이번주는 마로면 수문1리를 소개한다. 
수문1리는 보은읍 동남쪽 20km지점 마로면 입구에 위치한 마을로 조선시대 사창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마을이다. 수년전 마을 뒤편으로 우진플라임이라는 대형공장이 들어와 사실상 도농마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을 소개를 위해 관기리 입구에서 좌회전 후 직진하니 용문정(龍門亭) 현판이 있는 정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 옆으로 돌탑이 있고 돌탑 옆은 비석이 세워졌던 자리인 듯 바위 하나가 누워있다. 정자 옆 마을 유래비를 살펴보니 “속리산 정기(精氣)를 이어받은 구병산(九屛山) 기슭의 아늑한 사창곡(舍倉谷)에서 하나둘 모아 살다가 동학난(東學亂)을 거치면서 느티나무 중심(中心)으로 큰 마을이 형성(形成)된 이곳이 수문1리이다. 본래 이곳은 돌쇠(乭釗)라 불리었다. 그 유래(由來)는 마을에 이기소(沼), 함박소(沼), 돌소(沼)라는 소(沼)가 있었는데, 돌소(乭沼)가 변하여 돌쇠(乭釗)라 불리었다. 이곳 사람들은 대대로 흙과 함께 살며 풍요로움 속에 효(孝)로서 부모(父母)를 공경(恭敬)하고, 이웃 간에 정을 베풀며 상부상조(相扶相助)하는 공동체 의식으로 화합(和合)하는 분위기 속에 마을을 발전(發展)시켜 보은군내(報恩郡內)에서 으뜸 마을이 되어 타 마을의 귀감(龜鑑)이 되고 있다. 이러한 자랑스런 마을을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자긍심(自矜心)을 심어주고 길이 보존하기 위하여 주민 일동은 마을 자랑비를 건립한다”라고 쓰여 있다. 

#수문1리 마을은 물이 풍부하고 토질이 좋아 농사 짓기 편리하고 년년이 풍년이 드는 마을 
마을 유래비를 살펴보고 회관에 들어서니 마을주민 세분이 이야기를 하고 계신다. 인사를 드리고 마을 소개를 부탁하니, “이거 한번 드셔 보세요”하시며 따뜻한 단 호박 한 조각을 건네주신다. “제가 17살에 시집와서 80이 넘도록 살아오고 있지만 이웃 지간에 큰소리하며 싸움하는 걸 한 번도 못 봤습니다. 그만큼 우리 마을은 공동체 의식이 강해 서로서로 도우며 살아왔지요” “그렇군요. 여기 계신 분들은 이곳에서 줄 곳 살고 계신 건가요?”하고 필자가 여쭈어보니, “우리는 17살, 20살, 21살에 시집와서 80이 넘도록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어디 간 적도 없이 살아오고 있답니다”하시면서 유쾌하게 웃으신다. 
어르신들의 밝은 모습에서 수문1리 마을 사람들의 품성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마을 앞에 많은 물을 가두고 있는 소(沼)가 많아 물 걱정 없이 농사 짓기 편리했고, 넓은 들과 부지런한 사람들이 살고 있어 조선 시대부터 사창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마을 사람들은 풍족한 생활과 넉넉한 살림, 따뜻한 마음으로 갈등 없이 상부상조하며 살아온 듯하다. 더구나 동학의 정신으로 살아가다 보니 상부상조하는 마음이 더욱 돈독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마을이다. 

#조선시대 사창이 있었고, 원앙골에서 내려오는 풍부한 물이 마을입구 청룡바위를 휘돌아 가는 마을
한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어르신 한 분이 “우리 마을 뒤쪽에 사창골이 있고, 그 위쪽으로 원앙골이 있지요. 지금은 도로가 생겼답니다. 그리고 마을의 커다란 느티나무는 제가 시집올 때 봤던 크기 그대로 있을 정도로 오래된 나무랍니다” 필자가 마을 입구 유래비에서 읽었던 느티나무를 말씀하시는 것 같다. “지금도 느티나무가 있나요?”하며 여쭈어보니, “그럼요. 저 앞에 있는 나무가 우리 마을 느티나무 랍니다”하며 회관 앞쪽 커다란 나무를 가리키신다. 
마을 유래비는 수문리(水門里) 마을이 형성된 것은 동학난(東學難)을 겪으면서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고 쓰여 있다. 느티나무는 수령이 약 200년 정도 된 나무로 건강하고 수세가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느티나무 옆에는 물이 많이 나는 우물이 있었답니다. 우리 마을은 여러 곳에 우물이 있었는데, 물이 풍부해 가뭄이 왔을 때는 농사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물이 많이 나왔답니다. 명주실 한 타래가 다 들어갈 정도로 깊고 깨끗한 우물은 병풍바위와 함께 우리 마을의 자랑이었답니다. 예부터 물이 풍부한 곳에 인심이 풍부하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수문1리 마을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은 우물을 농업용수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한 수량에서 나온듯하다. 옛날에는 둥구나무(마을 느티나무)에서 그네도 뛰고 여름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회의도 하고 놀기도 했던 곳이지요. 마을회관이 생기기 전에는 느티나무 아래가 사랑방 역할을 했던 곳이랍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어르신 한 분이 옆방으로 가시면서 한마디 거들어 주신다. 
“마을 앞 정자에 용문정(龍門亭)이라고 쓰여 있던데요. 혹시 마을하고 어떤 관계가 있는지요?”하고 마을 입구에서 보았던 정자 현판의 이름이 궁금해서 물어보니 “옛날에 청룡이 나왔다고 하는 바위가 있었는데, 원앙골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가 정자나무 아래 있던 청룡 바위를 휘돌아 가니 소용돌이가 생겨 돌소(乭沼)라고 불렀기 때문에 그곳 정자를 용문정(龍文亭)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마을 입구에서 보았던 누워있는 바위가 청룡 바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회관을 나와 방아다리 골 쪽으로 발길을 돌려 올라가니 길옆으로 작은 돌탑이 하나 서 있다. 돌탑에서 윤숙 공원 쪽 길을 따라 들어서니 구릉 고개라고 부르는 좁고 작은 고갯길이 나온다. 구릉 고개를 넘어서니 길옆으로 선돌 두 개가 필자의 발길을 잡는다. 수문리는 지금까지도 거석문화가 자리하고 있을 정도로 마음이 넉넉한 사람들이 살고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양화용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구릉 고개.
수령이 약 200년정도된 느티나무로 건강하고 수세가 강한 모습으로 수문리를 지키고 있다.
비석이 있었던 누운 바위.
풍부한 물이 마을입구 청룡바위를 휘돌아 가는 마로면 수문1리. 토질이 좋고 물이 풍부해 년년이 풍년이 드는 마을이다.
풍년을 빌던 선돌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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